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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림 ComfyForest Dec 09. 2021

소시민의 소소한 소회(16)

구구는 고양이다

나는... 고양이를 아주 많이... 무진장... 억수로 좋아한다... 물론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을 다~(식물, 동물, 곤충 등 모든 살아있는 것들... Hominidae, Homo에 해당되는 영장목들은 예외다... ) 좋아하지만 특히 고양잇과에 속하는 동물들에 대해서는 사족을 못쓰는 경향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양이가 나오는 영화라니! 게다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긴 하지만 너무나 좋아하는 연기 천재 우에노 쥬리양이 나오는 영화라니! 거기다 '메종 드 히미코'의 이누도 잇신 감독이라니!!! 반드시 보고야 말 테닷!!! 하고 별러서 겨우 영화를 봤다...


감상은... 음... 지극히 평범하게 보이면서도 평범하지 않은, 일상적으로 보이면서도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밝고 따스한 햇살 같은 삶을 연상시키면서도 어둑어둑하고 두려운 죽음 역시 곱씹게 해 준다.


일단, 꼬집고 넘어가고 싶은 것은 제목이다.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일본 원제를 알게 되었다.

「グーグ だって猫である」.

아니, 이 제목이 어째서 '구구는 고양이다'가 되어버린 것인지... 물론 영어 제목이 'Goo Goo the cat'이긴 하지만 왜 'Goo Goo is the cat'이 아님에 주목했어야 했을 텐데... 영화를 보고 난 후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제목은 한국어로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먼저 だって 를 '~도 ~라니까~'라는 뉘앙스로 해석한다면 '구구도 고양이다.'로

だって 를 だとしても 로 해석한다면 '구구라 해도 고양이다'로

조동사 だ + って 로 해석한다면 '구구다 라는 고양이다'로 해석이 된다. 이 해석에는 설명이 좀 필요한데 구구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 이해가 갈 것이다. 그 설명은 다음으로 넘긴다.


영화의 첫 장면은 한 마리 고양이가 닫힌 창문 너머로 바깥세상을 동경하듯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다. 이 고양이의 이름은 사바. '잘 지내?'라는 의미의 불어다.


유명 만화가 아사코는 자신이 처음으로 연재를 맡아 만화가로서 인정을 받게 된 13년 전에 만나 이후 쭉 같이 지내던 고양이 사바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겨우 용기를 내어 찾아간 펫 숍에서 쓰러지면서 무심히 자신과 눈을 마주하는 새끼 고양이를 발견하게 되고 단박에 끌려 집으로 데리고 온다. 고양이의 이름은 '구구'로 낙찰.



구구라는 이름의 의미를 맞추는 사람에게는 키치죠지의 사토에서 파는 맛난 멘치카츠(다진 쇠고기에 잘게 썬 양파 등을 섞고 빵가루를 입혀 튀긴 일본 요리) 1년 분의 상품이 주어진단다. 크... 난 먹을 수 있었는데... 사토의 멘치카츠 1년분... ㅠㅠ



예전에 홈플에서 모 식품회사의 냉동 멘치카츠 파는 것을 보고 사토의 멘치카츠가 생각나 얼른 집어와 먹었다. 역시 그 맛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향수를 달래주기는 했다.


구구는 영화의 제일 마지막에 그 의미가 나오는데 'Good Good'이라는 의미. '잘 지내?' 다음은 '굿~!'이다. 사바는 항상 방 안에 갇혀 바깥세상에게 '잘 지내?'라고 인사만 하는 삶을 보냈다. 반면 구구는 키치죠지를 마음껏 즐기는 키치죠지 고양이로써 그야말로 굿~! 고양이들은 그 이름 그대로의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그 삶들은 아사코의 삶에도 투영된다.


1. 잘 지내? 잘 지내... 



아사코(코이즈미 쿄코 분)는 유명 만화가. 전문직 여성으로 선망의 대상이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결혼도 하지 않고, 변변한 연애조차 제대로 못 해 본, 그야말로 그녀의 고양이 사바와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사바의 죽음으로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일까? 그녀는 두 번째 고양이에게는 구구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녀 스스로 변하고 싶다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한 것일지도 모른다.


2. 잘 지내? 구구~!



구구도 사바와 마찬가지로 피임수술을 시키기로 결심한 아사코. 그걸 알아차렸는지 맘에 든 고양이를 쫓아 집 밖으로 탈출을 감행한 구구. 그리고 이노카시라 공원의 나무 위에서 꼼짝 못 하고 있던 구구를 세이지라는 청년이 구해준다. 세이지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 아사코. 세이지 역시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다.

 


"당신이 그린 만화, 슬프더군. 하지만 왠지 용기를 얻을 수 있었어. 평소엔 이 녀석(술)에게서 얻고 있지만. "


3. 모두가 행복해지는 만화... 도대체 모두란 누구...?


세이지 덕분에 집 밖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된 구구. 그리고 또한 세이지 덕분에 모두가 행복해지는 만화를 그려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구구처럼 자유로워진 아사코는 모두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한 생활... 일과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새 만화를 시작하기 위한 노인 체험 중 문하생인 나오미는 애인인 마모루가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어 그 뒤를 쫓고, 같이 쫓아가던 아사코는 쓰러지고 만다.


검사를 받기 위해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인 세이지를 만나게 되고, 또한 자신의 병이 난소암 3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사코.



"선생님 만화 읽었던 게, 막 중학교 들어갈 무렵이었는데, 저에게도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었지요~
그래도 선생님 만화 읽으면 정말 기운이 났어요~!"


"제 만화는... 그만큼 절 도와주지 않아요..."


그녀는 결국 난소와 자궁을 모두 들어내는 수술을 받게 된다. 피임 수술을 받았던 사바와 같이 엄마는 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항암치료 중 우울증에 빠지면서 옛 고양이 사바를 더욱 생각하게 되는 아사코.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같은 시간을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저는 화를 내고 있었어요.
그치만 당신은 내가 나이 먹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요..."
 

'미안해... 인간이란 무척이나 둔감한 생물이야.'


"나의 죽음도 당신의 병이 가져오는 고통도 그리고, 또한 슬픔도...

시간은 흘러가요...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아사코 씨
고마워요..."

 

그녀는 꿈속에서 사바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사바의 말대로 시간은 흘러 그녀는 조금씩 건강을 되찾게 된다.


4. 태어나다...



그녀의 새 작품의 주인공처럼 그녀는 새롭게 태어난다. 그리고 애인의 변심에 괴로워하던 나오미 역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뉴욕으로 떠난다.



영화를 보는 내내 행복했다... 개인적인 행복이다. 이미 앞서 썼듯이 나는 고양이를 아주 좋아한다. 좋아하는 고양이를 볼 수 있어 좋았고, 좋아하는 배우들을 볼 수 있어 좋았고, 좋아하는 장소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나는 약 5년 간을 키치죠지 근처에서 살며 키치죠지 구석구석을 음미하고 다녔었다. 화면에 나타나는 그리운 장소들을 보고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길지 않은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아마 앞으로도 가장 행복할 시간들...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던지... 줄 서서 사 먹었던 사토의 멘치카츠, 벚꽃 필 무렵의 이노카시라 공원, 밤의 이노카시라 공원, 론론, 역 근처와 공원 근처의 작고 세련된 가게들, 아케이도, 주황색 중앙선 열차...


이누도 잇신 감독은 그 작고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도시를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있는 그대로 예쁘게 그려내고 있었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만화... 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읽어주는 사람들이 공감해주고 재미있어해 주는 만화를 그리는 것 또한 나의 꿈이기도 했다. 중2의 아사코처럼 문방구에서 만화 도구들을 하나하나 구입하며 얼마나 뿌듯했던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는 극히 개인적으로는 좋았던 영화이다. 하지만 감독과 배우의 명성에서 오는 다른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권하지 않을 작정이다. 혹여 누군가 이 영화에 대해 혹평이라도 한다면 아마 내가 상처 입을 것이기에...   


https://tv.kakao.com/v/1052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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