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레이오버 일지 그리고 다시 만난 주한 코스타리카 대사님
2024.08.13. (화)
엄마에게 코로나를 옮긴 탓에 대신 동생이 서울로 와서 보안검색대까지 함께 해주었다. 덕분에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얼굴을 보고 간다. 지난 일 년간 나름 정든 접히는 핸드폰도 넘겨주고 약간 건조한 마지막 인사 후 보안검색대를 통해 게이트로 향했다. 연초에 동생과 처음으로 일본 여행을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2020년 호주에서 입국한 뒤 꽤 오랜만에 공항에 돌아왔다. 추억에 젖을 겨를도 없이 코스타리카에서 심카드를 구매하기 전까진 그저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에 2시간 남은 보딩 전 네이버 블로그와 구글맵을 열심히 캡처해며 9시간의 멕시코 레이오버 살아남기 위한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나는 보통 항공권을 고를 때 일정에 무리가 없으면 경유 시간이 긴 것을 선택하는데 가격이 합리적인 것도 있지만 막상 가서 생활하는 중 가기 어려운 곳을 미리 여행해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기 때문이다. 플로리다에 갈 땐 보스턴, 이탈리아에 갈 땐 헬싱키에서 레이오버하면서 각각 미국 전역, 유럽 전역을 돌 때 일정에 끼기 어려워 아쉬울 뻔한 도시들을 가볼 수 있었다. (시드니는 어딜 경유해 가는 게 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사실 이번 여행의 경유는 선택이 아니었다. 멕시코 경유조차 ICN-MEX 직항이 지난주에 다시 운행하기 시작하여 2회 경유를 피할 수 있었다.
나는 장기간 비행을 힘들어하는 편이 아닌데 고사이 몇 살 더 먹어서인지 혹은 인천 공항 출발 최장 노선이라고 진짜 한 15시간 비행기를 타서인지 혹은 옆자리 아저씨가 내리 코를 골아서인지 쉽지 않은 비행이었다. 중간에 옆자리 옆옆자리 멕시코로 출장, 주재원 근무하러 가시는 분들과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들조차 코스타리카요? 할 정도로 내가 생소한 곳으로 가는구나 싶었다. 중간에 사람들이 뒤에서 자꾸 뭘 가지고 오길래 비행기 뒤편으로 가보니 컵라면과 삼각김밥, 과일 등 간식을 구비해 놨다. 기내식으로 비빔밥과 키슈 그리고 그 사이 간식까지 열심히 먹으며 궁금했던 영화 '바비'까지 보다 보니 어느새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다.
15시간 비행 후 15시간 시차로 처음 탑승했던 그 시간에 공항에 내리게 되었다.(그래서 아빠가 타임머신이라고 했구나!) 예상과 달리 공항조차 와이파이가 잘 안 되어 인포데스크로 가서 이 도서관에 가고 싶어요! 하고 대충의 루트를 알아냈다. 블로그에서는 원래 따로 교통카드를 구매하지 않고 사람들 붙잡고 제 것도 찍어주세요! 하고 현금을 주는 것이 국룰이라고 하였지만 역시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빠르게 환전 후 100페소나 충전했다. 생각보다 시내로 나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인포에서 말해주던 버스랑 아저씨가 현장에서 이거 타야 해!라고 말씀하시는 버스가 서로 달라서 잔뜩 졸았다. 그런데도 한국은 한창 새벽이라 눈이 자꾸 감겼다.
어렵게 도착한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네이버 블로그에서만 보던 것이 눈앞에 펼쳐지니 아주 감격스러웠지만 오! 이후로 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 예술의 광장 쪽으로 주욱 걸어갔다. 조금 멀었지만 완벽한 날씨 아래 이것이 중남미? 이것이 중남미? 하고 두어 번 두리번거리다 보니 광장 건너편 백화점 카페였다. 화요일 낮이었는데도 한 30분 정도 웨이팅하고 들어가 멋진 뷰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시간을 보고 타코를 먹으러 다 마시지도 못한 음료를 들고일어났다. 나는 한국에서도 멕시칸을 엄청 좋아했기 때문에 큰 기대하고 왔는데 음.. 저는 그냥 마곡 타코가 더 맛있는데 어떡하죠..
하나 즈음 눈에 띌 줄 알았던 스노글로브와 엽서를 찾아 헤매다가 결국 실패하고 공항에 돌아가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중심부가 원래 그런 분위기인 건지 지역을 잘못 든 건지 약간 남대문 시장 바이브로 와글와글하고 갑자기 비가 조금씩 내려서 계획보다 일찍 공항으로 돌아왔다. 공항에서 못생기고 비싼 스노글로브를 발견하고 괘씸해서 사고 싶지 않았는데 네이버에서 멕시코 스노글로브 열심히 찾아봤으나 구하기 원래 어려운 것임을 깨닫고 그냥 구매했다. 엽서는 그냥 내가 돌아가서 만들기로..
코스타리카로 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지 비행기에 옆자리가 비어있어서 편하게 갈 기대로 가득 찼는데 라스트 미닛에 누군가 옆자리로 왔다. 근데 얼굴이 익숙해서 방금 도착한 지구 반대편에 익숙한 얼굴이 있을 리가 없는데 누구지? 생각해 보니 바로 지난주 금요일에 비자에 서명해 주시던 주한 코스타리카 대사님이셨다! 처음엔 긴가민가 용기가 안 나서 고민하다가 지금 물어보지 않으면 평생 모르는 거다! 해서 익스큐즈미 썰.. 유.. 코리아 대사님? 했다가 광복절 끼고 고국으로 휴가 가는 대사님인 것을 확인하였다! 신나서 같이 사진도 찍고 혹시 입국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내가 사인한 거라고 해줄게~허허 농담까지 하셨는데.. 실제로 리턴 티켓이 없다고(1년 이상 체류 예정이라 왕복권을 끊을 수 없었다!) 잡혔는데 이미 자국민 라인으로 쏙 들어가 버리신 대사님.. 그렇지만 딱 같은 비행기에 그것도 바로 옆자리에 대사님이랑 같이 코스타리카로 들어오다니! 보통 공항 도착하면서 바들바들 떠는데 덕분에 설레는 마음으로 코스타리카에 첫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