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6km on the road to Coromandel
카우리 코스트가 전해주는 수 천년의 역사와 이별을 고한 우리 가족은 다음 여정을 위해 차량에 올라탔다.
다음 일정은 코로만델 반도(coromandel peninsula)로 계획되어 있었고 숙소는 온라인을 통해서 이미 한 달 전에 예약을 한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는 여행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매일매일을 최선을 다해야 했다. 다시 한 번 오클랜드를 거쳐야 한다.
우리 부부 둘 중 한 명은 졸았을 것이다. 제주에서 부푼 마음에 카오리 코스트를 찬양하던 우리 부부에게 다음의 여정에 대한 질문이 주어졌을 때 누가 먼저 던진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대답은 바로 "코로만델!!"이었던 거 같다. "아~ 맞아. 카우리 코스트에 버금가는 웅장함을 가진 코로만델! 거기가 두 번째 일정으로 손색이 없지~!" 만장일치로 그다음 일정의 숙소를 찾기 위해 톱 10 홀리데이 파크 홈페이지로 들어갔고 즉시 예약을 했다. 여행 일정이 한 달 밖에 남지 않았다는 불안함이 작용한 탓이기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감정에 이끌리어 만들어진 여행 일정은 376km를 달려가야 하는 수고의 덤을 만들었다. 20년 전이었더라면 아름다운 여행일 테지만 그때와 지금은 사뭇 다른 환경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1시간을 버티는 것도 힘들어하는 두 명의 공주가 함께하는 여행이고 우리는 불혹을 이미 맛 본 때문이다. 육아를 통해 알게된 묘약인 초콜릿과 과자를 소환하여 뒷자리에 앉아계신 VIP의 마음을 최대한 위로하며 우리 부부는 번갈아 운전을 하며 멀고도 험난한 대장정의 길에 나섰다.
https://www.thecoromandel.com/
우리 부부가 기억하는 코로만델은 북섬의 여러 장소들 중에서 으뜸의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해안가를 따라 형성된 왕복 2차선 국도는 비록 꼬불꼬불하고 오르락내리락하는 탓에 운전하는 사람에게는 난이도 상급의 코스이지만, 어느 곳이라도 차량을 정박하고 해안선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장관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우리는 북섬에서 가장 근사한 사람이 되어 자연이 주는 위대함을 몸 소 체험할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된다. 그게 바로 코로만델이 주는 매력포인트이다.
하지만... 그날따라 바람도 무지 강하고 길도 너무 험하고... 이러다 숙소에 체크인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가는 내내 도로 곳곳이 유실되어 있고 돌과 자갈들이 도로 위에 무질서하게 놓여있어서 타이어 손상이 우려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현지 뉴스에 귀를 기울일 리 없는 우리 가족은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야 태풍이 뉴질랜드를 강타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 험난한 태풍을 뚫고 376km의 대장정을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우리가 태풍에 대한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걱정만 더 했을 테지... 결국 태풍은 우리 가족의 갈 길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았다.
https://floodlist.com/australia/new-zealand-ex-cyclone-fehi-flooding-february-2018
태풍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코로만델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이곳의 아름다움을 증명할 방법이 없음에 안타까웠다. 아름답다는 말을 전하기가 무색해질 만큼 잔뜩 흐린 하늘은 비구름을 동반한 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불었고 우리의 작은 차량을 이리저리 흔들어대었으며 회색 빛의 바다는 성난 파도가 도로를 덮칠 것만 같이 으르렁거렸다. 정말 아름다웠던 코로만델이었는데 진짜 기막힌 곳인데 아이들에게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린 것만 같아서 우리 부부는 속상한 맘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다음에 꼭 다시 오자~ 그때는 말이야~!"
아이들의 행복은 다른 곳에 있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와~ 맥도널드다!!" 갑자기 하이텐션이 되어 외쳐대는 둘째의 목소리에 우리는 국도변을 달리다 자석처럼 이끌리듯 차량을 주차한다. 한국의 여느 맥도널드와 별 반 차이가 없는 인테리어는 우리 가족에게 친숙함으로 다가왔다. 20년 전과 달리 한 가지 인상적인 부분은 근무하는 직원들에 관한 것이었는데 과거와 달리 현지 가게의 직원이 현지인이 아닌 인도인 혹은 타국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지속적으로 오르는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는 사업주의 형편 상의 이유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노동 시장에서 내국인들의 설 자리를 빼앗고 있나보다. 여하튼 짧은 영어와 긴 바디랭귀지를 동원하여 어른을 위한 버거 세트와 아이들을 위한 해피밀을 주문했다. 맛있는 감자튀김으로 배를 기름칠 한 우리 가족은 태풍이 만들어 준 슬픈 코로만델의 해안을 열심히 더 달려 마침내 코로만델 top 10 holiday park에 도착하는 기적을 일구었다.
https://www.coromandeltop10.co.nz/
오전 9시에 출발한 우리 가족은 4시가 넘어 숙소에 도착했으니 7시간을 도로에서 보낸 셈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울상으로 도착한 아이들의 에너지를 충전시켜줄 아이템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의 방방과 같은 놀이기구였다. 후기가 좋은 웬만한 톱 10 홀리데이 파크에는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놀이시설을 갖추고 있는데 대표적인 놀이기구 중 하나가 이런 방방이었다. 공기를 주입해서 만들어진 탄력으로 우리나라의 방방만큼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안전하고 재미있게 뛰어놀 수 있는 놀이기구이다.
그렇게 아이들은 비로 인해 아무도 찾지 않는 방방을 홀로 점유한 채 뛰어놀았다. 이곳은 너희가 접수했어!! 코리아 파이팅!! 7시간 동안 갇혀있던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장난감을 만났고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유의 몸부림을 점프를 통해 표현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동안 아내는 아이들을 위한 저녁을 정성껏 준비했다.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는 재료를 최대한 활용해서 만들어 낸 음식의 최종 간은 오로지 소금(table salt)과 후추로 마무리를 했지만 그 조차도 너무도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모습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반찬 투정에 이것저것 가리던 두 딸들과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는 너무나도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었지만 그 환경이 주는 고마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다양한 음식의 소중함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곳 뉴질랜드에서는 반찬도 없고 한국 적인 것을 찾기 위해선 적지 않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는 간단한 재료와 한정된 조미료로 만들어 낸 음식 앞에서 한국에서의 맛을 그리워할 법도 하건만 아이들은 불평 없이 맛있게 먹어주니 고맙기까지 하다. 차라리 한국에 가지 않고 여기에서 더 머물면 아이들이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참고로 뉴질랜드 불법 거주에 대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나... 1년은 버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서 들른 슈퍼에서 뉴질랜드의 대표 아이스크림 브랜드인 tip top을 샀다. 토핑은 둘째의 의견을 참고했다. 내 마음 같아서는 3kg짜리 큼직한 아이스크림을 사서 숟가락으로 퍼서 먹고 싶었지만 매일매일 이동해야 하는 가족여행의 특성상 맛보기 정도의 양에 만족해야만 한다. 한 곳에 정주하지 못하는 유목민인 우리는 그 덕분에 많은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다음 일정을 통해서 얻게 될 더 큰 만족을 기대하기도 한다. 이처럼 아이스크림 맛에 빠진 아이들의 두 눈이 반짝이는 건 다음 여정을 통해 맛보게 될 새로운 아이스크림에 대한 기대감의 반영일 것이다. 티 난다.
밤 새 내린 비가 숙소의 양철 지붕을 때리며 만들어낸 리듬과 어우러져 우리 가족은 하루의 여정을 나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묵언수행에 들어가자 하나둘씩 깊은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새소리와 함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제의 태풍이 남긴 흔적은 홀연히 사라지고 선명해진 하늘과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 속에 가려진 태양 빛은 더없이 찬란하게 빛이 났고 코로만델을 지키는 나무는 하늘을 향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돌아보면 힘든 여정의 연속이었으나 함께 하였기에 우리 가족은 맘 껏 웃을 수 있었고 결국엔 이렇게 찬란한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음에 신께 감사할 수 있다. 불현듯 찾아온 여행이란 선물을 통해서 우리는 지금껏 바쁘게 살아오며 놓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들을 스스로 내려놓고 여유로운 마음가짐으로 우리 앞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시선이 생겨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