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어제 보니까 너 되게 잘하더라
이런 내 상황을 보고 담당 선생님은 화가 나, 곧바로 나를 데리고 무용 선생님을 찾아갔다.
담당 선생님은 무용 선생님에게 학원 모의실기 때까지 작품 완성을 강하게 요구했고,
당연히 무용 선생님은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는 완성할 수 없다는 얘기를 했다.
정확히 10분이었지만, 두 선생님의 대화에는 여러 내용이 들어있었다.
그중 내 머리에 강하게 남아있는 대화는 이렇다.
"연극영화과만 지원할 거고, 주특기도 무용이 아닌데 꼭 일주일 뒤까지 완성시켜야 할 이유가 없잖아요"
라며 무용 선생님이 말했다.
담당 선생님은 "뮤지컬학과 지원하기로 했기 때문에 무용 작품이 꼭 있어야 돼요" 라며 받아쳤고,
무용 선생님은 "학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뮤지컬학과를 지원할 수 있는 상태인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 말에 내 멘털은 공중을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이 일이 있기 바로 한주 전에 뮤지컬학과도 지원해 보기로 정했기에 촉박하게 정한 건 맞지만,
내 실력을 의심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지 않았고, 나와 같은 것을 느꼈을 담당 선생님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결국 담당 선생님은 2주 뒤까지 완성 작품을 받기로 약속을 받았고, 이번 학원 모의실기는 무용작품 없이 보기로 했다.
이 일이 있고 나는, 내 실력을 의심하는 선생님 앞에서 작품들을 보여줘야 한다는 극도의 긴장감을 안고 지냈고, 모의실기까지 남은 일주일이 일 년과 같았다.
드디어 학원 모의 실기날!
이상하게 이 날은 긴장이 되지 않았다.
학원에서 가장 큰 공간인 무용실에서 모의 실기가 진행됐고, 분위기나 공간의 배치가 가을의 대입실기 시험장과 동일했다.
모의 실기장에 들어가서 인사를 한 뒤, 연기와 뮤지컬 넘버 작품을 보여주고 무대 중앙에 섰다.
어느 학교들을 지원할지 정했냐는 물음에 간략하게 답을 하고, '별거 없네'라는 생각을 하며 모의 실기장을 나왔다.
다음 날 학원에 도착하니 무용 선생님과 담당 선생님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마치 일주일 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안심했다. 나 때문에 사이가 서먹해지면 어쩌나 내심 불안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입시 기간이 다가올수록 담당 선생님, 뮤지컬 선생님, 무용 선생님들 사이에 의견 충돌은 흔한 일이었다.
그렇게 난 이야기하고 있는 두 선생님을 지나쳐 수업을 들으러 가는 중에, 무용 선생님이 나를 불러 세우며 말했다.
"야, 어제 보니까 너 노래 되게 잘하더라. 연기보다 노래를 더 잘하던데! 이번 주까지 무용 작품 완성해서 줄게~ 잘해봐!"
옆에 있던 담당 선생님은 활짝 웃고 있었고, 나는 고개를 숙여 감사인사를 하고 수업을 들으러 이동했다.
겉으로 봤을 때 나는 누구보다 침착하게 감사인사를 했지만, 속에서는 온갖 기분 좋은 감정들이 밀려와 엄청나게 요동치고 있었다.
의심해서 미안하다는 직접적인 말은 없었지만, 저 말속에 미안함, 머쓱함, 칭찬 모든 게 들어있다는 걸 난 알 수 있었다.
살면서 실력을 의심받고 그걸 증명할 수 있는 일이 몇 번이나 될까.
내 실력을 의심하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든 증명해 보였다는 그 사실이,
내가 나 자신을 처음으로 대견하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된 일이었기에,
그 당시에는 서럽고, 짜증 나고, 걱정되고, 화가 났을지 몰라도, 10년이 지난 지금은 난 이 일을 겪게 해 준 무용 선생님이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