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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더 Nov 20. 2024

EP092. 원룸 가구 재배치

글로벌 택배 회사 차리기

2024.11.13. (수)


 요즘 요가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자꾸 기억도 없이 잠들었다가 새벽에 깨서 씻고 불을 끄고 다시 잠들었다가 6시가 되기도 전에 깨는게 루틴처럼 되어버려서 뭔가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거 말고도 뭔가 무기력한 나날 중 가구를 재배치하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좁진 않지만 공용공간을 제외하고서는 방이 한 칸이라 특히 폭우로 연구소와 사무실이 문을 닫은 뒤 방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요즘, 일하는 곳과 자는 곳의 분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아침부터 침대를 옮기고, 책상을 옮기고, 장롱을 옮겨서 장롱을 한가운데에 두고 침대와 책상의 공간이 나름 분리가 되었다.


 가구를 옮기기 위해 청소도 깔끔하게 하고 나니 오랜만에 몸에 기운이 돌았다. 그래서 스페인어 선생님이 항상 이야기하던 포스트잇에도 여러 가지 적어서 거울 앞에 붙여두고 숙제로 각 동사 별로 예시 문장을 두 개씩 적었다. 그 여파인지 오늘 스페인어 수업시간에 정말 많은 칭찬을 받았다. 전에는 한국어로 생각하고 스페인어로 적는 느낌이었는데 스페인어로 생각하고 스페인어로 적은 것 같다고 해주셨다. 왜냐면 전에는 한국어로 쓰고 챗gpt한테 스페인어로 적어달라고 하고 이번에는 제가 사전 찾아가면서 적었거든요! 이것이 공간 분리의 힘이다!


 수업이 끝나고 옥수수를 쪄먹는데 옆방 영국인 친구가 공용부엌에 들어왔다. 그래서 어제 받은 물건들 중 초콜릿을 하나 줬다. 그랬더니 고마워 나 다크 초콜릿 엄청 좋아해! 하곤 곧 왓츠앱으로 냉장고에 something in return을 넣어뒀다고 했다. 궁금해서 후다닥 부엌에 가보니 킷캣에 테이프로 ESTHER 써붙여놨다..! 딱 두 개만 먹으려고 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전부 먹어버렸다.


 아빠가 타오바오에서 배터리를 주문해 달라고 부탁했다. 배터리가 생각보다 비싸서 네고 좀 해보려고 오랜만에 중국어를 사용했더니 머리가 알쏭달쏭했다.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미 할인된 가격이라는 답변에 네고는 포기하고 정가로 주문하는데 직배송도 안 되는 물건이라고 해서 오랜만에 배송대행지까지 사용했다. 한때 이런 직구로 사업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렇지만 이렇게 하나씩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나의 인풋이 늘어나는 비즈니스 모델은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뭔가 자동화를 해보면 좋겠다.. 까지 생각하다가 당시에 무슨 의대+개발+창업하는 내 나이 또래 누군가 인터뷰에서 소개팅앱이나 이런 부업(예를 들어 아마 이런 직구..) 같은 짜치는 것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이 문제를 10년간 풀다가 실패만 해도 그럼에도 그 문제에 그럴 가치가 있다 하는 것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진짜 내 인간적인 가치에 맞는 아이템만 남는다.. 라길래 그.. 건 아닌데 했던 기억이 난다.


 한창 택배 처리를 하다 생각해 보니 나도 한국에서 가져온 화장품들이 다 떨어져 가서 아빠에게 코스타리카로 택배를 부쳐달라고 하거나 1월에 올 언니에게 전달을 부탁하는 옵션을 생각해 봤다. 먼저 첫 번째 옵션으로 택배비를 찾아보니 5kg만 부쳐도 택배비만 10만원이었다. 과자랑 라면 부쳐준다고 했던 친구들아.. 로션 하나만 보내주겠니? 다음 옵션으로 언니가 중남미까지 갖고 온다.. 생각해 보니 언니가 코스타리카로 올 것도 아니었다. 그럼 아르헨티나에서 코스타리카로 택배를 부친다? 뭔가 집으로 안 올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친구들에게 보통 화장품은 어디에서 사는지 물어봤다. 친구가 한국 화장품 가게를 몇 개 추천해 줬는데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놀랐다. 다른 코스타리카 친구가 현지 다른 가게들을 몇 개 더 알려주기도 했는데 꼭 한국 물건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비쌌다. 그래서 임시방편으로 마트에서 세일하는 니베아 크림을 사 왔다. 괜찮을지 좀 걱정이 되었지만 역시 이런 쪽으론 예민하지 못한 나..(피부가 예민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스스로 피부가 그냥 예민한 건지 안 예민한 건지조차 모르겠는 사람.) 얼굴에 그저 니베아 크림 듬뿍 바르고 한동안은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mA1n38SKzr8&t=37s&ab_channel=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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