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메랄드 시티컵
2024.12.17. (화)
오늘은 오랜만에 같은 건물 아래층에 사는 친구와 함께 센트럴에 다녀왔다. 친구가 좋아하는 빈티지샵에 가서 둘 다 오늘은 물건이 별로다~하다가 떠나기 직전에 아쉬운 마음에 하나 둘 입어보다 결국 뭘 잔뜩 샀다. 나는 어깨에 두르는 숄 하나와 크리스마스 느낌의 파자마 바지를 하나 샀다. 친구는 요 몇 달간 인턴십에, 학교 일에, 조교 일까지 동시에 하느라 바빠서 통 만나질 못했는데 인턴 프로그램을 중간에 그만 두어서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친구가 인턴십에 참여하던 곳은 코스타리카에서 가장 큰 은행 중 하나였다. 그래서 왜 그만두었는지 들어보니 인턴쉽 시작 전에는 이야기가 없었던 영업 달성 수치 기준이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했다. 고객들의 문의에 응대해준 뒤에 상품을 영업해 판매해야하는데 그게 성향이랑 맞지 않았나보다. 그리고 같은 인턴쉽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다른 학생들은 이 과정 자체를 즐기는 모습에 매일 더 출근하기 힘들어졌다고 했다. 내가 같은 상황이었어도 지금 친구가 느끼는 스트레스의 10배는 더 받았을 것 같아서 크게 공감이 되었다.
그렇지만 나는 쫄보대장으로서 새로운 시작을 하기까지 굉장한 오랜 시간이 걸리고, 또 한 번 시작하면 중간에 무서워서 그만두는데까지 더 긴 시간이 걸리는데 이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판단한 뒤 이렇게 끊을 줄 아는 모습이 멋졌다. 나에게도 그런 결단력이 있었다면 지금 이미 코스타리카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인스타그램에서 스타벅스에 been there 시티 머그 시리즈로 위키드의 에메랄드시티와 쉬즈 대학교 컵이 나온 것을 보고 센트럴에 나온 김에 스타벅스에 들러보았다.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서 미국에만 출시되고 코스타리카까지 못내려왔나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스타벅스가 아니라 미국 플로리다 디즈니랜드에서 나온 굿즈였다. 포스트를 대충 봤다가 괜히 스타벅스에서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에메랄드 시티컵을 찾는 산타 믿는 (곧)30대가 되어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 빵집에 내려서 치즈케이크와 브라우니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둘 다 사버렸다. 감기에 걸려서 고생하고 있으니 맛있는 것을 많이 먹어야한다는 자기 합리화의 과정을 거쳤다. 시간이 애매해서 오늘 라틴댄스 수업은 다음으로 미뤘다. 그렇지만 스페인어 과제는 미룰 수 없으니 이젠 동료인지 클래스메이트인지 헷갈리는 칠레 동료분과 전화하며 스페인어 과제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