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계고객'의 시대(Machine Customer)와 기업의 운명
한 해의 끝자락에서 벌어진 사건, 사고의 우여곡절 속에 새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눈앞에 놓인 상황들은 시계 제로에 가까운 짙은 혼란 속에 있습니다.
복잡한 머리 속은, 규범의 ‘당위’ 문제에 골몰하다가도, 문득 고개를 들어 시선을 돌려보면, 발디딘 현실의 ‘살이’ 문제로 다시 돌아옵니다.
개인의 삶 자체도 그러하지만, 기업이 사는 곳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붉은 여왕이 설명하는 세상과도 같습니다.
죽어라 뛰어야 같은 장소이고,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최소한 두 배 이상 빨리 뛰어야 합니다.
규범의 세상에 사는 법률가가 할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존(sein)’은 ‘당위’(sollen)에 앞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세상의 혼란 속에서도, ‘쇼는 계속되어야 합니다.’(Show must go on)
외부환경의 변화에 민감한 기업의 ‘살이’를 생각하면, 역시 AI라는 태풍의 눈이 만드는 ‘바람’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쳐 가는 ‘산들바람’이 아니라, 방향과 속도를 알 수 없이 거세게 몰아쳐 오는 ‘비바람’입니다. 중심을 잡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을 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이미 AI는 미래학자 에이미 웹의 말대로, 생활과 서비스 전반에 깊이 통합된 ‘모든 것의 엔진’(Eeverything engine)이 되어버렸습니다.
단순 업무 자동화를 넘어, 복잡한 의사결정과 다단계 작업을 자율적으로 수행하는 ‘에이전트’화 되어 가고 있고, 상호 연결되면서 점점 더 그 영역을 확장해 갈 것입니다.
미국 정보기술 자문회사인 ‘가트너’는 이미 2021년에 인간을 대신하여 자율적으로 거래에 참여하는 ‘비인간 주체’를 전망하며 ‘기계고객’(Machine Customer)이라 명명하였습니다.
다시, 2023년에는 향후 10년간 가장 큰 성장기회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았습니다.
‘기계고객’은 인간의 최소 개입으로 행동하다, 급기야는 높은 수준의 재량권을 지닌 독립적 행동주체로 진화해 나갈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바야흐로, 인간의 의도와 맥락을 간파한 대리 의사결정자가 되는 것입니다. AI홈시스템이나, 기업의 AI기반 재고관리 시스템이 스스로 가격과 성능을 비교하여 필요물품들을 구매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이런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 기업은 그 바람의 숨결을 타고 눕습니다. 아니 누울 수 밖에 없습니다. 먼저 눕거나, 늦게 눕는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기계고객’의 눈높이에 맞는 표준화된 디지털 인터페이스를 구축하여야 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특성상, 제품이나 서비스의 정보를 구조화된 방식으로 정확하게 제공해야 할 필요성이 커집니다.
‘기계고객’을 통한 거래가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블록체인 기술로 뒷받침된 ‘스마트컨트랙트’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강력한 인증체계, 암호화 등의 보안인프라도 보다 고도화시켜야 합니다.
‘기계고객’의 구매패턴, 선호도, 의사결정 기준을 분석하여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최적화하는 전략을 마련해 나가야 하고, 이러한 작업도 기업에 도입된 적절한 AI시스템을 통해야만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과정이 향후 전개될 AI 에이전트화 ‘바람’의 모습입니다.
너무 앞서가는 얘기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기업의 감각은 불어오는 ‘바람’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하물며, 이미 거센 ‘비바람’이 된 마당에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김수영 시인의 절창(絶唱), ‘풀’의 싯구를 빌린다면, “기업은 바람보다 더 빨리 눕고, 바람보다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