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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아래 두둥실

꿈에서 만나본 친구와 함께

by 최림 Apr 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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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이 보슬비가 되어서 내린다. 바게트, 캉파뉴, 단팥빵, 소보루, 마늘빵, 페이스트리 등이 내린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비처럼 내린다기보단 둥둥 떠다닌다고 나 할까? 바닥에 떨어진 것은 없다. 공중에 손 닿을 만한 곳에 그렇게 비처럼 내린다. 나는 뺑 오 쇼콜라(초콜릿이 든 빵)를 하나 집어 든다. 페이스트리도 맛있고, 일반 빵도 맛있기 때문이다. 초콜릿을 좋아하기도 하고 달콤한 맛이 최고긴 하지. 단팥빵보다 오늘은 역시 초콜릿이 든 빵이 좋다.



 한입 베어 무는데 갑자기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이 간절하다. 코를 자극하는 진한 에스프레소에 하얀 우유 거품을 잔뜩 올려서 하트를 예쁘게 그려 준 카페라테가 먹고 싶다. 어? 잘생긴 남자가 하트가 그려진 카페라테 한 잔을 예쁜 컵에 담아서 가져다준다. 갑자기 흰색 원형 테이블에 앉아 있고, 내 자리엔 커피 한 잔과 뺑 오 쇼콜라가 놓여있다. 어느새 창밖은 바람에 벚꽃 눈이 되어 날리고 있다. 멀리서 바라만 봐도 좋다. 온통 하얀 세상이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서 흰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얼마 만인지. 오래도록 보지 못했던 친구가 생각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멀리서 보고 싶은 친구 지현이가 나를 향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든다.



"와! 얼마 만이니? 어쩜 옛날 얼굴 그대로니? 하나도 안 변했어?"


"그런 거짓말이 어딨어? 옛날 그대로라니?"


"호호, 그런가?"


"얘, 그래도 학교 다닐 때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다, 뭐"


"그건 그러네, 호호"



 친구의 손을 잡으니 갑자기 배경이 학교로 바뀌어 있다. 학교 안엔 등나무 터널이 있다. 5월의 녹음 아래 시원한 등나무가 햇빛을 가려주고 달콤한 등꽃 향을 내뿜으면서 나무 그늘 터널로 지나다닐 수 있게 자리를 열어 준다. 등나무 아래 앉아서 꽃향기에 취하고 친구들과 손잡고 노래하던 시절. 오랜만에 손 맞잡은 친구와 딩동댕 종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고 있다. 선생님이 저 멀리서 부르는 것만 같다. 5월은 역시나 아름다운 시절이다. 인기 남이자 좋아하던 국어 선생님이 지나간다. 멀리서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다.



"얘들아! 빨리 들어와야지."



 우리는 눈을 마주 보고 있다가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냅다 뛰기 시작한다.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다 그대로 있다. 국어시간이다. 왜 자꾸 나에게 나와서 노래하라고 하는지. 그땐 정말 싫었는데. 다시 시키면 이번엔 멋들어지게 한 곡조 뽑아보고 싶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버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노라


, 멀리 떠나와 깊은 산골 아래서 별을 보노라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박목월 <4월의 시>



 지현이랑 같이 가던 주말의 음악회에 가보고 싶다. 한 달에 한 번, 무료로 열리던 동아일보사의 음악 감상회는 친구랑 같이 다니던 음악회였는데. 그때 한상우(음악평론가)씨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으로 중학생이던 우리는 토요일 공연에 갔다. 그 음악회에 한 번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장소가 음악회장으로 바뀌어 있다.



"오늘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의....."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이 조용히 음악을 감상하고 있다. 한상우 평론가는 가끔 졸다가 멈칫하고 깨어나서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웃긴 말을 하곤 했다. 오늘도 그런 입담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역시 음악은 광화문에 나와서 들어야 제맛이라며 우리는 마주 보며 눈웃음을 짓고 있다. 덕수궁 앞 빵집에 가보고 싶다고 하니 어느샌가 빵 가게 앞이다. 이 집 식빵을 정말 좋아했는데 하며 들어가 본다. 옛날 아저씨가 날 알아보지는 못하지만 반가이 응대를 해준다.



 시청서 광화문을 지나 걸어오는 길이 정겹다. 친구와 같이 거닐던 광화문 돌담길을 걸어본다. 요즘에야 모양이 달라졌지만 옛날에는 정말 예스러운 모습이었는데. 그 길을 멋있게 친구랑 걸어본다. '우리 손잡고 뛸까?' 하니 어느샌가 우리는 뛰어다니고 있고 그러다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흰 원피스를 나풀거리면서 파란 하늘에 친구와 같이 둥실 떠있다. 나도 풍선이 되고 싶은가 보다. 노랑, 분홍, 파랑의 풍선이 날아간다. 알록달록한 풍선처럼 친구 손을 잡고 두둥실 떠 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아이스크림처럼 뽀송한 구름을 맛보고 싶어 진다. 솜사탕 같은 맛일까 하는 맘으로. 내 손엔 꽃분홍의 솜사탕이 들려있다. 친구랑 나눠먹으며 까르륵 웃어본다. 다른 손엔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30cm 나 되는 키를 뽐내며 있다. 나는 초콜릿도 좋아하지만 바닐라도 좋아하니까 한입 맛본다. 와! 시원해!



 차라리 입에 넣지 말걸. 차가움을 느끼는 순간 눈이 떠졌네? 더 자면 계속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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