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코스타리카 커피메이커 초레아도가 생겼다.
2024.12.15. (일)
어제 일찍 잤다고 생각했는데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게 나름 힘이 드는 일이었는지 아침에 몸을 일으키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오전에 교회를 갔다 오후에 친구들을 만나는 계획을 수정해 오전은 침대에서 보내기로 했다. 오전에 푹 쉬고 겨우 몸을 일으켜 나갈 준비를 했다. 나갈 준비를 하는 중에도 계속 친구들을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이 바뀌었다. 지난주부터 계속 이 코스타리카 타임을 계산하다 화룡점정으로 어제 9시간 가까이 대기한 일에 지쳐버려서 도대체 몇 시에 만나는 것일까.. 를 생각하다가 집에 선물을 놓고 와버렸다.
오늘은 시크릿 산타? 비밀 친구? 마니또? 선물 교환을 위해 만나는 것이라 내가 뽑은 친구만 선물을 받지 못하면 안 되니 결국 약속장소에 다 도착한 뒤 바로 우버를 불러서 다시 집으로 다녀와야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지각해 버린 나.. 앞으로 코타 타임 어쩌고 할 자격을 모두 잃었다. 처음엔 한국 마니또랑 비슷한 건가 싶었는데 지난번 연구소에서 하는 Amigo secreto/invisible 도 보고 이번에도 보니 한국에서 새 학기에 많이들 하는 마니또와 또 다른 것 같았다.
우선 일정 기간에 거쳐 책상 위에 이것저것 몰래 올려두고, 괜히 챙겨주다 마지막 날에 서로 추리해 보면서 본인 마니또에게 역선물을 주는 한국과 달리 시크릿산타는 처음 누굴 뽑으면 그 사이 본인이 원하는 선물을 리스트에 올려두고 하루 다 같이 모여 본인 시크릿 아미고에게 그 선물을 전달해 주는 식이다. 그러니 서로 추리할 거리가 없어 본인의 시크릿 아미고를 연상할 수 있는 묘사를 하며 누구일지 맞춰보기도 한다. 나는 위시리스트에 러닝이나 등산에 관련된 용품 아무거나! 를 올려두었는데 어려웠는지 다시 올려달라길래 이번엔 집 앞 몰에서 발견한 알록달록 노트를 구체적으로 찍어 올렸다. 그런데도 다시 한번 요청이 와서 결국 코스타리카 어디에서든 구할 수 있는 초레아도(코스타리카식 드립커피 메이커)를 작성했다.
내가 뽑은 미니소에서 BTS에 관련된 물건 아무거나! 를 원해서 그 친구의 최애를 알아낸 뒤 가방과 인형을 준비해 왔다. 이젠 내 미적 기준이 대중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아서 조금 걱정하는 마음으로 전달했는데 다행히 너무 좋아해 주었다. 그리고 나도 나를 뽑은 친구에게 마지막으로 작성했던 초레아도와 커피 원두를 받을 수 있었다. 선물을 교환한 뒤엔 다 같이 공원으로 가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 친구들을 만나면 카페-맛집이 국룰 코스였는데 코스타리카에 와서는 이렇게 공원에 가거나 아예 친구 집에서 노는 것이 아직도 익숙하지가 않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같이 선물을 골라준 친구와 선물 쇼핑을 갔을 때 친구가 귀엽다고 했던 토끼 인형을 몰래 따로 사뒀다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챙겨 줬다. 처음엔 9월 독립기념일이 지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기 시작하던 이 나라가 의아하기도 했지만 나도 이제 춥지 않은 크리스마스에 느껴지는 이 따뜻한 분위기에 함께 행복해지는 것 같다. 센트럴까지 나온 김에 어제 페스티벌에서 입었던 한복을 돌려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