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에 개봉된 이 영화, 비슷한 시기에 개봉된 박신양 씨, 그리고 고인이 된 최진실 씨 주연의 '편지'에 밀려 당시 흥행성적은 썩 좋지 않았던 영화였다. 그러나 2005년 일본에서 리메이크도 되고, 2013년 관객들의 요청으로 재개봉되기도 하는 등 꽤 오랜 시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다.
2005년 일본 리메이크작, 2013년 재개봉작, 같은 시기 편지 포스터들
'편지'와 '8월의 크리스마스' 두 영화를 같이 본 나와 친구 3명. 그런데 작정하고 사람들을 울리기 위해 만든 '편지'를 보며 친구들은 다 우는데 나는 혼자 맹숭맹숭했었다. 주인공들에게 감정 이입이 되지 않았었다. 억지스럽다는 느낌도 있었고.
반대로 친구들은 다 멀쩡한데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며 영화관에서 혼자 오열하며 울어버렸던 나... 나는 당시에 왜 그렇게 울었던 것일까...? 지금 뒤돌아보니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겪었고 장학금 타면서 평일뿐만 아니라 주말까지 아르바이트하며 돈을 벌어 집안 식구들을 건사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감정 이입이 심하게 된 듯도 하다.
아직도 기억나는 주인공 다림역의 심은하 씨. 아이스크림을 밥숟가락으로 퍼 먹던 생활 밀착형 리얼한 모습. 그리고 잠시 까무룩 잠든 다림을 위해 정원이 선풍기 머리를 조심스럽게 옮기는 장면들을 보면서 정말 감독은 '편지'처럼이 영화를 예쁘게 꾸미거나 억지로 감정을 만들어내지 않고 삶과 일상생활 속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 물 흐르듯 진행시켜 가려했다고 여겨진다. 그것이 이 영화가 사람들의 곁에 오래 남을 수 있는 이유 이리라.
홀로 남겨질 아버지를 위해 전자제품의 사용법을 꼼꼼히 쓰다 펜을 던져버리며 울음을 터트리는 한석규와 그를 따라 펑펑 울어버린 나... 아버지 생각이 나서였으리라...
당시 나는 다림이 사진관에 돌을 던져 유리를 깨뜨리는 장면이 왜 필요했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제야 이해가 되는 것은 아마도 내가 나이를 먹어버렸기 때문이리라...
한여름에 시작된 사랑이지만 여름처럼 뜨겁지 않고 가만가만히 스며드는, 또 자신으로 인해 다림이 상처 받고 유리처럼 깨질까 조심스러웠던 정원의 사랑과, 그래서 그를 사랑했지만 그 조심스러움과 배려가 오히려 상처가 되어 유리를 깨뜨려버린 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