멧 데이먼의 '컨트롤러'를 보고
"따뜻한 물 한 잔 할래요?" 스무 살 시절 나의 그녀가 던진 한 마디가 나의 인생을 사로잡았던 날. 그날은 내 인생에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소용돌이가 되어 내 마음 고요를 흔들어 놓았다. 나는 그녀와 함께 보낼 시간을 상상하기 시작했고 그 상상은 나에게 목표라는 의지를 심어주었다. 그건 분명히 내가 선택한 나의 자유의지(free will)였고 선한 의도(good will)와 함께 나의 삶을 지배하는 가장 큰 목표이자 이유가 되었다.
자유의지(自由意志, 영어: free will)는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스스로 조절·통제할 수 있는 힘·능력이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전적으로 가지는지, 부분적으로 가지는지,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하는지에 대해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자유의지에 관한 문제는 인과 관계에서 인간 자유와 자연법칙의 비중을 얼마로 볼 것인가와 관련돼 있다. -위키백과
어린 나이에 부모와 가족을 잃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데이비드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노력한 결과 전도유망한 미국의 하원의원으로 성공의 길을 걷게 된다. 시나브로 대중의 신뢰를 얻은 그는 유권자들의 지지와 함께 상원의원 선거에 출사표를 던지게 되고 선거 개표가 이루어지던 날 우연히 아름다운 무용수 엘리스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와 눈을 마주치는 찰나의 순간 데이비드는 그녀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주하는 강렬한 눈빛과 오고 가는 몇 마디의 대화는 그들의 인생에서 얼마만큼의 물리적인 시간을 차지할까?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이 만들어 낸 그들의 첫 키스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데이비드는 그의 인생에서 처음 맞이하는 충격 앞에서 엘리스라는 이름만을 남긴 채 떠나는 그녀를 바라만 보았다.
한편 선거 운동 과정에서 상대방 후보 진영에서 유포한 데이비드의 과거 에피소드는 그의 정치생명을 이어 줄 기관차의 동력을 상실할 만큼 대중을 자극하기에 충분했고 결국 그는 상원의원 선거에서 참패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아담이 이브를 만난 탓일까? 데이비드는 지지자들 앞에서 차기 대권을 위해 준비되었던 대본을 읽다 무슨 생각인지 즉흥적으로 마음속의 말을 대중 앞에 꺼내게 되고 진심 어린 그의 고백을 들은 지지자들은 오히려 그런 데이비드에게 더 큰 지지와 호소를 보내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의 저를 만들기 위해서 투입된 돈은 자그마치 수천 달러입니다. 어떤 색깔의 넥타이와 어느 정도의 때가 묻은 구두가 유권자들에게 먹힐 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수많은 분석에 들어간 돈입니다. 그렇게 오늘의 데이비드는 여러분 앞에 서 있게 되었습니다." 마치 지금까지 이루어진 그의 인생은 본인의 의지보다는 누군가의 도움이나 통제에 의해서 되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사람처럼 데이비드는 그의 지나온 생을 대중 앞에서 풀어나갔다.
찰나의 깨달음으로부터 너무나도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한 데이비드는 차기 선거에 도움이 될 새로운 정책 입안을 위한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한 손에는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들고 아침 버스에 오른다. 데이비드가 향하고 있는 버스 정류장의 맞은편 벤치에선 중절모를 쓴 남자가 꾸벅꾸벅 졸고 있다. "데이비드가 7시 50분에 버스정류장에 오면 그를 밀쳐서 커피를 쏟게 한 다음 그가 버스를 놓치게 만들어야 해!" 데이비드의 담당 설계자(아마도 천사쯤 될 것 같은) 해리는 상부에서 내려온 계획을 실수 없이 수행했어야만 했다. 데이비드가 탄 버스를 향해 젖 먹던 힘과 초능력을 사용하며 따라가 보았지만 데이비드를 실은 버스는 유유히 해리 앞을 도망쳐가고 있다. 데이비드는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획되지 않은 버스에 오르게 되고 계획되지 않은 공간 속에서 계획되지 않은 사람, 전화번호부에서 그렇게 애타게 찾아 헤매던 '엘리스'를 만나게 된다.
세상을 관리하는 부서에는 경보가 발생했다. 중절모를 쓴 사람들의 움직임은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하고 계획되었던 세상의 흐름은 다시 조작되기 시작했다. 엘리스의 전화번호를 얻은 데이비드가 즐거움에 도취되어 미팅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주위가 예사롭지 않음을 알아채지 못한다. 회의실의 문을 여는 순간 사람들은 얼어버린 듯 멈추어 있고 사람들 주위로는 방호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공항 검색대에서 볼 법한 자체 발광의 스캐너와 같은 장비를 사람들의 머리 주위를 스캔하고 있다. 그 모습을 놀란 토끼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데이비드를 발견한 사람들은 데이비드의 양 팔을 움켜쥔 채로 그를 끌고 회의실 문을 열고 나간다. "헉!" 회의실 문 밖에는 비서실이 있었어야 했다. 그러나 지하 주차장과 같은 콘크리트로 가득 찬 어두운 공간이 나오고 강제로 의자에 던져진 데이비드의 눈앞으로 중절모를 쓴 중년 신사가 등장한다. 그리고는 그들을 세상을 관리하는 설계자라고 소개한 뒤 데이비드에게 기억을 지우지 않는 대신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는 이 사실을 절대 누설하지 말 것 그리고 둘째는 엘리스에 대한 모든 것을 잊을 것. "자네와 그녀는 우연이라도 만나서는 안 되는 것이네." "그것을 누가 정하죠?" 중절모 중년남은 대답한다. "그건 오직 회장님만이 결정하네. 우린 회장님의 명령에 따라 이 세상을 설계하는 것뿐이고. 그러니 자네와 엘리스는 맺어질 수 없는 것이네. 그러니 받아들이고 삶을 살아가게나. 하지만 누설하거나 엘리스를 만나는 경우, 우리는 자네의 기억을 리셋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하게!"
얼마나 많은 날을 엘리스를 찾기 위해 고민했을까? 그날 설계자들에게 빼앗겼던 메모장,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엘리스가 데이비드에게 건네준 그녀의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장에 적힌 숫자들을 떠올려보지만 옐로페이지에 있는 수만 명의 엘리스 가운데서 그녀를 찾아낼 수가 없다. 데이비드는 오늘도 그녀를 만났던 그날과 같은 시각에 같은 버스를 기다린다. 그렇게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시간에 매일같이 동일한 버스를 탄 데이비드는 그녀를 생각하며 초점 없는 눈으로 바깥을 바라보다 그의 두 눈을 채우고도 모자라 심장을 터지게 만들 것 같은 그녀를 발견한다. 그렇게 또 우연히 만난 그들. 엘리스는 데이비드를 노려본다. 아주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전화번호를 바꾸지 않았고 그가 전화 올 것만 같은 믿음으로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는 그녀가 데이비드를 원망의 눈으로 사랑의 흘김을 보낸다. 데이비드는 몰랐다. 그의 마음과 같이 엘리스 역시 그녀의 마음을 오직 한 방향으로만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를 만났던 그날 이후로.
"데이비드! 자네가 그녀와 만나지 않는다면 그대는 결국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될 걸세~ 그리고 똑똑히 보게나 자네 눈앞에서 아름답게 춤을 추는 그녀는 이 나라가 만들어 낸 최고의 발레리나이자 안무가가 되는 미래를 가졌다네. 다만 당신 두 사람이 만나지 않는다면." 데이비드의 눈앞에서 춤을 추는 발레리나, 그녀 엘리스는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사랑스러웠다. 지금에라도 당장 뛰어가서 안아주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그녀와 함께 할 수 없다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 해도 그 인생은 행복이 빠져있을 것만 같음을 느끼는 데이비드. 그리고 그를 냉정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관리국의 해머라는 별명을 가진 문제 해결사. "아악!" 무대 위를 날아다니듯 춤추던 엘리스가 갑자기 자리에 주저앉는다. 중절모를 깊이 쓴 문제 해결사의 손짓 하나에 그녀의 가녀린 발목은 맥없이 부러져버리고 만다. "그녀와 자네가 함께 한다면 늘 이런 시련이 따를 걸세. 자네가 그녀와 함께 한다면 그녀는 어느 학교에서 아이들이나 가르치다 죽어가겠지." 차가운 말을 던지고는 홀연히 사라지는 설계자와 그녀를 향해 달려가는 데이비드. 병실에 앉아 있는 엘리스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데이비드는 그녀를 포근히 안아주고 전화 한 통 하고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그녀의 미래를 위해 병원을 떠나고 만다. 데이비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혼자 남아 있는 자신을 알게 된 엘리스는 구슬프게 눈물을 흘린다.
상원의원이 되어 민중의 신임을 듬뿍 받고 살아가는 데이비드는 그런 인생이 기쁘지가 않다. 정해져 버린 그의 삶과 사람의 의지로는 헤쳐나갈 수 없는 운명의 벽 앞에서 목표를 상실한 돛단배처럼 데이비드는 인생이란 망망대해를 정처 없이 흘러 다닌다. "이봐~ 데이비드! 엘리스가 결혼한다네~" 홀연히 데이비드 앞에 나타난 해리는 사뭇 비장한 눈빛으로 데이비드를 바라본다. 설계국의 최 말단이자 데이비드 가족의 담당 설계자이던 해리는 데이비드보다 똑똑했지만 유명을 달리했던 형과 엄마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면서 회장(신)의 설계도대로 이 세상은 움직이지만 최소한 데이비드 너희 가족들은 다른 이들과는 달랐음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지금 행복한가요?" 데이비드는 낮은 소리로 해리에게 묻는다. 해리는 대답을 하지 않고 지긋이 데이비드를 바라본다. 데이비드의 눈을 떨리고 절규하는 목소리로 다시 묻는다. "그녀는 지금 행복하냐고요!" 해리가 몰래 알려준 설계국의 비밀을 배운 데이비드는 바쁜 일정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지만 혼인신고를 위해 법원을 향하는 엘리스를 만나기 위해 해머라는 별명을 가진 해결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비밀의 문을 넘나들며 엘리스를 만나러 간다.
"엘리스~ 정말 미안해요." 중절모를 쓰고 땀범벅이 되어 눈앞에 나타난 데이비드를 바라보는 엘리스의 떨리는 눈을 보며 데이비드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이게 당신을 행복하게 하는 길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나를 믿는다면 아직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믿어줘요. 나랑 함께 가 줘요." 마법에 홀린 듯 데이비드의 손을 잡는 엘리스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비밀의 문을 드나드는 데이비드. 도무지 알 수 없는 마법에 홀린 듯 엘리스는 데이비드의 손을 뿌리치고 주춤하는 사이 해결사들은 그들을 붙잡기 위해 코 앞까지 와 있다. "엘리스! 나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나를 믿는다면 나의 손을 다시 한번 잡아줘요." 뜨겁게 달아오른 두 사람의 심장은 두 손을 놓지 않게 하고 그 둘은 하나가 되어 설계국의 건물 꼭대기로 향한다. 회장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마음을 허락받기 위해서 두 사람은 달리고 또 달렸다. 결국 도달한 꼭대기에는 더 이상의 문은 존재하지 않았고 회장님도 없다. 고요한 가운데 그 두 사람에게 나타난 사람들은 중절모를 눌러쓴 해결사들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응시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외치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키스를 주고받는다. "사랑해요~"
"잠시 기다려요~ 해머!! 회장님으로부터 온 메시지입니다." 꼭 안고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던 두 사람을 잡아가려던 해결사는 해리가 가져온 회장님의 메모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라진다. 죽을 것만 같던 순간이 지나가고 데이비드와 엘리스는 이상한 느낌에 이끌리어 꼭 감았던 두 눈을 뜨고 그 들 앞에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 해리를 발견하게 된다. "회장님이 그대들을 인정했네. 엘리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데이비드와 데이비드를 끝까지 믿고 따라준 엘리스의 결심이 회장님의 설계를 바꾸게 하셨네. 이제부터 그대들은 함께일세."
인간에게 주어진 생을 절반 가까이 살아가고 있는 나는 자유의지란 단어 앞에서 주춤하곤 한다. 우리의 선택에 있어서 어디까지가 과연 자유의지라 불릴 수 있는 영역일까? 정해진 법칙에 따라서 움직이는 자연 속에서 그 일부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란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본 적도 많다. 그러나 우리는 아프리카의 조그만 나비의 초라한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 일으키는 거대한 바람의 가능성을 안다. 성경에 말하기를 우리는 뱀이 던진 유혹에 이끌리어 선악과를 깨물어버렸고 그 순간 신은 노여움에 우리에게 영생 대신 죽음을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우리 스스로 선택함을 통해 눈앞에 있는 아름다운 인생의 반쪽을 선명히 바라볼 수 있는 시력을 얻었다고 믿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신의 의지에 따라 에덴의 동산에서 살아가던 천국 속에 우리는 뱀이 들려준 지식을 듣고 자의든 타의든 우리의 선택으로 지옥이라 여겨지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철학자 칸트는 말했다. "나는 사유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우리의 선한 의지가 신이 허락했다는 인간의 자유의지와 만나는 순간 그 결과는 신조차도 감동시킬 수 있는 운명이라는 선물로 우리 앞에 펼쳐질 거라 믿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찬 바람 불어오던 늦가을 어느 날 밤 뉴질랜드 록스브로(Roxborough)의 작은 여행자 숙소에서 아름다운 그녀가 내게 건네었던 그 말 한마디의 우연이면 족하다. 나는 선악과를 깨물었고 여러 가지 시련 속에서 내 앞에 서 있는 그녀를 진심을 다 해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다. 이게 내가 알고 있는 자유의지(free-will)였음을 나는 조심스럽게 유추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