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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5. 붕어빵이 먹고 싶다

처음으로 한국에서 챙겨 온 상비약을 꺼냈다.

by 에스더

2024.12.16. (월)


요즘 몸이 좀 처진다 했는데 결국 목감기에 걸려버렸다. 사실 맨날 자꾸 먹고 침대에 누워버려서 역류성 식도염에 걸린 줄 알았는데 자고 일어나니 목감기로 목이 부은 것이 확실해졌다. 항상 목감기로 시작해서 감기 몸살로 끝나는 수순이라 벌써부터 귀찮다. 코스타리카에 온 뒤 처음으로 한국에서 챙겨온 상비약 파우치를 꺼내 들었다. 엄마아빠가 얼마나 꼼꼼히 싸줬는지 목감기부터 감기몸살까지 감기 종류별, 단계별로 약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엄마아빠의 사랑이 담긴 것 같은 약을 챙겨 먹은 뒤 스페인어 수업을 듣고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가족 톡방에 동생이 붕어빵 사진을 올렸다. 엄마가 딸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다. 나도 슈크림 붕어빵을 먹고 싶다. 사실 팥붕어빵도 괜찮다. 붕어빵 2개에 천원에 팔아도 우우하지 않을 자신도 있다. 약도 먹고 몸이 으슬으슬하니까 붕어빵도 가족도 더 더 그리워졌다. 원래 오늘 오후엔 주말에 있을 친구와 친구 딸 합동 생일 파티 선물을 사러 나갔다 오려했는데 남아있는 에너지를 아무리 모아봐도 침대 밖으로 나오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들로 대충 선물 주머니를 만들고 다시 누웠다.


오후 늦게는 그래도 햇살을 보려고 건물 루프탑에 나와서 어제 시크릿산타 선물로 받은 초레아도에 커피를 내려 마셔보았다. 나는 사실 커피 맛을 모르는 아무 혀인데 그래도 커피로 유명한 코스타리카의 커피라니까 괜히 좀 맛있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마곡에서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가면 가끔 원두를 구매하시던 팀원들 얼굴이 떠오르면서 나중에 돌아가면 꼭 코스타리카 커피 원두를 전달드리고 싶다 생각했다.


전 동료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전에 같이 프로젝트를 했던 책임님께서 부문을 옮기신다는 연락을 주셨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에게까지 이런 소식을 전해주시다니.. 벌써 연말 인사이동 결과가 어느 정도 나왔나 보다. 너무 옛날이야기 같다가도 당장 작년 이맘때 즈음만 해도 팀원들이랑 커피를 마시며 전사공지 페이지를 새로고침하고 사무실 짐을 싸던 내 모습이 떠올라 기분이 이상했다.


저녁에 댄스 수업에 가기 전에 스페인어 수업을 같이 듣고 있는 칠레 동료분과 팀즈로 만나서 서로 인터뷰하는 과제를 했다. 그리고 아주 우울한 상태로 라틴댄스 수업에 갔다. 항상 수업을 전혀 못 따라오시는 분이 계신데 오늘 유난히 그 분과 여러 번 파트너로 같이 추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덕분에 수업 내내 웃다가 훨씬 나아진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다. 나중에 칠레 동료분이 같이 과제할 때 우울해 보여서 걱정하셨다고 했는데 수업 듣고 와서 기분이 나아져서 다행이라고 해주셨다. 나는 혼자서 감정을 많이 표현하지 않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항상 주변 사람들이 다 아는 걸 보니 아주 티가 나는 사람인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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