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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음악하고 애 키우며 논문 쓰기

박사과정 장학금 신청하다

by 호주 재즈맘

아기를 데이케어에 보낸 날은 해야 할 일이 무진장 생각나면서도 몸은 그대로 티브이 앞으로 향하게 된다. 인스타와 페이스북의 마케팅에 점점 지치기도 하고 나 자신도 긱홍보 겸 다른 동료들꺼 구경하느라 여러모로 끌려다녔던지라 머리에 쉼이 필요하다.


장학금 신청을 하면서 지난 4년간의 석사학위 이수했던 것, 앨범활동 및 포트폴리오 위해 준비했던 일들, 무엇보다도 코비드를 관통하면서 결혼, 출산과 육아, 정말 말 그대로 불가능하고 머리를 쥐어짜야 두줄 정도 썼던 기억들을 되돌아 보았다. 이메일 도착하면 아기 돌보다가 서둘러서 얼른 열어보고 확인답장만 대충 해보던 그때. 솔직히 챗GPT가 없었더라면 논문마무리도 너무 어려울 뻔했다.


아기와 함께여서 행복하고 웃음 지을 일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마음 한쪽이 뭔가 훌렁 벗겨져있는 듯한 허전함. 시간을 조금 내서라도, 30분이라도 피아노에 붙어있던가, 떡볶이 하나 시켜 먹는 정도면 그게 잠깐 덮이는 것 같은 느낌일 때도, 실은 아니었던 것 같을 때가 많아지는 요즘.


박사과정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한 건 당연하다. 시민권자여서 학비도 들지 않고 장학금 신청 1차를 놓쳤지만 그래도 처음이자 마지막인 2차를 도전해 보면서, 조금이라도 녹음과 연주비를 받기 위해 다시 희망을 놓치지 않는다. 석사논문을 마치면서 내가 음악적으로 무엇을 왜 하고 싶은지에 대해 점점 더 명확해짐을 확신했고, 지금이 아니면 못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 바로 박사를 하게 되었다. 옆에 지원해 주는 교수들, 동기들이 있고 커뮤니티가 있기에. 또 음악으로 박사를 해서 뭘 하느냐는 말을 한다면, 거기다가는 ‘풀타임 교수직을 얻기 위해’ 란 꼬리표를 달면 고개 젓는 일은 없겠지만 진짜 이유는, 직관과 감각을 갖고 하는 음악인으로서, 또 그것을 믿고 하면 필이 살아있는 작곡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온 사람으로서, 규칙과 방법으로 프로젝트를 하면서 그 발란스를 잘 지킬 수 있나에 대한 궁금증이 있기 때문이고, 또 그것을 풀어내면서 나오는 음악이 어떨까에 대한 학문적 탐구심이 있기 때문에, 4,5년 할 마음이 든다. 다른 이유도 많지만, 일단 논문은 이런 것들을 기반으로 즉흥연주와 시리얼리즘의 활용에 대해 쓸 예정이다. 그리고 중간중간 단기해외연수로 연구 관련해서 영미권 대학 탐방 겸 연주 첵아웃을 하려는 계획도 있다. 확실히 박사과정을 하고 있다는 명분이 있으면, 관련음악작업, 관련연구, 관련프로젝트로 뻗어나갈 수 있는 지분이 커지기 때문에, 안 하고 프리랜싱하는 것에 비해 데드라인설정을 하기도 쉽고 그 안에서 활동을 하는 것이 내 성격상 맞는 것 같다. 물론 20대 중후반, 학업을 안 하고 있었을 때 가장 활발히 신에서 활동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철없는 생각은 관두고 애 키우는 아줌마라는 사실을 계속 상기하면서 나 자신을 직접 들어 올려서 일을 시키기 위한 장치로 다시 연구를 하게 되었다. 실제로 호주 예술계통의 연구가들은 심도 있고 훌륭한 작품, 글쓰기 활동을 많이 하면서도 동시에 실기기반의 업적이 어마어마하고 능력 있는 분들이 많아서, 도전이 된다.



워킹맘으로서 어떻게 박사과정을 밟으며 고군분투해 볼 것인가에 대한 것은 아직까진 개척이 잘 안 된 분야인 것 같고 나도 궁금하고 잘하고 싶다. 한국콘텐츠로 김미경강사라던가, 몇몇 눈팅하는 유투버나 인스타툰의 분들의 감칠맛 나는 스토리를 재밌게 듣고 읽지만, 좀 더 디테일하면서도 전적으로 심도 있게 다루는 글쟁이들을 더 만나보고 싶은 게 사실이다. 어렸을 때부터 책으로 분야섭렵하기 다른 분야 꿰뚫기를 하다가, 이민후에 책 읽는 시간도 많이 줄었다. 글쓰기라도 해보면서 내 생각과 관점을 기록하고, 비슷한 관심사, 관련분야의 있는 분들과 소통해보고 싶다. (밑의 그림은 내가 책상에 앉아서 다른 작업하다가 낙서 겸 그린 그림이다. 윗사진은 아기와 놀면서 함께 만든 선샤인코스트 근처의 페루지안비치 모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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