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롭지 못하다면 여유롭다는 착각에라도 빠져야지
단 한 뼘의 여유도 없는 퇴근길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구겨질 대로 구겨진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러다 문득 잔뜩 구겨져서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괜히 안쓰럽게 느껴져서 다시 주워서 벽에다가 걸었다. 그런 다음 가볍게 저녁을 먹고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어제 쓰다만 글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였다.
글 작업할 때 집중하기 위해 항상 의식처럼 행하는 동작들이 있다. 의자의 높이를 조금 높이고 허리를 등받이 전체에 닿을 수 있을 만큼 바짝 앉아서 방 안의 모든 불을 끄고 책상 위의 가장 작은 스탠드 등을 켠다. 그다음에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에 들어가 기타 베이스의 노래를 튼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서 노트북 화면을 바라보면 순간적으로 집중력이 몰려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다음에 오늘은 어떤 글을 쓸지 차분하게 정리해본다. 나의 하루를 되돌아보기도 하고 조용히 파도가 치는 여름 밤바다를 상상하기도 한다. 잔잔하게 파도가 밀려오는 상상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어느샌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묘하게 차오르는 평화로운 감정은 숨 가쁘게 보냈던 아침 동안의 시간이 전부 여유롭게 흘러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게 만든다.
그래서인가 글을 작성하기 전 나는 이 시간을 굉장히 좋아한다. 오늘 하루를 차분하게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오늘 하루를 돌아보게 되면서 그래도 꽤 괜찮게 살아가는 중이 아닐까 괜히 혼자 응원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매번 퇴근하고 와서 얼마 없는 시간을 또 쪼개고 쪼개서 책상 앞에 앉아 계속 이러고 있는 걸 보면 어쩌면 내일도 알차게 보내기 위한 또 다른 이유를 찾기 위해서가 아닐까 가만히 생각해본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매번 색다르고 통통 튀는 영감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오늘도 나는 작은 스탠드 불빛 앞에서 노트북을 켜 두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기타 소리에 가만히 발을 까딱거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