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수다 타임의 소중함과 즐거움
2024.12.24. (화)
크리스마스 이브다! 괜히 들뜨는 기분으로 눈을 뜨고 호텔 주변을 산책하는데, 어제 해가 진 뒤 도착해서 보이지 않던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코스타리카와 또 다른 풍경에 해외여행을 왔다는 게 와닿았다. 방으로 돌아와 다시 키토를 떠날 준비를 마쳤다.
공항으로 돌아가기 전에 조식을 방에 올려주겠다고 했는데 역시나 약속된 시간에 오지 않는 조식을 기다리며 다가오는 비행시간에 조금씩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뒤늦게 전달해 주신 치즈 넣어 누른 빵은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랐는데 뜨거운 커피를 스티로폼 컵에 넣어주셔서 또 한 번 놀랐다. 빠르게 조식을 먹은 뒤 호텔 주인으로 추정되는 아저씨가 공항까지 태워다 주셨다.
어제저녁에 공항에 가고 싶은 시간을 말할 때부터 자꾸 프론트에서 좀 더 늦은 시간을 부르시던 이유를 공항에 도착해서야 깨달았다. 공항에서 갈라파고스행 비행기를 타려면 TCT(Tarjeta de Control de Tránsito) 발급(20달러.. 여기서부터 갈라파고스의 수금이 시작된다.), 짐 검사 등 할 일이 많았는데 모든 과정이 20분 만에 끝나서 또다시 금세 게이트 앞에 도착해 버렸다. 게이트 앞에 앉아 연말 해야 할 일 중 하나로 계속 신경 쓰이던, 양도소득세 절감을 위한 미주 매수-매도를 드디어 해냈다.
비행기는 금세 에콰도르 과야킬에 도착했는데 과야킬이 목적지인 사람들은 내리고, 또 과야킬에서 갈라파고스에 가는 사람들이 새로 탔다. 어제 탔던 비행기도 코스타리카-에콰도르-아르헨티나행 비행기였다. 속으로 그럼 쭉 타고 있으면 부에노스아이레스 갈 수 있다는 건가? 싶었는데 오늘 보니 버스처럼 그 자리에 또 새로운 사람이 탑승하는 시스템이었다. 꽤 오랜 시간 대기 후 다시 갈라파고스로 향했고, 곧 발트라 섬에 있는 시모어 공항에 도착했다.
간이 공항같이 생긴 곳에 내리자마자 선인장과 이구아나들이 반겨주었다. 그리고 섬 입도비를 200달러나 받았다. 섬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뒤로도 이런 돈을 내야 할 일이 많았는데 무조건 현금으로만 수금해서 지갑이 비어갈 때마다 좀 불안해졌다.) 원래 100달러였는데 몇 달 전부터 200달러로 올랐다고 한다. 그중 중남미 특정 국가 국민들의 입도비는 100달러였는데 코스타리카 카드를 한 번 내밀어볼까 하다가 말았다. 그래도 한 번 물어보걸 하는 생각이 마음에 조금 남았는데 이후 만난 다른 나라에 계신 동료분들이 이미 물어보셨다가 여권 기준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해서 속이 시원해졌다.
어제 갈라파고스에 먼저 가있는 동료들이 공항에서 버스-배-버스-택시를 타고 한 세 시간 걸려 숙소에 도착했다는 이야기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다. 먼저 공항에서 5달러를 내고 버스를 타고 산타크루즈 섬으로 갈 수 있는 페리 선착장으로 왔다. 그리고 배를 타고 1달러를 내고 곧 산타크루즈 섬에 도착해서 또다시 5달러를 내고 버스를 탄다. 그리고 이 버스는 버스에 따라 랜덤으로 이상한 센터 한가운데 내려줄 수도 있고 혹은 시내에 내려줄 수도 있는데 나는 하필 전자에 걸렸다. 택시를 잡고 다시 시내로 향하는 사람들을 멀뚱멀뚱 구경하다가 인터넷까지 안 되는 것을 확인하고 정신 차려 옆에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아저씨랑 이야기하다 버스 기사 아저씨한테 적정 택시비를 물어봤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어차피 본인도 시내 갈 거라고 그냥 버스를 태워주셨다. (아니 그럴 거면 그냥 버스 탄 사람들 다 같이 시내까지 가면 되는 거 아닌가.. 택시 아저씨들이랑 계약을 했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버스 택시를 타고 숙소 앞에 도착했다. 코스타리카를 떠난 지 24시간 즈음이 되었을 때 숙소에 체크인할 수 있었다. 코스타리카에서 쓰던 심카드가 에콰도르에서는 잘 작동했는데 갈라파고스에서는 인터넷이 되질 않았다. 그래서 그냥 대충 짐만 놓고 해가 지기 전에 집 밖으로 나왔다. 어디로 걸어야 할지 몰라 길을 물어 물어 메인 거리로 나왔는데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위를 올려다보니 콜롬비아에서 오신 동료분이 루프탑 레스토랑에서 손을 흔들고 계셨다.
오늘 만나기로는 했지만 언제 어디서 만날지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우연히 마주치다니! 심지어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에서도 평생 서로 아주 가까운 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되어 세상이 정말 좁구나 싶었다. 그리고 칠레에서 오신 다른 동료분과도 인사했다. 칠레분과는 요즘 스페인어 수업을 같이 듣고 있는데 화면 너머로 보던 모습과 또 다른 이미지라 신기했다. 그렇게 갈라파고스 첫 식사로 새우튀김을 먹고서 코스타리카에서부터 준비해 온 작은 크리스마스 선물과 카드를 전달드렸다.
그리고 동료분들의 에어비앤비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먹으면서 이미 얘기를 주고받은 투어사에서 앞으로 산타크루즈섬->이사벨라섬->산타크루즈섬->산크리스터발섬 페리를 한 번에 예약하였는데 이게 벌써 90불이었다. 그리고 배를 타고 내릴 때마다 작은 배를 타고 페리까지 가야 해서 한 번 탈 때마다 2불씩 추가로 내야 하니 총 96달러이다.(!) 그러면서 카드는 절대 안 받아주는 멋진 섬..
섬 하나에 투어 하나씩을 하기로 했는데 오늘 핀존 투어를 하고 오셨다고 해서 나는 산타크루즈섬에서의 투어는 스킵하게 되었다. 나는 혹시 하게 되면 플로레아나 섬투어를 하고 싶었는데 이 섬에는 무인 우체국이 있어서 편지를 쓰고 놓고 가면 오가는 여행자들이 본인들 집과 가까운 곳으로 가는 편지들은 갖고 돌아와 대신 부쳐주는데, 여기서 꼭 편지를 보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득 예전에 어디 여행을 가면 꼭 우체국을 찾아서 누군가에게 카드를 써서 부치던 것이 떠올라서 갈라파고스 우체국을 찾다가 알게 된 섬이었다. 그렇지만 갑자기 오고 가는 페리만 84불이라는 것을 깨닫고 깨져버린 낭만.. 그니까 수많은 우연 덕분에 편지가 도착해도 이건 10만 원짜리 카드인 거잖아요?
동료분들의 에어비앤비에 갔더니 그 사이 집주인분이 와인과 함께 간단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랑 카드를 숙소에 가져다 놓으신 것을 발견했다. 여기까지도 스윗했는데 방명록 노트가 있어서 읽어보니 와인 이름과 숙소 주인의 이름이 같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뒤에 와인 스토리를 읽어보니 내가 가고 싶었던 플로레아나 섬에 부모님이 이주하여 지금은 이 산타크루즈섬에서 살면서 와인도 만들면서 가업을 잇고 있다는 낭만 가득 스토리가 있었다. 이따 크리스마스로 넘어가는 자정에 와인을 나눠 마시기로하고 밖으로 나와 저녁을 먹을 곳을 찾았다.
그 길 위에서 수많은 바다사자와 이구아나를 마주쳤는데 나만 엄청 사진 찍으며 흥분하는 것을 보고 이것도 2, 3일이면 익숙해지는구나 싶었다. 저녁으로는 멕시칸 음식을 먹고 산책을 하다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서 와인과 함께 먹을 과자를 사 오는데 이 섬에서 적당한 가격의 적당한 과자를 고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밤새도록 떠드는데 문득 이렇게 머릿속으로 말할 때마다 생각하지 않고 편하게 오랜 시간 동안 떠든 게 한국을 떠난 뒤로 거의 처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곳으로 오는 비행기에서는 내내 내렸을 때 한국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는데 몇 시간 지났다고 이런 상태라면 재계약하게 된다면 1년 더 이곳에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원래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낯을 엄청 가리는데 이분들을 만나고선 전혀 그렇지 않아서 팀즈에서 몇 번 뵈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냥 같은 나이 또래 한국인들을 만나니 너무 신나 버렸던 것 같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땡땡땡 Feliz Navidad을 하고 숙소까지 데려다주셨다. 오늘 비행기에, 배에, 버스에 피곤할 법도 한데 들뜬 마음에 잠도 안 와서 뒤척이다 새벽 늦게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