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두 번이나 영화관으로 나를 이끈 영화 '위플래쉬'. 첫번째 영화를 보고 나온 후 여우에라도 홀린 듯 스마트 폰으로 또다시 두번째 예매를 하고 있었고 두 번 다 끝까지 앉아 엔딩음악까지 제대로 감상하고 나온 영화. 그러고도 또다시 보러 가고 싶은 욕구가 무럭 무럭 솟아나는 영화.
1. 미친 연기자들
최대의 볼거리는 역시 플레처 역 JK시몬스의 조롱과 광기와 온화를 자유로이 오가는 동공과 홍채 색이 뚜렷하게 다른 묘한 느낌의 푸른 눈동자. 동공에 홍채에 근육까지 광기어린 연기를 하던 그는 남우 조연상 38개를 싹쓸이 했다는 후문이다.
그에 못지 않은 동공연기(? 라기 보단 눈빛연기랄까) 해 낸 앤드류 역 마일스 텔러.
사실 그를 잘 몰랐기에 첫 등장 장면이나 영화관에서 니콜에게 말도 못 붙이고 고개를 돌리는 장면, 그 나이에 아버지와 같이 영화를 보는 장면 등을 보며 정말 실감나게 찌질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400에 가까운 더블타임스윙을 하며 플레처를 올려다볼 때 그 광기 어린 눈에는 JK시몬스도 깜놀하지 않았나 싶다.
2. 재즈
영화의 중심은 역시 '위플래쉬'와 '카라반'을 비롯한 각종 재즈 음악들이다.
재즈는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뉴올리언스를 중심으로 발달한 흑인 음악인 '블루스'와 더불어 흑인들의 춤, 노래등을 소재로 공연되던 '민스트럴쇼'의 음악이 초기 재즈에 영향을 주었고 이후 거기서 나온 댄스뮤직들이 재즈로 발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 동영상은 플레처의 입장에서 보면 스타벅스 재즈인 엘라 피츠제럴드와 루이 암스트롱의 '썸머 타임'
어릴 땐 재즈를 들으면 머리가 째지는 줄 알았는데(웃음) 이제 살짝 즐길 정도가 되었으니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인지도...
3. 영화의 교육적 측면?????
웹서핑에서 간간이 플레처의 올바른 교육관(?)을 찬양하는 리뷰가 보이는데... 하하... 교육자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저건 교육이 아니다. 플레처는 절대 제대로 된 교육자도 아니고 교육자가 되어서도 안되는 인물이라 생각한다.
그저 좁은 재즈의 세계에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살아남기 위해 학생들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진정한 교육자였다면 마지막에 앤드류를 재즈 바닥에 발 붙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선곡을 바꾸는 치사한 짓따위는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교육적 측면이 나왔기에 굳이 이야기를 하라면 이 영화는 잘못된 가정교육과 잘못된 학교 교육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앤드류의 아버지는 우수 교사로 뽑힐만큼 인정받는 교사이나 자신의 아들은 '보호'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고 있다. '사랑한다''너를 위해'라고 말하고 있으나 아들의 재능과 꿈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결국 결정적일 때 다른 친척들과 마찬가지로 앤드류를 '변변찮은 자식'으로 전락시킨다.
플레처보다 앤드류의 아버지가 더 나쁘다 여겨지지만 그건 부모와 선생이라는 입장이 다르므로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여겨진다.
어쨌든 부모로써 자식이 그저 평범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대한민국의 부모님들이 "요즘 젊은이들이 어려운 일은 하지 않으려 해서 취업을 안 하는 것"이라 투덜거리시면서도 정작 자기 자식이 그런 일을 하겠다고 하면 "그런 일이나 하라고 대학까지 보낸 게 아니다"라고 역정을 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4. 환상적인 라스트
영화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결말 부분이리라. 앤드류는 플레처 덕분에 한계를 뛰어넘은 것일까? 나의 대답은 'No'다. 그는 스스로 뛰어넘은 것이다. 재즈가 좋고 드럼이 좋고 그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위해 치열하게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좋았다.플레처도 앤드류도 천재가 아니었다. 다만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며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광기에 가까운 최선을 다해 名人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흔히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기지 못하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고 한다. 플레처와 앤드류는 즐기면서도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에 서로를 이해해 멋진 연주를 탄생시킬 수 있게 되었으리라.
아무튼 드럼연주가 나올 때마다 드럼비트때문에 팔에 힘을 너무 줘서 영화관을 나설 때는 양 팔이 뻐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