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이준익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알려진 것은 '왕의 남자'지만(물론 아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꼽지만) '왕의 남자' 이전 '횡산벌'때 이미 팬이 되어있었다.
'아쌀하게 거시기 해불자!'
'함 붙어 보자카이!'
세상에! 각 나라의 지역 방언이 튀어나올 줄 몰랐다! 해학적이면서 휴머니즘까지 느껴지는 영화. 역사 영화들의 공식대로 그려가면서도 틈새를 공략한 방언과 유머로 마니아 층을 이끌어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음악을 좋아하는 내게 음악 시리즈의 시작인 '라디오 스타', 그리고 역시 내가 좋아하는 미중년 배우 '김윤석' 님께서 출연하신 '즐거운 인생'은 정말 음악으로, 리듬으로 흥겹게 만들어 준 작품들이다.
좋은 음악은 물론이거니와 이준익 감독 특유의 낙천적이며 물 흐르듯 흘러가는 소소한 일상과 그 안에 드러나는 날카로운 위트...
음악 3부작의 마지막이라 공언하신 이번 '님은 먼 곳에'. 제목까지도 그 시대의 옛 노래... 영화 전반에 흐르는 영화의 주제이기도 한 듯. 베트남 전이 배경이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베트남 전쟁 때 마찬가지로 파병을 가셨었기에 남들보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베트남 전쟁영화, 드라마를 본 축에 속한다. 그래도 많이 알려진 일반적인 것들이지만...
어쩌다 한 번씩 아버지와 함께 그런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마다 아버지는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 전우들이 죽어 나갈 때의 공포와, 그 공포 때문에 벌어지는 광기들에 대해 말씀해 주시고는 하셨다.
이 영화, 님은 먼 곳에도 그런 영화의 메시지를 전해주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가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1972년, 그 시대를 살던 여성 순이의 입장에서 보고 있는 전쟁이다... 한 개인에게 있어서, 게다가 수동적이기를 강요받던 여성에게 있어서 남편의 파병이란 저런 것이겠구나, 하는 막연한 추측밖에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전쟁을 겪어 보지도, 당시의 여성도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은 내가 아는 만큼만 보이는 법이다.'란 표현이 참 적절한 영화였던 듯... 그래서 살짝 걱정이 됐다. 이 영화는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실제로 같이 영화를 보러 갔었던 친구도 '영화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라고 했다.
이준익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다만 그것을 위해서는 순이의 감정선이 대단히 중요했는데... 사실 순이를 연기하고 있는 수애 씨도 감정 이입이 덜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쩔 수 없었을 듯.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경험해보지 않은 이에게 그런 감정을 완벽하게 느끼게 하는 건 무리겠거니 했다.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하니. 제대로 된 감상 쓰기가 어려운데...
정경호 씨가 의외로 멋지게 나왔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에 출연할 당시만 해도 애기같았었는데...
그리고 또 다른 출연자 분이신 주진모 님. 포스터의 캐스팅에 이름이 보였을 때 나와 친구는 '미녀는 괴로워'의 주진모 님을 생각했다. 그런데 주진모 님이 나오신 첫 장면에서 나는 덕질하던 드라마 '부활'에서 본 적이 있는 분이라 아~, 그 주진모 씨가 아니라 저분이셨구나 했지만 영화가 끝날 때쯤 "주진모가 대체 어데 나온다는 거냐!"라고 버럭 하는 친구에게 동명이인이라고 설명을 해 주어야 했던 에피소드도.
노파심에...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듯한 감상 포인트만 잠시 언급해 보자면
1. 음악 시리즈라 역시 음악이 중요한 듯... 1970년대 초 당시 대중가요에 대해 공부하고 갔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았었다. 물론 그것은 당시의 시대상도 알고 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의미.
2. 순이의 감정선을 잘 캐치해야 라스트씬이 이해될 것 같다... 내 친구는 남편을 찾기 위해 수애가 취한 방법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는데 나는 그냥 이해가 될 것 같았다... 사랑하던 다른 여자를 잊지 못해 자신을 피하면서도 "니 내 사랑하나?"라고 묻는 남편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시위랄까... 사랑과 복수가 뒤엉킨 그런 감정. 미움도 감정이 있으니 미워하는 것이란 그런 느낌.
아무튼... 이준익 감독님은 여전히 좋아하는 감독님들 중 1인. 이번에 나왔던 '자산어보'도 개인적으로 참 좋았다. 그 썰은 또 다음 기회에 풀기로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