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몬에서 타말 만들기
2024.12.21. (토)
크리스마스 약속 취소로 대신 오늘 리몬에 가서 크리스마스 음식 타말을 만들게 되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또 다른 친구의 친구네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오래된 친구의 가장 가까운 지인도 거의 알지 못했는데 이런 게 문화차이인가 보다. 아침 6시에 출발하기로 했기 때문에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준비를 마쳤다. 코스타리카는 크게 알라후엘라, 까르따고, 에레디아, 과나카스테, 산호세, 리몬, 푼타레나스 총 일곱 개의 지역이 있는데 이 중 아직 가보지 못한 리몬과 과나카스테 중 한 군데인 리몬에 처음 가보는 날이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분명 12월은 건기가 시작되는 달이라고 했는데, 그중에서도 12월과 1월은 선선하니 날씨도 좋고 비도 안 오는 가장 좋은 시기라고 했는데 폭우가 쏟아졌다. 친구네 집은 리몬에서도 내륙지방 쪽에 있지만 시간이 되면 바닷가도 보고 올 계획이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바다 방문 계획은 가는 길에 취소되었다. 그렇게 세 시간가량 달려 리몬에 도착했다. 항상 리몬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어서, 산호세와 엄청 다른 모습일 줄 알았는데 바닷가 쪽이 아니라 그런지 산호세에서 조금 외곽으로 나가면 보이는 마을들의 모습과 비슷했다.
집이 여러 개 모여 있었는데 총 13남매가 각 집에서 가족을 꾸리고 사는 사는 집성촌 같은 느낌이었다. 그중 가장 큰 집에서 커피와 직접 만든 빵을 내어주셨는데 집 전체가 크리스마스 장식이 되어있었다. 특히 예수님이 태어난 모습을 재연해 꾸며놓는 장식이 집 한가운데에 있었다. 가톨릭이 이 나라의 국교라 그런지 이 비슷한 장식은 우리 연구실 앞에도 있었고 동네 여기저기에서도 볼 수 있다. 여기에 24일에서 25일로 넘어가는 밤에 아가 예수님을 장식 속 마구간 안에 내려놓는 게 전통이라고 한다. (사무실에 있는 장식에는 누가 00시에 아가 예수님을 갖다 놓을까?)
주변 집들 외에는 큼직큼직한 초록색의 이파리들 밖에 안 보이는 풍경 위로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데 안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뭔가 평화로웠다. 커피를 다 마시고 곧바로 집들 가운데 만들어져 있는 야외 부엌 공간에 가서 타말을 만드는 과정을 시작했다. 먼저 무더기로 쌓여있는 플란테노 잎을 걸레로 닦아야 했다. 닦으면서도 위에 날아다니는 재가 자꾸 쌓여서 이걸 이렇게 대충 걸레로 닦아도 괜찮은가 하는 마음과 아무리 닦아도 닦아도 줄어들지 않는 플란테노 잎 무더기를 보며 이건 단순한 체험을 넘어섰다 싶었다. 그리고 이어서 안에 들어갈 채소들을 썰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채소가 엄청 들어갔다. 고작 5개월 살았지만 이미 한국에서 한평생 칼을 들은 것보다 코스타리카에 와서 칼로 요리한 횟수가 더 많은 것 같다. 그리고 옆에서는 아궁이에 불을 때어서 고기를 튀기고, 또 굽고 있었다.
아궁이에 불을 때어서 요리를 하는 것은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연기와 재가 너무 심하게 날아다녀서 왜 이 모든 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경력직 티카들이 겉옷을 벗고 최소한의 옷만 입고 시작하는지 뒤늦게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어깨에도 머리에도 재가 쌓이도록 일을 하다 점심식사 시간이 되었다. 주변에서 놀다 울다 싸우다 하던 아이들까지 전부 둘러앉아서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카리배식 닭고기라고 했는데 코코넛 뭐를 넣어서 달달하고 맛있어 아주 많이 먹어버렸다. 거기다 아궁이 불 위에 플렌테인을 구워주셨는데 이것도 굉장히 맛있었다. 처음 코스타리카에 왔을 땐 이 구운 바나나 같은 것이나 콩이나 아주 어색하고 먹기 힘들었는데 이젠 뭐든 받아먹는 사람이 다 되었다.
오후에는 감자를 아주 많이 갈아서 메인 반죽을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 들어가는 기름의 양을 보고 12월에는 다들 살이 찐다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13남매의 어머니께서 첫째 딸에게 레시피를 가르쳐주시면서 같이 일을 진행하셨는데 어머니께서 레시피를 이제 다음 세대한테 전달하기 위해 이렇게 일을 한다고 했다. 설날이나 추석에 뵙던 큰 외숙모가 생각났다. 그리고 명절날 할머니 댁에 가면 중간중간 친척들이 오고 가는 것처럼 13남매가 남편이나 부인과 함께 사이사이에 인사를 하러 들리기도 하고 와서 같이 일을 하기도 했다. 타말을 만드는 것은 약간 한국에서 전을 부치는 것이랑 비슷한 문화인 것일까?
드디어 모든 준비를 마치고 타말을 싸는 순서가 되었다. 먼저 두 개의 플렌타인 잎을 교차로 깔고 그 위에 한 명이 반죽을 올리면 당근과 피망, 고수와 고기, 밥을 올리면 완성이다. 그리고 플렌타인 잎을 잘 오므린 뒤 두 개의 타말을 끈으로 묶어 물속에 찐다. 전문가들의 특강과 이후 실습으로 곧 나도 고수로 거듭날 수 있었다. 한국인의 효율추구 정신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타말을 찍어내다 보니 문득 이걸 몇 개나 만들어야 하는 건지 궁금해졌다. 여쭤보니 총 600개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전의를 상실해서 쉬엄쉬엄 만들다가 곧 산호세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600개 끝까지는 함께하진 못하고 150개 즈음에서 그만두게 되었는데 집에 가는 길에 타말을 한 보따리를 싸주셨다. 그리고 친구의 어머니께서 꽉 안아주시면서 꼭 다시 놀러 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다. 돌아갈 저녁시간이 다 되자 비가 조금씩 그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밤이 되어 산호세에 도착했다. 받아온 타말은 주변 이웃들에 다 나눠주고 두 묶음만 냉동고에 넣어두었다. 이미 냉장고에 다른 사람들이 챙겨준 타말이 있었는데 쌓여가는 타말이 코스타리카 사람들의 정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