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반항일 수도, 방황일 수도

어느 쪽이었을까.

by J mond 제이몬드

마지막 시험의 결과를 확인한 그다음 날.

한 여름밤의 꿈은 끝났고,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인 나는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한 태도로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다.


취업은 여전히 내키지 않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기에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입사 지원을 시작했다.


입사 지원 기준에 맞으면서 내가 합격할 가능성이 있는 곳, 입사 지원 기준이 터무니없이 높지만 내가 가고 싶은 곳 등등 여러 회사에 지원했고, 그중 몇 군데에 면접을 볼 수 있었다.

면접의 결과는 다행히도 여러 회사에서 나를 긍정적으로 봐준 덕분에, 정규직 또는 인턴, 계약직 등의 다양한 형태로 합격할 수 있었다.


이때에 내가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면, 안전하게 정규직 또는 인턴 후 정규직 전환의 기회를 갖는 회사로 하루빨리 입사를 했겠지만, 난 여전히 정신을 덜 차린 상태였다.


그렇게 정규직으로 합격한 몇몇 회사에는 이런저런 핑계들을 대가며 입사하지 않았다.

나를 합격시켜 준 고마운 회사들인데, 주변에서는 나를 건방지게 봤을 수도 있겠다.

내 상황에 대한 반항심이었는지, 끝나지 않은 방황이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저 '언제 취업하든 앞으로 몇 십 년 동안 계속 일해야 하잖아... 그런데 꼭 지금, 이렇게 빨리 할 필요가 있을까? 조금 더 나중에 해도 될 것 같은데...' 하는 세상물정 모를 생각들이 나를 지배한 상태였다.


그런 나를 보고 부모님이 얼마나 답답하셨을지, 글을 쓰고 있는 이제야 죄송하다는 마음이 든다.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할 때는 그 누구보다 확신에 찬 모습이었던 내가,

그 누구보다 갈팡질팡하며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을 보고는, 부모님은 한 가지 제안을 해주셨다.


정규직이라는 타이틀이 아직은 너무 무겁고, 회사원이라는 직업에 마음두기 힘들다면,

꼭 정규직 형태의 회사가 아니어도 괜찮으니, 일단 취업을 해서 직장인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생활을 시작이라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의외로 그 생활이 내게 찰떡 같이 맞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 조언을 듣고 나는 꽤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내 앞가림을 시작해 볼 수 있는 좋은 타이밍이었고, 부모님의 조언에 포함한 회사는 계약직에 정시출근과 정시퇴근을 칼같이 지키는 곳으로 유명했기에 퇴근 후 시간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나는 계약직으로 한 회사에 입사를 했다.


그땐 몰랐다.

반항과 방황. 그리고 도피성으로 선택한 이 회사가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킬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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