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해외여행 떠나기
2024.12.23. (월)
어제 잠들기 전에 가방에 넣을 짐들을 전부 꺼내뒀는데 막상 눈떠서 다시 보니 이 모든 걸 저 작은 가방 안에 넣을 수 있을까 싶었다. 베네치아 교환학생 생활 때, 몇 박 며칠이든 배낭 하나에 짐을 우겨넣고 유럽 여기저기를 다니는 것에 떠나는 것에 맛들려서 이번엔 제대로 된 여행용 배낭을 들고 왔다. (지금 생각해 보니 베네치아 교환학생 생활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올해 생일 선물로 챙겨줬다!) 그런데 막상 들고 가보려니 배낭 자체 무게도 있고 기내용 수화물을 추가해야 하길래 결국 책가방 하나를 들고 떠나게 되었다. 그래서 가서 만날 한국 동료들 선물 꾸러미에서 라면도 빼고, 이것저것 제외하고 꼭 필요한 것만으로 짐을 다시 싸야 했다.
마음은 이미 공항에 가있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스페인어 수업이 있었다. 그렇지만 함께 수업을 듣는 동료들은 이미 갈라파고스에 가있어서 수업 분위기도 함께 떠버렸다. 갈라파고스까지 가서 스페인어 수업을 듣다니.. 선생님과 다 함께 올해의 마지막 수업 기념사진까지 찍고, 수업 후에는 미리 만들어둔 김치볶음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은 뒤 마지막으로 집과 부엌을 정리했다. 공항까지 가는 길이 걱정이었는데 생각보다 우버비가 얼마 안 찍혀서 괜히 더 상쾌한 기분으로 긴 연휴 여행의 첫 발을 내디뎠다.
공항까지 30분 정도 걸려 비행기 뜨기 두 시간 반 전에 공항에 도착했다. 휴가기간에 타는 국제선인데 괜찮을지 걱정했지만 앞으로 코스타리카에서 떠나는 비행기는 넉넉잡아 두 시간만 미리 와도 충분하겠다 생각했다. 짐 검사 줄을 서고 있는데 사무실 인사 담당자를 마주쳤다. 요즘 길이나 식당에서 아는 사람을 종종 마주친다. 처음엔 내가 누굴 많이 아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마주치는 게 신기했다. 그렇지만 찾아보니 산호세는 35만 명 정도 살고 있다고 하니 오가다 서로 종종 보는 게 크게 신기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맞나?)
금방 게이트에 도착해 긴 대기 시간 후 저녁이 다 되어 에콰도르 키토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내 옆자리 부부가 여러 가지 주문해 드시더니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되어 나도 덕분에 눕코노미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비행시간 자체는 길지 않았는데 하가 다 진 뒤 에콰도르에 도착했다. 내일 갈라파고스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키토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정이다. 다행히 코스타리카에서 사용하던 심카드가 에콰도르에서도 터져서 호텔에 픽업을 요청했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강아지랑 놀다가 늦은 저녁을 먹었다. 가능한 메뉴가 햄버거 밖에 없다고 해서 주문했는데 음식이 나오는데 30분도 넘게 걸린 것 같다. 그래도 생각보다 맛이 있어 놀랐다. 에콰도르는 달러를 사용하는데 대부분의 가게에서 현금만 받았다. 그리고 스페인어 발음이 코스타리카랑 또 살짝 달라서 신기했다.(예를 들어 yo를 발음할 때 코스타리카는 약간 죠..같이 들리는데 에콰도르는 정확히 요!라고 하는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와 잠들기 전, 잠자리가 바뀌어서인지 조금 뒤척이다 문득 코스타리카를 떠나야 할 그날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지난 8월 코스타리카에 도착한 이후 약 5개월 만에 공항을 다시 찾으며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많은 것들이 바뀌었음을 느꼈다. 막연히 두려운 마음만 가득하던 이전과 달리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여기저기서 받은 사랑을 입고, 먹으며 출국했다. 지금까지 항상 새로운 곳에 일이나 공부를 하러 갈 때는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데 또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면 너무 많이 정들어 정신없이 울면서 귀국행 비행기를 타고는 했다. 코스타리카에 오면서도 덜덜 떠는 첫 단계는 역시나 거쳤는데, 모든 게 너무 낯설어서 대신 덕분에 돌아가는 날에는 그렇게 힘들지 않겠구나 생각했지만 오늘 코스타리카를 떠나며 그날이 오면 또다시 힘들겠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