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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31. 티코 산타

차갑던 집주인까지 따수워지는 크리스마스

by 에스더

2024.12.22. (일)


어제 피곤해서 옷을 못 빨고 두었더니 타말을 만들며 밴 연기 냄새가 엄청났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 손빨래로 옷을 빨고 새로운 옷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 옷이 어떤 옷이냐면! 어제 집에 들어오는 길에 친구네 가족이 크리스마스라고 작고 귀여운 귀걸이와 함께 선물해 준 맨투맨이다. 따뜻해진 몸과 마음으로 늦은 아침, 이른 점심으로 망고와 바나나, 파파야와 파인애플까지 넣어 코타 과일 요거트를 만들어 먹었다.


라스트 미닛이지만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일요일이라 집 근처 가게들은 다 문을 닫아서 멀리 나와야 했다. 먼저 약국에 가서 필요한 약을 한 통 샀는데 한국에서는 5천 원이면 살 약이 3만 원 정도 했다. 또 약에 관련된 것이라 대충 SíSí 하지 못하고 정확히 소통하려니 좀 힘들었다. 약국에 이어 어제 받은 마음을 돌려주기 위해 서점을 찾았다. 분명 선물을 고르려고 왔는데 알록달록한 가방이 눈에 띄어서 셀프 선물을 해버렸다. 그리고 미리 알아둔 책을 사는데 책 한 권에 5만 원이나 했다. 평소에도 코스타리카에 사는 것이 비싸다고 느꼈지만 약 한 통에 3만 원에 이어 책 한 권에 5만 원을 지불하고 나니 코스타리카의 물가가 더욱 피부로 와닿았다.


필요한 물건들을 모두 구매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또 새로운 선물이 도착해 있었다. 집주인이 12월 초에 층별로 마련해 둔 트리 아래에 입주민 각각을 위한 선물이 잔뜩 있었다. 무슨 집주인까지 크리스마스 선물을 챙겨주다니 코스타리카 사람들이 크리스마스에 얼마나 진심인지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건물 루프탑에 식물을 키우는 아래층 친구는 작년에 식물 영양제 같은 것을 받았다길래 나는 취향적인 부분에서 집주인과 소통한 적이 없는데 무엇이 들어있을지 궁금했다. 열어보니 크리스마스 빵 파네토네와 여러 간식거리들이 들어있었다.


내가 혹시 부엌에 수세미가 있는지 물어봤을 때 너는 지금 호텔에 있는 게 아니다, 혹시 집에 벌레가 나오는지 물어봤을 땐 너는 지금 한국에 있는 게 아니다 하며 이상한 화법을 보여주던 집주인조차 따뜻해지는 크리스마스다. 나도 티코 정신으로 크리스마스에 만날 다른 나라에 계신 동료분들을 위한 선물들을 준비해서 포장한 뒤 내일 떠날 갈라파고스 여행 짐을 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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