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과 김말이 튀김
2024.10.12. (토)
어제 운동을 제대로 했더니 눈을 뜨자마자 온몸 구석구석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더 누워있고 싶었지만 8시 30분까지 시험 장소로 가야 해서 바로 한인 교회로 향했다. 신발 소리가 나면 안 된다고 해서 운동화에 반팔티를 입고 왔는데 바람막이를 챙겨 왔는데도 생각보다 날이 쌀쌀했다. 오늘 하루종일 복도=밖에 있어야 하는데 걱정이 되었다. 같이 일하러 온 친구가 옷(심지어 블랙핑크 후드!)을 빌려줘서 덕분에 살았다. 시험 장소를 세팅하고 복도에 앉아 학생들을 맞이했다.
나의 주된 임무는 핸드폰을 받아서 시험 시간동안 갖고 있는 아주 중대한 역할이었다. 사실 중간에 누가 밖으로 나오면 화장실을 데려다 주든 어떤 역할을 해야 했지만 누구도 시험 시간 끝까지 나오는 일 없이 무탈하게 마쳤다. 한 명씩 신원을 확인하고 스마트 기기들을 받아 파우치에 꼽는데 꼭 핸드폰 뒷면에 케이팝 연예인들 사진이 붙어있어서 귀여웠다. 그중 BTS 비율이 역시 압도적이었다. 시험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복도에 앉아 가져온 스페인어 단어집을 봤다. 교실 안에서는 코스타리카 친구들이 0.5배속 한 것 같은 한국어 대화를 들으며 듣기 파트 문제를 풀고 있고 나는 여기에 앉아 반대로 스페인어를 공부를 했다. 우리.. 한국어와 스페인어 그 사이 어딘가에서 만나.
오전 TOPIK 레벨 1 시험을 마치고 점심시간에는 친구 어머니께서 우버를 통해 보내주신 김말이 튀김과 김밥을 먹었다. 나도 시험 기간이 되면 꼭 엄마가 김밥을 싸주셨는데(반대로 소풍이라도 가는 날이면 꼭 유부초밥을 싸주시곤 했다. 유부초밥의 유부의 물이 안 좋다고 꼭꼭 짜서 만들어주셔서 동생이랑 맨날 투덜거렸는데-아니 아직도 투덜거리는데..) 어쩌다 보니 오늘도 나름 시험일이다. 짧은 점심시간 이후에는 레벨 1보다 긴 시간의 레벨 2 시험이 이어졌다. 오후에는 더 적은 인원의 학생이 시험을 보러 왔는데 오전과 달리 학생들이 한국어로 질문하고 이야기해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중간 쉬는 시간을 포함해서 3시간이 넘게 진행되는 시험 시간 동안 나도 몸 여기저기를 풀면서 여러 동사의 변형 형태를 공부했다. 중간에 비가 오기도 했지만 곧 그쳤다. 시험이 끝나기 전에 학생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님들이 이것저것 물어보셔서 잘 방어해 내다가 시험 결과는 언제 나오냐는 질문을 잘 알아듣지 못해서 당황했지만 어차피 답해드릴 수 없는 질문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학생들에게 핸드폰을 돌려주는데 아까 가장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던 친구가 빨개진 눈으로 나와서 마음이 안 좋았다. 결과와 상관없이 어차피 잘하던데! 처음에 이곳에 도착했을 때 나도 떠나기 전에 DELE B2 시험을 한 번 보겠다 다짐했던 것이 떠올랐다.
일정을 마친 후에는 친구 집으로 가서 저녁 내내 루미큐브를 했는데 어쩌다 보니 계속 내가 이겼다. 그 이후로 친구 어머니께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의 루미큐브 실력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얘가 제1세계(?)에서 와서 그래! 얼마나 똑똑한지 아냐~한 번 지금 게임해봐라 하시는데 뭔가 그래놓고 져버리면 그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는 것 같아 이후로는 루미큐브를 안 하게 되었다. 갑자기 혼자 한국 루미큐브 국가대표라도 된 것 같은 자의식 과잉이 되어버려! 한국에서 가족끼리 보드게임하면 운으로 하는 게임 외에는 언제나 동생이 혼자 다 이겨먹어서 한 번도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것 봐 집 밖에서는 누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