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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7. 가만히 서서 가마니 되어

고향사랑기부제

by 에스더

2024.12.18. (수)


코스타리카에 오면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연락이 많이 끊어질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친구들과 소식을 주고받으며 지내고 있다. 항상 대화할 때마다 마음속에 그리움과 반가움이 가득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럴 때마다 한국인 자아가 돌아와 마음 한 편에 숨어있던 불안함이 꼬물꼬물 고개를 든다. 다음 봄학기에도 또 여러 명의 친구들이 AI/데이터 분야 학위 과정을 밟기 시작한다. 나도 이 분야에서 새롭게 공부하고 또 일을 시작하면서 이전에 갖고 있던 직무에 대한 모호함이 많이 해소되고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방향성이 생겼기 때문에 비슷한 생각을 갖고 시작하는 친구들이 반갑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벌써 7년 차라고 앉아있는데 이제 마악 시작하는 친구들과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있는가 되돌아 생각해 보게 된다. 알게 모르게 안에 뭔가 쌓였겠지만 이거예요! 할만한 확실한 무언가가 있는가? 코스타리카 생활 중에 이걸 찾고 싶었는데 계속 미뤄지는 프로젝트 일정만 탓하면서 게을러지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생각해 보게 된다. 매일같이 새로운 AI/데이터 과정은 쏟아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직무로 뛰어들고 있는데 나는 연차만 쌓이는 사이 가만히 서있진 않았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코스타리카에 처음 왔을 때 작성했던 리스트를 다시 열어보았다. 그중 골프 배우기가 눈에 띄었다. 처음에 지금 동네로 이사오기 전에 멀지 않은 곳에서 한국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필드에서 직접 골프를 배울 수 있다고 추천해 주셔서 리스트에 써뒀던 곳이다. 그렇지만 지금 동네에서는 왕복 우버만 6만 원이 나와 가성비가 사라져 버린.. 그래도 한국에 가기 전에 꼭 한 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골프장에 연락해서 수업일정과 가격을 알아뒀다.


처음 코스타리카 왔을 때를 떠올리다 보니 갑자기 이제 벌써 연말이고 내년엔 혼자 연말정산을 해내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한국에 있을 땐 단순히 회사뿐만 아니라 책임님들께 업혀서 여러 가지 세금 공제도 받고 정산 자료들을 업로드하고는 했었는데.. 혼자서도 잘 살아내야지! 하는 생각에 소득 공제, 세금 공제 가능한 사항들을 찾아보다가 고향에 기부하고 그만큼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처음으로 우리 고향에 기부라는 것을 해보았다. 세액공제를 위한 것이었지만 이유야 어쨌든 지구 반대편에서 일하면서 나고 자란 곳에 기부도 하고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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