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마지막 밤
2024.12.30. (월)
오늘은 수많은 추천평으로 기대하고 기대하던 360 투어를 가는 날이다. 말 그대로 배를 타고 산크리스토발 섬을 360도 둘러보고 사이사이 키커락 같은 곳에 내려 스노클링을 하는 것인데 오늘의 핵심은 망치 상어 보기이다. 먼저 아침 7시에 투어사에 도착했다. 어제 배운 교훈으로 오늘은 선크림 위에 선크림 위에 선크림을 발라댔다. 그러나 이미 뜨거운 팔다리가 되어버려..
이번 투어는 처음 출발부터 조금 이상했다. 지난번엔 미리 핀과 웻수트를 받아 사이즈를 확인하고 갔는데 이번엔 다 보트에 있다고 하더니 이상해서 여러 차례 다시 물어보니 뒤늦게 선착장으로 사이즈가 안 맞는 낡은 핀과 웻수트를 가져다주었다. 장비의 상태는 믿을 수 없었지만 갈라파고스-캐나다 출신 가이드가 아주 친절하고 또 영어를 잘해서 좀 더 마음 놓고 투어에 참여할 수 있긴 했다.
우연히 다른 한국분들과 함께 투어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투어 내내 여러모로 불만이 있으셔서 일행들에게 한국어로 말씀하시는데 나중에는 조금 듣기 힘들었다. 그래서 배 2층에 올라와서 밖을 보며 투어에 참가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배를 타고 나와 키커락에 도착했다. 키커락은 영어로는 발로 무언가 차는 모양으로 보여 키커락이라고 부르고 스페인어로는 자는 바다사자 같다고 León Dormido라고도 불린다. 그냥 돌 아닌가 했는데 막상 가까이에서 보니 생각보다 크고 웅장했다. 오늘의 메인 스노클링 스팟이 이 두 개의 돌 가운데 공간이었는데 이제 바다 스노클링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여긴 또 다른 차원의 심연처럼 느껴졌다.
점점 두려운 마음에 잡아먹히고 있었는데 이미 지불한 투어비가 정신 차려! 하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어 물에 들어갔다. 물은 차가웠고 파도도 셌고 바다는 당연히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깊었다. 대신 지금까지 들어갔던 어떤 물보다 앞에 시야가 잘 보여서 이미 익숙해진 바다사자가 나타나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렇지만 기대하던 망치상어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물고기 떼와 가오리 말고는 새로운 해양생물을 보지는 못했지만 사실 나는 이미 쪼그라든 마음에 그 키커락을 끼고 한 바퀴 돌며 여기에 내가 떠다녔다는 사실 하나로 족하기도 했다. 다이빙 자격증이 있는 사람들은 여기서 바닥까지 들어가는 스쿠버다이빙을 많이들 한다고 한다. 어제 블로그에서 50일 동안 갈라파고스에서 지내면서 다이빙만 매일 한 사람의 후기도 봤다.
다시 배에 올라 조금 진정된 마음으로 다음 목적지였던 해변에 도착했다. 가이드의 선크림 잊지 말고 여러 번 챙겨 바르라는 말에 선크림을 바르는데 다른 외국인 분들도 내 다리가 빨개진 것을 보고(거의 검붉은 수준이었다.) 열심히 선크림을 챙겨 바르셨다. 여기서는 산책도 하고 또 한 번 스노클링을 했는데 이번엔 웻수트 없이 물에 들어갈 정도로 두려움에 구겨졌던 마음이 좀 펴졌다. 좀 더 안으로 잠수해서 상어 떼를 봤지만 이사벨라 섬에서 처음 봤을 때만큼의 감동은 없었다. 와중에 동료분 스노클링 장비 고무가 찢어져서 빨리 물 밖으로 나가고 싶기도 했다.
다시 밖으로 나와 점심으로 골랐던 닭고기를 먹고 과일도 먹었다. 멜론이 맛있어서 엄청 많이 먹었다. 그리고 자유시간이 주어져서 반대편 해변으로 가서 스노클링도 하고 산책도 하는데 나는 더 이상 물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 동료분과 모래 위에 앉아 바다를 구경했다. 옆에 한국어가 들려보니 한국에서 오신 한 가족이 아이와 아주 행복하고 놀고 계셨다. 한국에서부터 아이까지 데리고 다른 곳도 아니고 갈라파고스에 오다니 대단하시다 생각을 하다 그냥 에콰도르나 주변 남미 국가에서 지내는 분일 가능성이 더 높지 않으려나 싶었다.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배를 타고 선착장으로 돌아와 360도 중 남은 부분을 돌며 투어를 마쳤다.
숙소로 돌아왔더니 칠레 동료분은 산타크루즈 섬으로 떠나신 뒤였고 우리도 씻고 나와 어제 먹으려고 했던 버거와 새우 요리를 먹었다. 아저씨가 내일 31일에 해피아워에 오면 무료로 뭘 준다고 꼭 오라고 하셨지만 아저씨 저희는 내일 떠나는걸요.. 그리고 한 바퀴 산책을 하는데 첫날부터 너무 궁금했던 종이 인형들을 정리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이게 뭔지 물어보니 매년 마지막 날에 이 종이 인형을 태우는 전통이 있다고 했다. 자꾸 한 명씩 손에 이 종이 인형을 들고 다니길래 각 집에서 하나씩 만들어서 가져다 놓는 것인지 물어보니 그건 아니고 육지에서 한 가족에 하나씩 사서 들고 온다고 했다. 그리고 31일에 다 같이 모여서 이걸 태우고 춤추고 어쩌고 아주 신나서 설명해 주시는데 내일 31일에서 1일로 넘어가는 시간에 함께하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 다 들정도였다.
아이스크림가게로 가서 구름케이크(수플레 팬케이크)와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왔는데 건너편 바다에서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모여서 밤바다에 다이빙을 하고 수영하는 것을 봤다. 아니 해 쨍쨍한 한낮에 조금만 뛰어 들어가는 것도 그렇게 무섭던데 어떻게 아무것도 안 보이는 밤에 저 높은 곳에서 뛰어 들어가서 맨몸으로 수영을 하나 신기해서 그쪽으로 걸어가는데 또 그 와중에 동네 애들이 릴스라도 찍는지 춤연습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건 또 우리 서울에 초중딩이랑 크게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서 귀여웠다. 그렇게 아쉬움이 남으면서도 동시에 이젠 슬 내 방 침대에 눕고 싶다 하는 마음도 드는 마지막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