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gaville, Trounson Kauri Park 방문기
카우리 나무는 뉴질랜드 북섬 중에서도 북쪽 지역에 군집하는 높이가 30미터 이상 자라는 큰 나무이다. 20년 전 우리 부부에게 자연의 위대함과 그 앞에서 우리는 나약한 존재임을 알려주었던 장소였고 에덴동산처럼 우리 두 사람의 은밀한 비밀 정원과도 같았던 곳. 이처럼 의미 있는 장소에서 뉴질랜드 가족여행을 시작하고 싶었다.
부산에서 태어나서 자란 나는 주위에 산이 많은 환경 탓에 소나무라는 친근한 나무에 대해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하지만 뉴질랜드에서 발견한 거대한 한국의 소나무를 닮은 이 카우리 나무 앞에서는 자연의 웅장함이 주는 압도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웅장함을 우리 두 딸들에게 보여주고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오클랜드 국제공항에서 북서쪽에 동 떨어져 있는 이곳 카우리 코스트가 뉴질랜드 여행의 시작점이 된 것이다.
카우리 소나무(kauri---, 학명: Agathis australis 아가티스 아우스트랄리스[*])는 아라우카리아 과의 나무이다. "소나무"라 불리지만 소나무과가 아니라 아라우카리아과에 속한다. 이름은 마오리어로 이 나무를 부르는 이름인 "카우리(kauri)"에서 따왔다. 종소명 "아우스트랄리스(australis)"는 "남쪽의"라는 뜻으로, 남반구 식물임을 뜻한다. 뉴질랜드 북섬 최북단의 노스랜드·오클랜드 지방 및 코로만델 반도, 그레이트배리어섬 등지에 빽빽한 카우리 소나무 숲을 이루며 자란다. 최근에는 카우리 역병균(Phytophthora agathidicida)으로 인해 많은 카우리 소나무 개체가 피해를 입었다. - 참조. 위키백과사전
뉴질랜드에서의 첫날 밤을 이층 침대에 누워 밤이 깊어가도록 이야기를 나눈 우리 가족은 다음 날 아침 숙소의 자연이 전해주는 새들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눈을 떴다. 오랜만에 계획도 없는 해야 할 일도 없는 자유로운 가족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https://top10.co.nz/park/kauri-coast-top-10-holiday-park
제주도에 이주해서 정착하면 늘 맑은 공기가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중국으로부터 시도 때도 없이 넘어오는 황사와 미세먼지로 인해 무참히 깨어졌다. 제주도는 정작 사방이 뚫려 있는 천혜의 환경 덕분에 본연의 맑은 공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날이 1년 중에서도 손을 꼽게 되었다. 조선 시대 혹은 산업화 이전의 시기는 어떠한가? 그때는 얼마나 공기가 맑았을까에 대해서 상상에 빠지다 보면 문명의 혜택이라는 것이 인류에게 주어진 완전한 선물이라기보다는 무언가를 잃고서 얻게 되는 부산물처럼 등가교환의 법칙이 작용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자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뉴질랜드라는 섬은 참으로 행복한 섬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최소한 자연이 주는 흙먼지 외에는 어떠한 외부환경도 뉴질랜드의 공기를 교란시킬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늦잠을 잔 우리 부부는 아이들이 깨어나기 전에 아침을 준비하게 위해 주방에 갔다. 숙소의 다른 게스트들은 부지런한 건지 이미 여행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고 스태프들은 오늘 체크인할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히 청소를 준비하고 있었다. 눈에 붙은 눈곱을 때어내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미소로 인사를 나누었다.
주방에 들어서자 여행자 숙소에서 친숙하게 볼 수 있는 문구를 발견한다. 게스트들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숙소를 떠나는 여행객이나 음식이 많아서 남게 될 경우에는 남은 것들을 서로 공유할 수 있도록 바구니에 각종 음식이나 재료들이 모여든다. 우리 가족은 그 바구니를 보면서 공유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기보다는 차라리 상하게 두어서 버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는 지금 도시의 삶은 뉴질랜드에서는 아직까지 공유라는 가치 안에서 20년 동안 변치 않고 유지되었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 반열에 들었으니 이러한 가치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올라갈 날이 머지않았음에 감정이 벅차오른다.
아침으로 간단하게 시리얼, 식빵, 스프레드로 아침을 마친 우리 식구는 뉴질랜드 여행의 대장정의 서막을 열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차량을 달려 근처에 있는 카우리 공원으로 향했다. 평화로운 평원과 그 평원이 주는 풍족함에 유유자적하고 있는 소와 양들을 보니 제주에 우리 가족이 입도했을 때 느꼈던 자유로움과 평온함이 생각났다. 바쁠 것도 없고 급할 것도 없는 자연의 흐름이 문명을 앞세워서 급하게 달려 나가는 도시인들에게 말로 전해지지는 않겠지만,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풍경은 아마도 그렇게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다. 키위새가 출몰한다는 입간판을 보고 차량을 잠시 주차하고 우리 가족은 혹시나 키위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언덕을 향해 잠시 몸을 옮겼다. 흐린 날임에도 불구하고 불어오는 바람은 청량하기 그지없고 그 상쾌함에 우리 가족은 모두가 행복하다. 자연이 주는 선물에 키위를 만나는 행운은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키위새는 야행성이란다. 무식하면 몸이 고생한다란 속담은 명언이다.
키위(kiwi)는 키위과에 속하는 종을 총칭하는 말이다. 키위는 뉴질랜드 특산의 3종으로 이루어지는데, 큰알락키위, 쇠알락키위 등의 5종이 뉴질랜드에 분포한다. 낮에는 굴에서 생활하고 눈을 사용하지 못하고 부리에 있는 코로 후각에 의해 움직인다. 몸에 비해 가장 알이 크다. 보통 사람들에 보이지 않는 야행성 새이다. - 위키피디아에서 참조함.
공원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 부부는 설레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20년 전의 그 공간에 대한 추억이 밀려옴을 느끼며 스무 살 시절의 순수한 감정이 솟구쳐 올랐기 때문이다. 고대 밀림의 비밀의 숲을 연상하게 하는 키 큰 나무들이 우리 가족을 반기고 있었고 우거진 숲 사이로 들어오는 빛으로 가득 찬 공원은 신비함마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남극 근처에 외딴섬인 뉴질랜드에도 지구의 외부 환경은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이곳 카오리 파크도 산림이 죽어서 그 군집을 잃게 되는 'Forest Dieback disease'이란 질병을 앓고 있다. 우리나라의 소나무 재선충병과 같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은 이런 거대 목을 볼 수 없는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따까움이 밀려왔다.
천천히 공원 입구를 들어서자 주변의 공기는 빽빽이 둘러싸인 고목들이 광합성 작용으로 품어내는 산소와 촉촉한 습기로 가득 차 있음을 느꼈다. 주차장과의 거리는 불과 100 미터도 되지 않는데도 이곳은 완전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서 나무 근처로 갈 수 없도록 나무데크가 만들어져 있고 우리 가족은 그 데크 위를 천천히 자연을 느끼며 조심조심 걸었다.
고사리 과로 보이는 식물이 나무가 되어 자라고 있는 깊은 숲 속에서 우리 가족은 자연이 주는 편안함을 느끼며 바람이 들려주는 속삭임을 카우리 나무들을 통해 들을 수 있었고 곳곳에서 새들이 화답하듯이 노래하는 소리에 한 동안 걸음을 멈춘 채 귀를 기울였다.
50여분의 산책을 통해 자연을 만끽한 우리 가족은 배꼽시계가 알려주는 시간에 맞추어 무엇을 먹을까 고민을 하며 다가빌 마을(Dargaville)로 향했다. 그러다가 마을 입구에서 발견한 Fast Food라는 커다란 간판에 즉흥적으로 차량을 주차하였다.
Fish and Chips는 영국에서 유래된 국민 길거리 음식으로 알고 있는데 감자튀김이 구성하는 탄수화물과 대구살 혹은 명태살을 튀김옷으로 튀겨낸 단백질로 구성된 포장 음식이다. 뉴질랜드에서 가난한 청년이었던 우리 부부의 배를 든든히 채워주었고 맥주와 함께하면 금상첨화였던 추억의 메뉴를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늘의 점심으로 선택했다. 두 식구가 네 식구가 되었기에 충분한 양을 주문하기로 했다. 추가로 양파튀김을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년 전과 같은 종이에 포장된 음식을 양 손 가득히 받아 들었다.
생각보다 많은 양에 너무 부푼 배는 살짝 느끼함을 느끼는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피시 앤 칩스를 통해서 우리 부부는 지난 아름다운 추억을 함께 공유했으며 아이들은 엄청난 양의 감자튀김과 두터운 튀김옷에 배를 불렸다. 탄산을 먹지 않는 촌스러운 두 딸은 뉴질랜드의 사과주스를 먹고 우리 부부는 뉴질랜드의 라테인 플랫화이트를 먹었다. 뉴질랜드의 플랫화이트는 어디에서나 먹어도 기본 이상은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우유 울렁증이 있는 탓에 아메리카노를 선호한다.
숙소가 있는 근처 마을인 다가빌은 한 때 굉장히 부유한 마을로 19세기 무렵에는 카우리 나무의 벌목과 고무 체취를 통한 임업이 활성화되었다가 현재는 뉴질랜드의 고구마 최대 생산지로 유명하다고 한다. 원주민인 마오리 족은 고구마를 '쿠마라(kumara)‘라고 부르고 통상적으로 이 명칭이 뉴질랜드엔 통용되고 있다. 마을 공동체가 운영하는 것 같은 작은 박물관이 있어서 방문을 했다. 내부에는 마을과 관련된 역사적인 유물들과 다양한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할머니 두 분이 운영을 하고 계셨다. 천천히 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마감하기 10분 전이라며 할머니들이 더 안타까워했다. 천천히 마을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음에 아쉬움을 뒤로한 채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한다.
카우리 숲은 나에게 세상이 한정되어 있지 않고 상상할 수 없는 많은 가능성들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지구의 남쪽 끝인 남극에서 가장 가까운 섬인 뉴질랜드는 오랜 기간 동안 큰 사건 사고 없이 잘 보존된 자연 덕분에 카우리 소나무와 같은 원시림을 볼 수 있는 자연환경이 조성되었다. 인류가 서식을 시작한 시기가 이천 년 남짓한 섬에서 말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반 만년의 찬란한 한민족 문화를 자랑하지만 잦은 외침을 통한 전쟁으로 인해서 한반도는 분단되었고 한민족 간의 비극적인 한국전쟁을 통해서 망가진 산과 들의 토양은 다시는 회복되기 어려운 수준이란 말을 듣기도 했다. 만일 우리나라도 뉴질랜드와 같이 외부의 침입이 없이 잘 보존되었다면 어땠을까? 제주도에 있는 천년의 숲 비자림과 같이 울창하고 깊은 숲을 이루는 곳이 얼마나 많았을까? 백두산과 한라산의 산맥을 이어서 얼마나 많은 보물들이 숨겨진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하루가 저물어져 가고 있다. 여행을 통해서 얻은 잠시의 여유는 우리의 마음속에 철학을 자리 잡게 하고 삶의 가중치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더군다나 오늘 접한 자연의 경이로움 앞에서 인간이 과연 자연을 다스릴 수 있는 자격이나 되는지조차 아리송해짐을 느낀다. 과연 우리의 두 딸들은 오늘의 경험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가능성의 문을 열게 될까? 그들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이미 우리의 20년 전의 경이로움에 앞서 있다. 비록 우리가 느꼈을 경이로움이 청년에게 주어졌던 충격이 아닐지라도 그들이 목도한 자연의 거대함은 뇌리 속에 고이 간직되어 그들이 살아가는 동안 그들의 삶을 인도하는 나침반이 되어 줄 거라 믿는다. 그렇게 다가빌, 카우리 코스트의 정적의 밤은 깊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