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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더 Nov 15. 2024

EP085. 옴 샨티 샨티 샨티

스페인어 자막 틀고 영화 보기

2024.11.06. (수)


 코스타리카에 오면서도 스페인어 수업으로 이렇게 고통받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아주 쬐깐한 이탈리아어 실력으로 이탈리아에서 한 학기를 보낼 때도, 내가 지금 양고기를 산 건지 소고기를 산 건지 마트에서 나와 인터넷이 터지는 곳에서 찾아보고서야 깨닫는 생활을 하긴 했지만 그 외에는 큰 불편함 없이 생활했다. 스페인어 수업이 있을 거라곤 했지만 수단적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의 본질 그 이상의 비중을 차지해 버린 시간.


 좀 여유롭게 수업하시는선생님(영어로도 가끔 소통해주신다든지)과 함께하면 마음은 편할 것 같긴 하지만 안 그래도 지금도 수업 직전에 후다닥 과제하는 것 외에는 큰 인풋이 없는데.. 그렇지만 이게 무슨 뜻인가요? 하고 물어보면 무슨 뜻일 것 같아? 예상 가는거 없어?하고 물어보실 때마다 아찔하다. 뭔가 잘못 말할 때마다 이마를 치시는데 그렇게 수업 후 속상할 때마다 다른 나라의 한국인 분들에게 징징 팀즈를 보냈다. 다행히 다른 분들도 내가 오기 전에 같은 선생님에게 수업을 들어서 공감해 주시는 게 큰 위로가 된다.


 오늘의 과제는 히든피겨스 Figuras Ocultas라는 영화를 보고 스페인어로 감상문을 써오는 것이다. 내일까지 어떻게 당장 영화 한 편을 보고 스페인어로 감상문까지 써갑니까! 거기다 스페인어 자막을 켜고 새로운 표현들을 정리해가야 했다. 와중에 디즈니플러스에서만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주라더 찬스를 썼다. 아니 영어도 결국 외국어인데 외국어(영어)로 듣고 외외외외국어(스페인어)로 읽기.. 영화는 재미있었다. 유튜브에 요약정리된 내용을 여러 번 봤던 기억이 있는데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요가였다. 요가 이게 운동이 됩니까?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모두 벽에 붙어라! 하셨다. 슬금슬금 벽으로 갔더니 밧줄을 풀어서 다른 밧줄에 묶고 그걸 지지대로 삼아 거꾸로 밧줄에 매달리는 자세를 선보이셨다. 다들 자연스럽게 각자 자리로 가서 본인 자세를 준비하는데 이게 뭐 어디 다른 데가 아니라 창문 위에 있는 틀에 매달려있는 밧줄이었다. 네? 지금 이 틀에만 몇 명이 매달려있는 거지? 쿵 떨어지면 목이 부러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까 더 손을 놓지 못했다. 선생님은 얘가 스페인어를 못 알아들었나 보다! 생각하셨는지 영어로 손을 자유롭게 놓아주렴~하시는데 나는 그저 할 수 없어요.. 할 수 없어요.. 만 반복했다.


 심지어 내 밧줄만 잘못된 건지, 자세가 잘못된 건지 골반이 너무 아팠다.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조치를 취해주시는데도 아프길래 포기하고 괜.. 찮.. 아.. 하고 매달리는데 너무너무 무서웠다. 자세의 난이도보다도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이제 보니 마지막에 꼭 머리를 아래에 두고 거꾸로 도는 자세를 하나 하는데 우리는 고급반이 아니니까 의자나 이런 밧줄의 도움을 받는 것 같다. 오늘도 사바사나의 시간을 갖고 오늘은 옴~샨티 샨티 샨티 Om Shantih shantih shantih 하며 수업을 마무리했다.


 또 제주도 이야기이긴 한데, 사실 취다선은 당시 언니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예약해 온 것이었다. 근데 막상 제주도에 내려온 당일 언니 상태가 안 좋았다. 그래서 나 혼자 거의 모든 수업에 참여했는데 그중 노래를 부르는 명상이었나.. 좀 걱정하면서 들어갔는데 옴~~~ 샨티~샨티~~ 샨~티~~~를 108번이나 노래해야 하는 수업이었다. 샨티는 절대평화의 뜻이라고 하는데 막상 나는 끝까지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하고 어떻게.. 한 번 덜 샨티 할 수 있을까.. 방 올라가서 언니한테 썰 풀어야 지.. 하다 수업 시간이 끝났다. 오늘도 여전히 절대평화는 얻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와 골반을 보니 밧줄에 눌린 자리가 까져있었다. 마음과 몸의 상처를 입고 다음날 요가수업 안감.(은 아니고 약속이 있어서 못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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