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금 같은 월급도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10.18. (금)
어제 결국 책도 안 펼쳐보고 누워버린 죄책감에 새벽부터 알람을 맞춰놓았지만 그냥 더 자버렸다. 학교를 떠난지 몇 년이 지나도 이 패턴은 안 바뀌는게 신기할 정도다. 지난주 금요일 아침에 7시 acondicionamiento físico integral 수업을 듣고 이어서 8시 필라테스까지 들으니까 주말 이틀 푹 쉬고 월요일에 다시 운동가는 패턴이 좋았는데.. 계속 뒤척이다 이번주에는 결국 이것까지 포기해버렸다. 이렇게 누워있다가는 시험까지 집에서 칠 것 같아서 의무감을 갖고 몸을 일으켜 팬케이크(인척 하는 계란 부침개)를 만들어 먹고 집을 나섰다.
시험 이게 뭐라고! 맨날 좋은 아침~하면서 문 열어주는 리셉션 언니한테 대신 봐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다. 언니 네이티브잖아요. 그래도 마지막으로 내용이라도 한 번 훑어보면서, 사실 복습이라기보다는 몰랐을 때 프로페소라가 충격받을 것 같은 아주 기본적인 내용을 위주로 보았다. 예를 들면 시간 말하기 같은 것.. 듣기로는 다른 나라 학생들과 함께하는 그룹 수업엔 학생들이 과제도 잘 안 해간다는데 우리 프로페소라는 하필이면 한국 학생들을 위주로 맡아서 기준치가 남다르신 것 같다. 분명 다른 프로페소라는 시험 때 듣기 평가 못 알아들으면 계속 다시 들려준다고 했는데 우리 프로페소라.. 그 어느 것도 허용해주지 않았음.
시험이 시작되고 전체적인 내용을 먼저 선생님과 함께 리뷰 하고, 그래도 혼자 빠르게 못 읽을까 봐 읽기 부분 내용을 한 번 쭉 읽어주셨다. 다행히 수업시간 때 들려주던 오디오 보다 간단한 내용의 듣기 평가로 시험을 시작했다. 그 외에도 기사를 읽고 T/F 찍기-듣고(어떤 친구의 하루 일과) T/F 찍기-기본적인 정보를 위한 질문 작성하기-하루 루틴 문의 이메일에 답장하기까지 한 시간가량의 시험을 끝냈다. 그리고 월요일 oral 시험 중 한 파트를 미리 주겠다고 한 국가에 대해 10분에서 15분가량의 발표를 준비해 오라고 하셨다. 읽지 말고 외워서 쭉 이야기하라고 강조의 강조를 하셨는데 흥 한국어 발표도 15분짜리 준비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세요?
시간을 들여 준비하지도 않았으면서 괜히 끝나니까 마음만 편해져서 또 기념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지난번에 친구랑 먹으러 왔던 엠파나다를 먹으러 왔다. 전부터 궁금했던 치차론 엠파나다를 주문하고 기다리다 아미가! 하는 소리에 음식을 받아와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한 입 먹었는데 뭔가 지난번 그 맛이 아니었다. 생긴 건 비슷하게 생겼는데 지난번에 태풍을 뚫고 너무 고생하며 왔다가 갓 튀겨진 엠파나다를 먹어서 그런가? 그래도 덕분에 덜 아쉬운 마음으로 하나 더 먹지 않고 운동하러 갈 수 있었다. 아침 운동을 놓쳤는데 금요일엔 오후 그룹 운동 수업이 따로 없어서 그냥 스킵할까 생각했는데 오늘 하루 안 가는 것은 쉬워도 그러고 나면 앞으로 조금만 힘들어도 가기 싫어질 것 같아서 그냥 갔다.
확실히 저녁 시간대보다는 사람이 적긴 했지만 여전히 꼭 비어있는 기구에 가서 운동을 시작하면 몇 명이 함께 와서 몇 세트 남았냐~ 돌아가면서 같이 해도 되냐~ 해서 같이 운동하게 된다. 비는 안 내리면서 자꾸 천둥 번개가 쳐서 언제라도 비가 엄청 쏟아질 것 같아 빠르게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미술 재료 상점이 있었는데 갑자기 그림이 그리고 싶어 져서 구경해 보았다. 40% 할인이라고 붙어있어서 질문 하나 있다! 무엇의 40% 할인?이라고 물어봤더니 가방을 할인하고 있는 것이었다. 재료 상점에서 가방 누가 사는데요~ 색연필이나 할인해 주세요. 생각해 보니 Pequeño Mundo(대형 다이소)에 가면 같은 제품들을 더 저렴하게 팔 것 같아서 다시 나왔더니 그 사이 비가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뚫고 마트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엠파나다로 중간고사 끝+금요일을 기념하기에는 부족하다. 벼르고 벼르던 고기 사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전에 과자 좀 고르고.. 큰 용기 내서 고기 섹션 앞으로 왔는데 계획과 달리 집 앞 마트와 달리 포장된 고기도 함께 파는 마트였다. 조용히 닭다리 한 팩을 집어 들고 나왔다. 사실 손질된 뼈 없는 닭고기를 사려고 했는데 포장된 고기는 뼈 있는 친구들 밖에 없길래 뼈? 발라먹으면 되지~
오랜만에 과자 좀 혼내주고 닭고기 요리를 시작했다. 사실 엄마가 챙겨준 고추장을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먹어서 어떻게 써먹을까 하다가 무작정 고기를 사 온 것이었다. 공항에서 고추장이 뭔지 한참 설명까지 하고 들고 들어온 것인데 잘 써먹어야지! 어제 다져놓은 마늘까지 넣어서 대충 완성하고 굳이 사온 맥주까지 한 입 마셨다.
예전에 돌로미티에서 밤비랑 영상 찍을 때만 해도 숟가락으로 병뚜껑을 못 열었는데 그 사이 강해져서 병따개가 없어도 병뚜껑을 잘 따는 사람이 되었다! (어제 밤비가 베네치아에 살 땐 눈 감고도 언니 집에 찾아갈 수 있었는데 이젠 돌아가도 찾지 못할 것 같다고 해서 좀 슬펐는데 생각해 보니까 나는 아직 눈감고 선착장까지 갈 자신이 있다! 걱정 마 효레이가 눈감고 마중 나간다!!) 비가 와서인지 건물 인터넷이 잘 안 되길래 침대에서 데굴거리다 그냥 일찍 잠들어버렸다. 강제로 디지털 디톡스 해주는 우리 집은 좋은 집.. 그 사이에 콜롬비아에 계신 한국 분에게 중간고사 엉엉 연락을 하다 언어 관련 밈을 주고받는데 너무 공감되어서 약간 위로받았다. 나만 이러고 사는 게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