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림 Feb 24. 2024

그럼에도 불구하고


며칠 큰 눈과 비가 원 없이 내려  대지를 적시고 은빛 흔적을 남겼다. 하늘이 맑고 먼지 하나 없이 투명한 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이런 날 기분 좋게 수업을 갔다 오며 느낀 것은 그래도 포근함이 감싸 눈 녹듯 마음이 흐른다는 거다. 어떻게든 봄은 오고 막아도 막아설 수 없다는 것을.


눈 쌓인 가지 위 봉오리마다 소복이 내려앉은 눈꽃도 채 가시지 않았는데 조금씩 봄맞이하는 나무를 본다. 눈 속에서도 꽃봉오리를 올리고 보이지 않는 싹을 틔워내고 있다니 우리도 언젠가 저렇게 피어날 수 있을까. 어쩌면 자연이 밀어 올리는 시간의 법칙인가 보다. 마치 때 되면 눈뜨고 배고프면 밥 먹고 움직이며 잠들 듯이 말이다.


겨울에도 좀처럼 큰 눈을 보기 쉽지 않은데 봄 문턱에서 맞은 시샘치 서럽게 많은 눈이 내렸다. 비록 준비하지 못한 폭설에 피해가 많지 않길 바라지만 마지막 분출을 보듯 반가운 맘이 솟아난다. 다음 주면 벌써 3월 아니던가. 아무리 애써도 당분간 이번 같은 눈은 만나기 어려울 테니 마치 선물이 내려온 듯하다.


이근후 박사님의 '오늘이 당신 인생의 황금기'라는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구정 전 미리 등록해 두었던 것인데 마침 알람이 왔다. 고령의 박사님이라 말수가 어눌하고 천천히 말씀하시지만 요약해 보면 삶은 물 흐르듯 거스르지 말고 흘러가게 두고, 가지고 있는 불안을 희석하고 기다리게 만드는 것이라 한다. 어떤 때 가장 즐겁냐는 말에 아침에 눈뜨면 감사하며 기분 좋다고 했다. 지금 시간이 가장 귀하다는 생각이다. 두려움을 떠나보내는 것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니 미리 걱정하지 말아야 한다.


가장 좋은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하는 것은 반드시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가진 자산으로 죽음을 순화시킬 수 있는 행동을 발견해야 한다며 오래 산 학자라도 자기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글 쓰고 강연을 한다고 했다. 결국엔 인간은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니까 자기 분수대로 살아야 한다. 본인 그대로 받아들이고 잘 아는 게 중요하며 결국엔 과장하지 않고 자신을 잘 고 정직하게 분수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아흔의 정신과 의사가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젊었을 때 좀 참고 혈기에 치우친 말을 했던 걸 후회한다 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나이 드니 그런 경험이 쌓여 현재가 되었다 했다. 쓸데없는 경험은 없다더니 그 말이 맞다. 나이 든다는 건 경험치가 쌓이는 것이라 어떤 면에선 성숙하고 익어가는 것이다. 과일만 익어가고 김치만 발효되는 게 아니다.


생각해 보면 나보다 삶을 더 살아간 이야기라 모두 주옥같은 이야기다. 모두가 같은 삶을 살진 않지만 결국엔 얻는 지혜는 비슷한가 보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파악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노학자는 그렇게 말했다. 평생을 살아도 나를 잘 모르겠던데 자기를 알아가는 게 인생인가 보다. 어떻게 더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이나 결국엔 정도를 걷고 마음의 거스름 없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마음을 가지는 것, 그러려면 여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게 다 삶의 연결이다. 내 마음 상태부터 경제, 건강, 안정감 등 수많은 것들이 영향을 주지만 결국엔 작은 마음가짐 하나로 바뀌게 되는 것 아닌가. 난 오늘 또 하나를 배운다. 그래도 살만한 세상에 태어나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로 했다.


눈이 내려 갑자기 찾아온 찬 기운이 당황스러워도 어쩌면 돌아오길 거부할 수 없는 봄맞이 전초전 일 테다. 눈부시게 화창한 햇살이 창밖으로 투영되는 그런 시간이 기다리고 있으니 좀 서두르라는 보챔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조금씩 봄이 찾아오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모더니스트의 서울 나들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