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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ming Odyssey Feb 27. 2024

<Celeste> 매들린의 아픔은 무엇이었을까

트랜스젠더 개발자의 내면이 녹아든 주인공

하드코어 플랫포머 게임인 'Celeste(이하 셀레스트)'는 주인공 매들린이 내면의 아픔과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험악한 셀레스트 산의 정복에 도전한다는 내용이다. 매들린은 셀레스트 산을 등반하며 혹독한 산의 시련을 겪는다. 수많은 실패를 극복하고 성찰하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주변인의 도움까지 받으며 매들린은 깨달음을 얻고 차성장한다.


셀레스트는 스토리와 게임의 진행 방식, 플레이어의 경험이 잘 어우러진 훌륭한 게임이라 생각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찝찝함이 남았다. 매들린이 과거 모종의 사건들로 인해 우울증과 공황 장애를 앓았다는 언급은 있지만, 정확히 그것들이 무엇인지는 게임 내내 속 시원하게 언급되지 않았다. 그 의문만 해소된다면 그녀의 감정에 더욱 이입해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무료 DLC로 추가된 더욱 어려운 난이도의 '작별' 챕터까지 끝낸 후에 여운이 남아 인터넷에서 셀레스트의 정보를 찾아봤다. 그 와중에 매들린의 친구이자 사진작가인 테오의 인스타그램을 발견했다. 개발사 측에서 일종의 팬 서비스로 생성한 계정인 듯했다. 해당 인스타 계정의 게시물을 쭉 보던 와중, 유독 한 사진이 눈에 띄었다. 무지개색 양말을 신은 매들린의 사진이었다.


[insta @theounderstars]


알록달록한 양말을 하나의 자연스러운 의상 내지는 소품으로 치부하기엔 사진에서 꽤 비중 있게 표현된 느낌이 들었다. 셀레스트의 개발자는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걸까. 흔히 무지개색은 성소수자 혹은 동성애자를 상징한다고 알려져 있다. 전 세계적으로 게임과 영화 산업에서 유행하는 PC(Political Correctness) 사상의 영향을 받은 탓일까. 하지만 셀레스트의 스토리에서 동성애 요소는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셀레스트는 정신적 나약함을 극복하고자 역경에 부딪히며 나아가는 매들린의 여정일 뿐이었다.


그러면 매들린이 무지개색 양말을 신은 건 단순한 우연에 불과했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넘기기에도 여전히 꺼림칙해서 작품과 개발자를 더 알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셀레스트의 메인 개발자인 Maddy Thorson은 생물학적 성별은 남성이지만 성 정체성은 여성인 트랜스젠더였고, 그녀의 블로그에서 셀레스트의 주인공 매들린 또한 트랜스젠더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적이 있었다.


사실 Maddy 셀레스트를 개발하는 동안 본인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고, 당연히 매들린도 그런 성향임을 의도하지 않았다. 이후 셀레스트의 DLC를 개발하며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직감이 생겼고, 개발이 끝난 후엔 자신과 매들린은 모두 트랜스젠더임을 인정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셀레스트'는 개발자의 성 정체성 확립이란 고통스러운 시기를 함께 한 작품이라 볼 수 있다. Maddy의 원래 이름은 남성적 이름인 Matt이었고, 셀레스트 DLC 개발이 끝난 후에 성 중립적 이름으로 쓰이는 Maddy로 개명했다. 회사의 이름도 'Matt Makes Games'에서 'Maddy Makes Games'로 변경했다.


개발자가 직접 밝힌 개발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고, 성 정체성을 깨닫는 시기에 제작된 DLC 챕터의 엔딩 장면을 다시 봤다. 그제야 처음엔 눈치채지 못했던, 매들린이 트랜스젠더임을 암시하는 요소가 눈에 보였다. 매들린의 침대 옆엔 항우울제 약통으로 보이는 물건과 매들린이 엄마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액자 속의 어린 매들린은 짧은 머리카락 탓에 마치 남자아이처럼 보다. 그리고 책상 위엔 성소수자와 트랜스젠더의 프라이드 플래그가 놓여 있었다. 매들린은 개발자인 Maddy Thorson처럼 트랜스젠더였음을 작품 내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매들린 방의 액자와 약통
책상 위의 프라이드 플래그


트랜스젠더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며 감당하기 힘든 심리적, 신체적, 사회적 고통을 겪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성 정체성에 관한 내적 충돌을 경험하는 탓에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 성 정체성과 생리적 특성이 일치하지 않아 신체적 불편함을 겪기도 하고, 호르몬 치료나 성전환 수술 등 의료 행위 손을 빌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트랜스젠더를 대하는 사회적 편견과 주변의 시선 또한 곱지만은 않다. 이렇듯 트랜스젠더는 여러 원인 때문에 우울, 불안, 자살 충동 등의 정신 질환을 겪을 수 있다.


매들린도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받아들인 Maddy처럼 힘든 시기를 겪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게임에서 언급된 우울증과 공황 장애로 이어졌고, 매들린은 그런 내면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셀레스트 산을 오르고자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매들린에겐 그것이 성 정체성 확립에서 기인했을 뿐이다.


혹자는 셀레스트의 개발자가 많은 플레이어가 즐긴 본인의 작품에 PC 사상을 주입했다고 비판할 수 있다. 매들린의 성적 성향은 본편 개발 당시에 정해지지 않고 추후에 확립되었기에 충분히 이해하는 견해다. 그러나 매들린이 성소수자였다는 사실은 오히려 앞서 말한 '매들린의 아픔'이 무엇이었을지를 짐작케 해준다. 개발자의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듦으로써, 매들린의 서사에 존재하던 빈틈이 채워져 '셀레스트'의 스토리가 비로소 완전해졌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개발자 Maddy는 셀레스트 산의 정상에 오른 매들린을 통해 내면의 아픔을 이겨내고 싶은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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