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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파인더 Aug 30. 2021

NZ (뉴질랜드) 2일 차

11시간의 비행 그리고 3시간 반의 드라이브

비행기에서 바라본 NZ sky

일본 하네다 국제공항에서 밤하늘을 향해 떠났던 에어 뉴질랜드 항공기는 태평양의 남쪽에 있는 오클랜드 국제공항의 경이로운 아침을 열었다. 비행기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진한 파랑의 하늘과 그 하늘을 마주한 드넓은 바다가 만들어내는 끝없는 수평선은 11시간을 날아온 보람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신비로웠다.  이 세상의 파랑은 모두 가진 듯 뉴질랜드의 하늘은 오랜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나를 향해 속삭인다. '반가워~ 친구! 진짜 파랑은 오랜만이지?' 나는 오랜만에 가슴이 뻥 뚫린 듯  깊이 숨을 들이쉬고 답해본다. '16년 만에 보는 넌 여전히 진한 파랑이네~ 반가워!! 예전에 우리를 포근히 안아주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우리 두 딸들에게 너의 사랑을 전해주렴~ 부탁해요!'


11시간의 장시간의 비행과 낯선 기내식은 에너지가 용솟음치던 둘째를 소금물에 절은 김치로 변모시키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나 보다. 둘째는 나조차도 구전으로 전해 듣던 비행기 멀미(zet lag)를 겪었고 오클랜드 공항의 수속을 밟는 중 결국 얼마 먹지도 못한 음식들을 고스란히 게워내고 말았다.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둘째의 얼굴은 이미 이 여행의 시작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것을 예고하고 있는 듯하였다.


외전-수학여행 가던 날

1990년대 초반 어느 화창한 가을날. 그는 버스를 타고 수학여행을 갔더랬다. 난생처음으로 오랜 시간 동안 집을 떠나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떠나는 수학여행은 초등학생(당시 국민학생)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엔 충분했다. 버스 멀미에 늘 시달리던 비실비실하던 그 어린이는 수학여행 출발 전 날 밤을 기억한다. 멀미에 특효약이라 소문이 자자한 그 약, 귀에 붙이는 멀미약인 귀미테(키미테 패치)를 붙이고는 설레는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다음 날이 되어 친구들과 함께 탑승한 고속버스가 뿜어내는 매연가스는 후각이 예민하던 아이에게 시내버스와 별 반 다를 것이 없는 멀미의 일등 공신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아이는 견딜 수가 있었다. 아니 전혀 매스껍지 않았다. 그렇게 어느새 멀미는 잊고 친구들과 즐겁게 노래하고 이야기하며 한 참을 놀던 그 아이는  가장 친한 친구들 중 한 명이 멀미 증세로 힘들어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잠시 고민을 했다. 결심한 듯 그 아이는 용감하게도 자신의 왼쪽 귀 뒤쪽에 붙어있던 천하무적 방탄복을 때어내어 힘들어하는 친구의 귀 뒤쪽에 입혀주었다. 유난히 하늘이 맑았던 그날은 그가 그의 소중한 친구를 멀미 귀신으로부터 구한 날인 동시에 고속버스가 정차하는 휴게소마다 바닥의 붙은 껌을 확인하며 헛구역질을 해야만 했던 악몽과도 같은 날이었다고 한다. 그의 딸이 이처럼 촌스럽게도 비행기 멀미를 한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인생의 수레바퀴인가? '미안하다. 딸~ 성인이 되면 괜찮아질 거야~' 엄마 품에 안긴 채 우울해하는 둘째의 뒷모습을 향해 조심스럽게 부심을 마음을 전했다.

오클랜드 공항의 출국 수속을 마치면 아름다운 목공예 아트월이 반겨준다.
뉴질랜드(영어: New Zealand) 또는 아오테아 로아(마오리어: Aotearoa)는 태평양 남서부에 위치한 섬나라이자 주권국이다. 뉴질랜드는 북섬과 남섬, 그리고 600여 개의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리적 고립으로 인해 뉴질랜드는 인간이 정착한 마지막 땅이 되었다. 또한 오랜 고립 기간 동안, 뉴질랜드에서는 독특한 생물적 다양성이 발전했다. 뉴질랜드의 다양한 지형과 높은 봉우리들은 화산 폭발과 육지의 융기로 인해 형성된 경우가 많다. 뉴질랜드의 수도는 웰링턴이고,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는 오클랜드이다. 1250년과 1300년 사이에 뉴질랜드의 섬에 폴리네시아인이 정착하였고, 독특한 마오리 문화를 발전시켰다. 1642년 네덜란드 탐험가 아벌 타스만이 유럽인으로서 처음으로 뉴질랜드를 발견했다. 1840년 , 영국의 대표와 마오리족의 수장들이 와이탕이 조약을 체결하였고, 뉴질랜드의 주권이 영국에 있음을 선언했다. 1841년 뉴질랜드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1907년에는 자치령이 되었으며, 1947년 영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했지만, 영국의 군주가 국가원수로 남게 되었다. 오늘날, 뉴질랜드의 인구는 총 490만 명으로, 이 중 대다수가 유럽계이다.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소수민족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아시아계와 태평양 섬사람들이 그다음으로 많다. 뉴질랜드의 문화는 마오리 문화와 초기 영국 정착인들의 문화에서 기여된 것이 많지만, 뉴질랜드로의 이주가 증가함에 따라, 문화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뉴질랜드의 공식 언어는 영어와 마오리어, 그리고 뉴질랜드 수화인데 영어가 가장 많이 쓰인다. - 위키백과사전에서



오클랜드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밟고 게이트를 통과해서 나오게 되면 여러 부스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중에서 인도에서 보았던 보다폰이 눈에 들어와 한국에서 가져온 스마트폰에 끼워서 사용할 수 있는 USIM칩을 구매하였다. 인터넷과 국내 통화 및 국제전화까지 어느 정도 합리적인 양을 제공하는 상품이었단 것으로 기억한다.  가격은 NZ$로 50불 정도이었던 것 같다. 우리와 같은 국제 여행객들에게 유용한 상품으로 사용 유효 기간은 한 달 넘는 기간이어서 한 달을 뉴질랜드에 머물 우리 가족에게 적합한 상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환전해 온 뉴질랜드 달러로 현금 결제를 하고 유심칩을 구입했고 직원이 친절하게 유심칩을 내 모바일에 꽂아 사용 체크를 해 주었다. 그렇게 뉴질랜드 한 달 동안 사용하게 될 임시 번호가 생성이 되었다.

'뉴질랜드 유심 구입하기'로 검색하면 상당한 량의 정보가 검색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나는 더 이상의 중복된 정보를 만들지 않기로 한다.


늦여름이 선사하는 뉴질랜드의 뜨거운 태양은 우리 가족을 환영해주었지만 최대한 가볍다곤 하지만 겨울 복장으로 제주를 떠난 우리 가족은 화장실로 직행하여 얼른 가벼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미처 옷을 꺼내지 못했던 탓에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터틀넥을 입고 있던 나는 왠지 한국의 여름에 출장 온 긴 남방의 가련한 남인도 청년의 혼과 동기화되는 경험을 한다. 우리는 속히 렌터카 업체에서 차량을 인도받기 위해 메일에 나와 있던 버스 정류장을 찾아갔고 셔틀을 타고 렌터카들이 모여있는 주차장에 도착한 후 차량을 인도받는 데까지 한 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렌터카를 찾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외전-2002년 초겨울

2002년 FIFA 월드컵 경기로 대한민국은 아시아의 마지막 남은 분단국이자 개발도상국이 축구 강호인 이탈리아를 제치고 8강에 진출하는 기적을 만들어 낸 이례적인 사건으로 세상에 그 이름 '꼬레아'를 알렸다. 당시 휴학생이었던 나는 이른바 '스펙'을 갖추기 위해 1월의 어느 날 월드컵을 뒤로한 채 뉴질랜드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를 타기 한 달 전 교내에서 치른 모의 토익에서 790점을 받은 나. 이 정도의 점수면 뉴질랜드에서 소통하고 살아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자만했고 그러한 안일함과 오만방자함은 한 달이란 소중한 준비기간 동안 허송세월을 보내고 마는 어리석은 휴학생을 낳았다. 그때 나는 일본 도쿄 나리타 공항을 경유하여 JAL 항공기를 타고 뉴질랜드 북섬 오클랜드 국제공항 경유, 그리고 최종 목적지인 남섬 크라이스트처치 국제공항으로 갈 예정이었다. 교양 일본어를 C+로 겨우 마친 나는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소통 언어를 영어로 도전했고 나의 영어에 공항에 근무하는 일본인 공안들은 크게 당황했고(뭔 말인지 몰라서 당황했을 것이다) 나는 내심 내 버터 발린 영어가 그들의 영어보다 우월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의 늪에 빠졌다. 그렇게 채워진 어깨의 뽕은 뉴질랜드 남섬에 도착과 동시에 지하 100미터에 있는 암반수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나리타 공항을 출발하고 한참을 지나고 깊은 어둠을 뚫고 가던 비행기 안에서 나는 '입국카드'라는 것을 받게 되는데 국제선을 처음 타 본 나는 당황하지 않고 카드에 적혀있는 내용을 해석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해하기 위한 해석이 아닌 해석을 위한 해석. 입국카드(Immigration form)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나는 카드에 적힌 질문에 너무나도 진실하게 답하기 시작했다. '당신의 짐 속에 음식이나 채소가 있습니까?' 정도의 질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캐리어 속에 담긴 짐들을 생각하기 시작했고 엄마가 멀리 떠나는 아들을 위해 꽁꽁 싸 준 김치가 생각이 났다. 그렇게 나는 YES란에 마킹을 했고 그 한순간의 바보짓은 출국심사에서 나를 빨간 줄의 문제아로 만들었다. (입국 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Red line이 표시된 선을 따라가게 된다. 경험해보면 알겠지만 그곳은 지옥문이 따로 없다.) 그렇게 나는 내 캐리어의 모든 짐을 풀어헤쳐야 했고 너무나도 당황한 나는 내가 배운 모든 영어에 대한 지식이 바짝 말라버린 내 입술에서 하얗게 태워짐을 느꼈다. 더듬 병이 걸려버린 아시아의 애송이를 애처롭게 바라보던 세관직원은 노란색 종이에 주소를 하나 적어서 나에게 건넨다. "내 친구인데~시내에 가면 꼭 이 사람에게 전화해서 학원에 등록하도록 해! 넌 우선 영어를 배우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친구!" 그렇게 토익 790의 자신감에 넘치던 청년은 어느새 저 멀리 명왕성으로 날아가서 우리 태양계에선 잊힌 코미디언이 되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친 채로 아름다운 야자수와 남극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여름바다가 반겨주는 남섬 크라이스트 처치 공항으로 나오는데 걸린 시간은 자그마치 3시간이 넘은 것 같다. 북섬 오클랜드 공항에 비해서 노선이 많지 않던 크라이스트 처치의 셔틀은 모두 시내를 향해 나가고 남은 건 넓은 도로와 휑하니 남겨진 영어 못하는 촌 놈 하나. 그렇게 그는 뉴질랜드에 도착한 첫날에 떠날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고 한다.


차량을 인도받고 출발!!

차량을 인도받은 우리 가족은 첫 행선지로 출발했다. 뉴질랜드는 우리나라와 운전의 방향이 반대이다. 즉 운전석은 오른쪽에 있으며 기어는 왼쪽에 위치한다. 스티어링 휠의 오른쪽은 당연히! 방향지시등이고 왼쪽이 와이퍼 작동 레버이다. 창을 올리거나 내리기 위해서는 당연히 오른손으로 문짝 옆의 버튼을 눌러야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지극히 일상적인 운전패턴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웃지 못할 엄청난 해프닝을 만들어낸다. 갑작스러운 환경에서 기어를 바꾸기 위해 창문을 손으로 두드린다던지 급하게 깜빡이를 켜고자 용감하게 유리창을 와이퍼로 닦아내곤 한다. 그렇게 웃으면서 우리 가족은 오늘의 첫 행선지인 "Kauri Coast"를 향해 우리와 한 달을 동거 동락할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날씨가 다 했지만 나의 손은 그 풍경을 잡아내질 못한다.
제주도를 참 많이 닮은 이곳 뉴질랜드
인구보다 많다는 양이 반기는 곳 뉴질랜드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고

도시락을 싸서 드라이브하다가 맘에 드는 언덕이 보이면 차량을 주차하고 우리는 저 멀리 지나가는 구름을 보면서 정성스레 싼 도시락을 까먹었었다. 그러고는 서로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사랑을 확인하고 서로 헤어지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이곳 뉴질랜드를 찾았고 넷이 된 우리를 뉴질랜드는 변함없이 가족처럼 반겨주고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선물로 받은 우리 가족은 무엇을 이곳에 선물로 남겨야 하는 것일까?


3시간 정도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뉴질랜드는 혼잡하지 않기에... 공기가 좋기에.... 예전에도 그렇게 여행을 했기에... 하지만 우리 부부는 과거의 청년도 아니었고 우리 아이들은 1시간 이상 자동차 안에 있어 본 경험이  많지 않음을 알았을 때 우리의 차는 이미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고 오늘의 목표는 체크인, 숙소 체크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운전대를 공유하며 나눌 수 있는 기쁨, 우리 부부 모두 운전대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부부는 도로를 달리며 추억에 잠겨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 두 딸은 반복해서 등장하는 끝없는 초원과 수많은 양 떼에 더 이상의 흥미를 상실한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고 우리 부부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넷이 되어버린 가족의 위대함을 찬양하며 목적지를 향해 줄어드는 거리만큼 행복함에 서서히 도취되어 가고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한 달 동안 여행하면서 먹을 먹거리 구입을 위해 다가빌(Dargarville)이라고 하는 마을에 들렀다. 카오리 코스트는 시골마을이기에 타운이라 할 수 있는 다가빌에서 장을 봐야만 했다. ‘카운트다운’이란 마트는 크라이스트 처치에 머물던 당시 즐겨 방문했던 마트였고 그 추억에 이끌리어 우리 가족은 뉴질랜드의 식재료에 탐닉하기 위한 잠깐의 여정을 위해 가던 길을 멈추었다. 고기도 사고 쌀도 사고 야채도 사고 아이스크림도 사고 초콜릿도 사고... 다 사고 싶었지만 우리는 계획이 필요함으로 꼭 필요한 것들만 우선 구입하기로 한다. 아래와 같이…


박스 와인의 천국. 뉴질랜드. 천혜의 자연환경은 뉴질랜드의 각 지역을 와인 재배가 가능한 포토밭으로 만들어주었고 풍부한 포도량은 박스 와인이라는 가성비 좋은 상품을 탄생시켰다. 15년 전에 비해서 가격은 정확히 두 배가 뛰었지만 여전히 추억의 브랜드는 반짝거리며 선택받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부부의 선택은 남섬의 와이너리 천국 블레넘이 만든 브랜드 '블레너머(Blenheimer)'를 선택한다.

2002년 당시 나는 한국에 돌아온 나는 뉴질랜드 산 박스 와인이 머지않아 마트에 깔릴 것이라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뉴질랜드의 가성비 좋은 박스 와인은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의 와인에 대한 고가 전략은 와인 수입업체들을 담합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우리나라 국민들은 가성비 높은 맛있는 와인을 먹으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말았다. 뉴질랜드를 찾는 한국사람들이여~ 박스 와인에 취해보자!! 아깝지 않다!!! 청춘은 흘러갔지만 와인은 그대들에게 청춘을 상기시켜줄 것이다!! 단~ TMW(too much wine)은 뼈저린 두통을 수반함을 잊지 말자.

드디어 숙소에 도착한 우리 가족
2002년  맺은 인연은 우리 가족을 이곳 톱 10 홀리데이파크로 다시 이끌었다.

결국에 해 질 녘이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체크인을 하게 되었다. 역시 키위(뉴질랜드 현지인)들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이유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우리가 중국인이 아니어서 고맙다고 했다. 우리 가족은 11시간의 비행과 3시간의 운전으로 얻은 피로감을 잊을 수 있을 만큼 좋은 곳에서 머물게 되었음을 감사했다.

어딜 가나 방방은 아이들을 들뜨게 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 울 두 딸은 방방을 향해 세상을 모두 얻은 듯한 표정으로 뛰어간다.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할 때 안정감을 얻듯이 부모 역시 아이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존재의 이유와 삶의 목적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카오리 코스트 홀리데이파크의 해 질 녘

첫날의 힘든 여정을 보내며 함께 한다는 것을 통해 우리 가족은 지나 온 시간과 공간이 주는 경험 속에서 하나 됨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게 쌓여가는 끈끈한 유대감이란 무기는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따뜻한 영감을 줄 것이라 믿는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겪게 될 수많은 사건 사고들 속에서 오늘의 소중한 시간을 통해 얻은 잊지 못할 경험은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작은 실마리가 되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 줄 것이다. 그렇게 특별하지도 근사하지도 않은 우리 가족의 NZ 첫날밤은 찾아왔다. 자연의 밤은 도시의 밤에 비할 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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