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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May 27. 2024

잊고 지내 꺼내기 힘든 사실들


부고문자를 받았다. 집사님은 오랜 기간 췌장암으로 고생하셨고 재발이었기에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셨다. 멀리 미국서 아들 내외가 찾아오고 딸네도 모였다. 목회를 하는 집안으로 아들, 사위가 모두 목사인 집안이다. 모태신앙이었던 난 나서 자란 교회를 속절없이 떠나왔는데 그 이유가 집사님 며느리이자 사모의 불륜으로 인해 시끄러워서였다.


목사 딸이던 사모는 장로와 바람이 났고 그걸 우연한 기회에 누군가 노트북을 취득하게 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만약 장로가 반성하거나 죄를 인정했다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을 테지만 증거에도 극구 부인하고 담임 목회자가 감싸면서 일이 커져 교회가 흔들렸다. 담임목사의 처남이자 장로는 제 식구 감싸기로 죄를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로 일삼더니 결국엔 교회를 갈라 치기하고 교인이 나뉘기까지 했다. 그러다 하나 둘 비리가 드러나면서 걷잡을 수 없게 되자 다수의 교인들이 섬기던 교회를 나와 새로운 곳에 둥지를 틀고 교회를 세웠다.

그런 사모가 장례식장에 나타났다. 오랜만에 한국에 입국한 듯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어린 티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밝게 웃으면서 조문객을 맞이하니 기분이 묘했다. 덕분에 전에 다니던 교인들이 많이 다녀갔고 비 오는 주말 저녁 잠시 남편과 들른 나는 몇몇 분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옛 교회에 남은 언니는 남편과 밝게 웃으며 같이 자리했고 훌쩍 흐른 시간에 못잖게 아직까지 예전 모습을 가지고 맞이해 주었다. 세월이 근 8년 여가 되어가니 그간 시간이 무심흘러버렸다. 결혼해서 우리 집에 자주 드나들던 일부터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같이 사경회에 갔던 일, 휴가를 가면서 시댁에 들러 구경했던 일까지 잊지 않고 지난 일을 들췄다.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몽글몽글했던 옛 기억들이 조금씩 피어났다.


내가 가정을 꾸렸을 20대부터 언니네 가족을 보아왔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같이 보내고 기억 나눌 만한 수많은 일이 있었다. 더듬어 가는 추억놀이를 즐기다 문득 드는 생각은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남은 교인들은 잘 지내고 계시는지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갔다. 많은 어르신이 이미 천국을 가셨다 하고 이미 구순을 넘긴 분도 계시다고 했다. 알게 모르게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구나.


여전히 애교 섞인 콧소리로 웃음을 주고받으며 전하는 말속엔 옮기지 못한 교적에 대한 불만과 아쉬움이 숨어있다. 그동안 한 번도 다른 분의 결혼식도 장례식도 가지 않았다고 했다. 마음이 짠해왔다. 뭐가 사람을 이렇게 변하게 하고 막고 있었을까. 아들이 결혼하면 연락하라면서 전화번호를 주고 가 만나서 좋았다고 문자를 보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떠올랐다. 자기 우물 안 날씨와 하늘만 알고 지내는 개구리처럼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 속상하고 짠해온다.


세월은 속절없이 흐르기만 한다더니 어느새 어린아이들의 안위를 묻던 시기는 지나고 결혼을 논하고 지난 시간을 헤아려 본다. 다 부질없지만 그렇게 마음 졸이며 견딜 수 없던 시간을 뒤로한 채 교회를 나오던 때가 떠올랐다. 교회가 교인을 막고 서로 이해와 생각의 차로 나뉘고 싸우는 꼴을 보는 게 지옥 같았기에 참을 수 없었던 때를, 믿음이 뿌리째 송두리 뽑혀나갔던 그때를 말이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난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라 여기지만 언니는 아직도 고민하며 내렸던 결정을 뒤집을 용기는 없나 보다.


우린 각자 자기의 믿음을 따라 상처 입은 영혼이 되었다. 아직도 그 상처는 봉합되지 않고 혈흔을 남기고 쓰디쓴 약을 먹어도 치유되지 않는 흔적이 되었다. 서로에게 잊히지 않는 그런 상처는 누굴 원망하고자 함이 아니다. 결국엔 수면 위로 드러나는 진실 때문이니 살면서 숨길 수 있는 일이 어디까지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이라는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면서 상처 입고 너덜거리는 심정을 파헤치고 싶지 않았고 말하기 어려웠다.


문득 소천하신 집사님이 참고 산 세월이 어떨까 감당되지 않더라도 가족이 짊어졌어야 했던 일들이 마치 어제 일인 듯 알음알음 새겨진다. 살면서 주홍 글씨를 새긴 것과 진배없는 일이지만 인내하고 묻고 갔으니 우리가 그 속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세찬 빗줄기에 멀리 떠나간 사람 말고 남은 자들이 해결해야 할 수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참 야속하게도 세월은 그렇게 흐르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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