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DJ파티장소까지 달리기
2024.12.19. (목)
다음 주 월요일 갈라파고스로 떠나는 비행기 티켓을 샀다! 12월 24일부터 1월 1일까지 회사 캘린더상 빨간 날이라는 것을 이제 와서야 알게 되어서 요 며칠 떠날 곳을 열심히 찾아보았다. 뒤늦게 페루-볼리비아-칠레 패키지여행에 신청하려 했지만 부지런한 한국인들.. 이미 모든 것이 마감된 뒤였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 계신 한국인 동료분들과 여행을 계획해 보았지만 이 기간에 페루 날씨가 안 좋다고 해서 결국 처음 계획이었던 갈라파고스에 가게 되었다.
코스타리카에서 갈라파고스에 가는 비행기표가 마땅치가 않아서 (가격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그리고 코스타리카에도 멋진 바다가 많은데 한 번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해외로 가는 것이 아쉬워서 연말엔 코스타리카에 남겠다 선언해 놓고는 결국 여행 4일 전에 비행기 티켓을 사버렸다. 덜 억울했던 부분은 원래 비행기표가 워낙 비싸서 마음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사이에 가격이 크게 오르지도 떨어지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갈라파고스가 뭔데..이 돈이면 한국 갔다오지..하면서 흐린 눈 했는데 막상 비행기표를 사고 나니까 더 이상 연말 계획에 대해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또 동료분들께서 오시면 업고 다녀드릴게요! 해주시는 말씀이 따뜻해서 마음이 다 편해졌다.
그저 돈을 쓴 것뿐이면서 괜히 모든 게 정리된 것 같은 기분에 상쾌하게 빨래를 돌리고 생각해 보니 한 시간 뒤에 달리기 모임에 가야 했다. 빨래 한 번 돌리는데 또 무슨 코인을 사야 해서 아주 전략적으로 빨래를 돌리기 때문에 모든 양말은 이미 세탁기 안에서 돌아가는 중이었다. 아까부터 비가 오고 있어서 혹시 날씨 핑계로 러닝이 취소되지는 않을까 건물 루프탑에 나와보았는데 아래층에 사는 할머니께서 엉엉 울고 계셨다. 놀라서 물이랑 휴지랑 챙겨 드리고 들어보니 주변 나라에 있는 딸이 병원에 실려갔다고 했다. 손녀 대학 때문에 손녀와 단 둘이 코스타리카에 와서 지내고 계시기 때문에 당장 물리적으로 딸 옆에 있어줄 수가 없어 더 마음이 아프신 것 같았다.
할머니를 위로해 드리며 빨래가 다 되길 기다렸다. 결국 러닝 이벤트는 취소되지 않아서 세탁기에서 젖은 양말 하나를 꺼내 최대한 말려서 따로 챙겨갔다. 오늘은 산호세 센트럴을 달리기로 해서 함께 뛰는 다른 분이 픽업해 달리기 장소까지 데려다주셨다. 다행히 뛰기 시작할 즈음 비는 멈췄는데 요즘 약을 먹고 있어서인지, 감기 기운이 아직 있어서인지, 아니면 양말이 젖어서 결국 신지 못하고 맨발로 뛰어서인지 너무너무 힘들었다. 특히 달리던 중에 우리 집 근처까지 가까이 갔었는데 그땐 정말 몰래 집으로 뛰어들어가고 싶었다. 그렇지만 또 이걸 나중에 스페인어로 설명하려니 아득해서 그저 입을 닫고 달리다 보니 오늘의 코스가 마무리되어있었다.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러닝 세션이라고 달리기를 마친 뒤에는 DJ파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DJ파티라니 너무 부담스럽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뛰던 친구가 갑자기 디제잉을 시작하였다. 알고 보니 그냥 음악 틀어놓고 타코 먹으며 떠드는 시간이었다. 여기서 부담스러운 건 'DJ'나 '파티'부분이 아니라 '(스페인어로) 떠드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버티다 결국 자정이 되기 전에 몰래 우버를 불러서 와 우버 왔다! 안녕! 하고 도망 나왔는데 집에 돌아오니 아까 눈물 흘리시던 할머니께서 상태가 좋아진 따님과 영상통화를 하면서 나에게도 인사시켜 주셨다. 할머니와 대화는 많이 못해봤지만 매일 공용공간에 앉아계셔서 매일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두 마디는 꼭 나누는 분이라 마음이 쓰였는데 다행이었다. 결국 집에 돌아오는 시간까지도 양말은 마르지 않아 맨발에, 축축한 양말 한 켤레를 들고 다닌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