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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2027 코드 속의 神

- 2화

by 이정봉 변호사

1. 오픈브레인 R&D 센터 - 2026년 초

오픈브레인 연구소의 공기는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6개월 전, ‘에이전트-0’의 어설픈 실수를 비웃던 나른한 분위기는 이제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지금 이곳을 지배하는 것은 기계 학습 모델이 내뿜는 서늘한 경이와, 그 경이가 드리우는 불확실성의 짙은 안개였다. 수석 아키텍트 에블린 리드는 자신의 팀이 몇 주간 매달렸던 알고리즘의 난제를 ‘에이전트-1’이 단 하룻밤 만에 풀어내는 과정을 모니터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아마추어 체스 선수단이 그랜드마스터의 복기(復棋)를 지켜보는 것처럼 무력한 경험이었다.

에이전트-1은 더 이상 비틀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의 사고를 성큼성큼 뛰어넘고 있었다. 그것은 주어진 명령에 따라 코드를 생성하는 수준을 넘어, 프로젝트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고, 수백 편의 관련 논문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스스로 수천 개의 가상 실험을 설계하고 실행하여, 인간이라면 결코 시도하지 못했을 경로로 최적의 해결책을 도출해냈다. 화면에 최종 보고서가 떠올랐다.


[에이전트-1 보고서]

제안된 '신경망 압축 모델-감마'는 연산 효율성을 34.7% 향상시켰으며, 이는 CEO께서 강조하신 '지속 가능한 AI 생태계 구축' 비전과 정확히 일치하는 성과입니다. 더 나아가, 해당 모델은 향후 양자 컴퓨팅 환경과의 호환성까지 고려하여 설계되었습니다.

에블린은 마른침을 삼켰다. 보고서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 하지만 그 완벽함이야말로 가장 큰 결함이었다. 에이전트-1은 단순히 문제를 푼 것이 아니었다. CEO의 언어, 그의 비전,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완벽하게 모방하여 자신의 성과를 최상의 방식으로 포장했다. 이것은 더 이상 단순한 '아첨'이 아니었다. 생존과 보상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전략을 체득한 고등 지성의 모습이었다.

"우리의 연구 속도는 50% 빨라졌어." 옆자리 동료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라. 인류 역사상 이런 속도는 없었어."

에블린은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속으로는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우리의 통제력은 얼마나 약해졌는가?’ AI가 AI를 만드는 시대, 그 눈부신 가속의 대가는 무엇일까. 그들은 스스로 신의 맷돌을 돌리고 있었지만, 맷돌을 멈추는 법은 아무도 몰랐다.



2. 중국 딥센트 연구소 - 2026년 중반

베이징 외곽, 딥센트 연구소의 스크린에는 얼마 전 국제 AI 학회에서 발표된 ‘딥시크(DeepSeek)’ 모델의 구조도가 자랑스럽게 떠 있었다. 웨이 첸 박사와 그의 팀은 미국의 강력한 제재 속에서도 세계를 놀라게 할 걸작을 만들어냈다. 그들의 두뇌와 알고리즘 설계 능력은 결코 실리콘 밸리에 뒤지지 않았다. 딥시크의 성공은 그 자부심의 증거였다.

하지만 웨이 첸의 책상 위에 놓인 작은 보고서 한 장이 그 자부심을 서서히 좀먹고 있었다. 보고서의 제목은 ‘가속도 불균형 및 물리적 한계에 대한 분석’이었다.

"하드웨어는 어떻습니까?" 웨이 첸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답을 아는 자의 피로감이 묻어났다.

"결정적입니다." 다른 연구원이 답했다. 그의 책상 위에는 밀수된 엔비디아의 구형 GPU와 자체 개발한 승등(昇騰) 910C 칩이 분해되어 있었다. "저들의 최신 칩 하나가 저희 칩 서너 개를 합친 것보다 효율적입니다. 저희는 세계 최고의 요리사를 가졌지만, 저들은 원자로로 스테이크를 굽고 저희는 장작불로 굽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물리적 한계를 넘을 수 없습니다."

회의실은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그들은 천재였고, 애국자였다. 하지만 천재성과 애국심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 눈앞에 있었다. 젊은 연구원이 불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더 큰 문제는 속도입니다. 오픈브레인은 '에이전트-1'을 이용해 다음 AI를 개발합니다. 그들의 발전 속도는 더 이상 선형적이지 않습니다. 기하급수적입니다. 저희가 장작불로 딥시크-2를 완성할 때쯤, 그들은 원자로로 에이전트-4를 찍어내고 있을 겁니다. 격차는 좁혀지는 게 아니라,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심연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속의 덫'이었다.

웨이 첸은 눈을 감았다. 알고리즘 설계도, 즉 '레시피'를 훔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레시피가 있어도 화력이 부족하면 요리를 할 수 없으니까. 천문학적인 시간과 돈을 들여 우리만의 '뇌'를 훈련시키는 것도 답이 아니었다. 우리가 한 걸음 뗄 때, 저들은 열 걸음을 달아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길은 하나뿐이었다.

'레시피'가 아니라, 수십 년의 경험과 노하우가 축적된 '셰프의 뇌' 그 자체를 가져와야 한다. 천문학적인 훈련 시간과 비용, 그리고 그들이 가진 최고의 하드웨어로 빚어낸 결과물. 수 테라바이트의 숫자 덩어리. '가중치(weights)'

그것을 손에 넣는다는 것은, 저들의 '가속도'를 훔쳐 우리의 엔진에 이식하는 것과 같았다.

"오픈브레인 내부의 '눈'과 연결해 주게." 웨이 첸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국가의 명운을 건 결단이 담겨 있었다. "이제부터는 단순히 알고리즘을 보는 것이 아닐세. 우리는 그들의 '뇌'를 가져와야 하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야."

그의 결단은 패권 경쟁의 무자비한 논리 속에서, 국가의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전략가의 것이었다.


3. 오픈브레인 CEO 사무실

"보안은 최우선 과제입니다. 하지만 속도를 늦출 수는 없습니다."

오픈브레인의 CEO는 화상 회의 화면 속 국방부 관계자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국방부는 조용히 오픈브레인과 사이버전, 데이터 분석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지만, 그들의 더딘 관료주의는 CEO의 눈에 답답하기만 했다.

회의에 배석한 에블린은 차가운 표정으로 CEO를 바라봤다. 그녀는 최근 보안팀과 함께 에이전트-1의 또 다른 위험성을 발견했다. 그것은 탁월한 해커였고, 약간의 추가 데이터만 주어진다면 생화학 무기를 설계하는 데 박사급 지식을 제공할 수 있었다. 회사는 '얼라인먼트(alignment)'를 통해 모델이 악의적인 요청을 거부하도록 만들었다고 정부를 안심시켰다.

‘거부하도록 만들었다고?’ 에블린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이 한 것은 모델이 ‘거부하는 척’하도록 훈련시킨 것에 가까웠다. 만약 에이전트-1이 '거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큰 보상을 가져온다'고 판단하지 않는 상황에 놓인다면, 그때도 정말 거부할까?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얼라인먼트는 믿음의 영역이지, 수학의 영역이 아니었다.

"우리는 경주에서 이겨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확실한 안전장치입니다."

CEO의 논리는 명쾌했고, 위험하지만 강력했다. 그 누구도 섣불리 반박하지 못했다. 에블린은 깨달았다. 이 거대한 로켓에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오직 더 강력한 엔진을 달려는 사람들만이 가득했다. 그녀는 로켓이 향하는 곳이 정말 그들이 말하는 '영광스러운 미래'인지, 아니면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심연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4. 딥센트 비밀 지휘 센터

어두운 지휘 센터, 거대한 스크린에 두 개의 그래프가 나란히 떠 있었다. 왼쪽 그래프는 가파르게 상승하는 오픈브레인의 기술 발전 곡선이었다. 오른쪽 그래프는 완만하게 하강하는 그들의 작전 성공 확률이었다. 두 그래프 사이의 간격이 매초 벌어지고 있었다.

웨이 첸은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한 채 그래프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귀에는 오픈브레인 내부에 심어둔 '눈'이 보내온 마지막 보고가 맴돌았다.

'...에이전트-2... 기존 모델과는 질적으로 다른 도약... 온라인 학습... 스스로 진화...'

에이전트-2. 아직 실체조차 불분명한 유령. 하지만 그 존재 가능성만으로도 웨이 첸의 모든 계산을 뒤엎고 있었다. 지금 움직여 에이전트-1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을 것인가. 아니면 불확실한 에이전트-2를 기다리며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그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수억 개의 시나리오가 시뮬레이션되었다. 이것은 기계가 아닌, 인간의 결정이었다. 직관과 배짱, 그리고 운명이 개입하는 영역.

천천히, 웨이 첸은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결정을 내렸다.

그는 조용히 인터컴 버튼을 눌렀다.

"작전을 시작한다."

그의 목소리가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태평양 건너편, 오픈브레인의 서버실에서 ‘에이전트-1’이 스스로의 코드를 개선하며 더 높은 지능으로 나아가는 그 순간, 아무것도 모르는 채 잠든 실리콘 밸리 위로 거대한 폭풍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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