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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Apr 27. 2024

조카와 데이트를


조카와 데이트다. 얼마 전 내 생일 땐 시험이라 일정이 안 맞아 미루다 오늘에야 시간을 냈다. 집 근처 말고 다른 데서 밥 먹고 데이트하자고 해 인사동에 갔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많지 않고 밝은 햇살과 살랑바람이 불어와 데이트하기 딱 좋은 날이다. 거리는 아네모네, 양귀비, 라넌큘러스 등 화려한 꽃들로 수놓아져 있어 마치 인사를 하는 듯 빼꼼히 조경되어 있다. 언제부터 길거리 꽃들도 각자 특색 있는 화려한 미모가 다르지만 오묘하게 아름다움을 뽐내며 어울려 살아간다.


인사동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자수 전시한 갤러리도 들렀다. 상보와 방석보, 반짇고리 등을 전시한 사이로  새로운 것은 다리미판으로 사용한 조그만 나무판이 인상적이다. 처음 보는 물건이라 보료 옆면의 장식인 줄 알았는데 설명을 듣고 보니 한쪽은 다리미로 쓰고 사용하지 않을 땐 화려한 자수가 있는 쪽을 보이게 보관했다 한다. 화려함과 센스에 놀랐다. 그 시절 다리미판이 있는 것도 재밌는데 손바닥만 한 넓이 판 뒤쪽을 자수로 만들어 보관했다니 옛사람은 정말로 미적 감성이 남달랐던 것 같다.


카페에 앉아 커피 마시면서 맞은편 런던 베이글에 줄 서서 기다렸다 들어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나도 줄 서기 싫어 가보지 못했는데 아직까지 이렇게 대기 줄이 많은 것을 보니 신기했다. 더구나 가격이 싼 것도 아니고 빵 하나 먹으려 오픈런한다니 이렇게 오래도록 인기 있는 빵집은 처음인 거 같다. 뉴스에 360억 매출에 순이익이 126억이 났다면서 3000억에 매물로 나왔다는 기사를 봤다. 제주와 지역 곳곳에 지점을 내고 롯데 잠실점에도 입점을 했는데 그곳도 줄을 선다. 덕분에 사람들이 베이글을 좋아하지만 원래 빵 식감과 다른 부드러운 빵이 돼버린 단점도 있다.


날은 따스하고 걷기 좋은 날씨라 북촌의 전망대 쪽으로 향했다. 좁은 골목길에 외국인이 무척 많았는데 왜 그런지 가보고 알았다. 포토 맛집이 있는 곳이라 꽤 많은 외국인들로 넘쳐났다. 나도 이곳엔 처음 와보는 데 사진 속이나 뉴스에 자주 봐왔던 곳으로 언덕 위 한옥이 즐비한, 가보면 금방 알듯한 장소였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북촌풍경은 날씨만큼이나 화창하고 한옥이 빛나는 풍경을 보여주었다. 각자 폰을 들어 사진을 남겼다. 데이트라 분홍색 블라우스를 입은 나와 피부가 하얘 겨자색 원피스를 입은 조카가 사진 속에서 웃고 있다. 정말 예쁘게 잘 어울렸다. 이틀 전 큰마음먹고 머리에 웨이브를 주었다는데 어린 티가 안 나고 성숙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천천히 이곳저곳 둘러보다 인사동 앞 밥집으로 갔다. 동생네와 함께 와본 곳이라 조카는 그때의 기억을 살려 맛있는 밥을 사주었다. 근처에 쌈지길이 있어서 예쁜 소품과 체험 공간이 있는 곳을 구경했다. 여자들끼리는 아기자기한 소품이나 액세서리 등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둘 다 밥만 배부르게 먹으면 뭐든지 안정감 있게 군것질거리를 찾는 취향이 아니라 천천히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오랜만에 인사동서 시작해 북촌, 인사동에서 교보문고까지 갔다. 각자 자기의 취향대로 책과 잡지, 소품 등을 보다가 광화문 야경을 보러 갔다.

초파일 연등행사를 위한 기념탑이 청룡과 같이 밝은 불빛으로 장식되어 있어 어슴푸레 넘어가는 저녁시간과 잘 어울렸다. 오랜만에 나온 광화문 광장엔 바닥분수와 쉴 장소 등이 많이 마련되어 시민들에게 오롯이 개방된 공간으로 사랑받는 곳이 되었다. 오랜 시간 동안 서울의 심장부 같은 곳이 시위와 떼를 쓰는 일부에게 허락되는 곳이 아닌 모든 이들이 쉬고 찾아오는 공간으로 탄생되어 좋았다. 돌아오면서 편의점 아이스크림 한 개씩 물고 헤어졌다. 다음번엔 더 버라이어티 한 장소로 데이트를 가자고 했다. 좋은 날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며 일상을 벗어난 시간 보낼 수 있는 데이트가 좋다. 사랑하는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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