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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Sep 23. 2022

푸르른 파고의 강릉

친구와 훌쩍 떠나는 여행


황쌤과 속초를 거쳐서 강릉에 왔다. 시간과 날짜를 맞추기 쉽지 않은 우리가 처음으로 서울을 떠나 경춘 가도를 달리며 오다 보니 날씨가 요동쳤다. 화려하고 높기만 한 푸르름을 지나서 흐리고 비가 오기도 했다. 고도를 내려오니 이제는 날이 풀려서 맑은 날씨가 되었다. 이동하는 하루 동안 날씨의 사계절을 겪었다. 그래도 바다의 파고가 높아서 흔들리는 물결을 볼 수 있으니 무섭게 휘몰아치는 바다를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라 두려움이 몰려왔다. 태풍이 지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낮부터 밤까지 흔들리는 격랑의 파고였다. 마음이 흔들리면 움직이는 파고에도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다. 파도는 나를 부르는 듯이 손짓하듯이 보이지만 실제론 내게 달려들 듯이 휘몰아쳤다. 이런 풍랑을 만나본 적이 없다. 바닷가 사는 이들이 가지는 파도의 무서움과 바다에 목숨을 맡기는 이들의 겸허함을 배우게 된다.


바다를 보는 것만으로도 여행의 목적을 완수한 듯했다. 나누는 이야기는 끊기지 않고 웃음과 기쁨이 있다. 같은 업종에 같은 일을 하는 우리는 서로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같은 성향에 마주 보고 웃기만 해도 마음이 통했다. 그래서였을까. 먹는 일도, 마시는 일도, 남편을 향한 흘깃도 모두 웃음뿐이었다. 용띠 자녀를 키우우리의 말속에 다수의 것들이 겹치기도 했다. 처음으로 떠나온 길에 우리의 발자취가 남았다. 화통하고 속 깊은 황쌤과 나는 깊이 이해하고 있다. 물론 그녀의 모든 것이 내 인정을 필요하지 않으나 많은 것을 나누고 헤아릴 수 있다면 더 은 편함과 행복함을 맛보는 것이 아닐까.


강릉의 밤바다가 무서운 풍랑에 움직이는 장세였다면 아침 바다는 찬란함에 요동치는 파고였다. 최근 가까이서 파랗고 깊은 하늘을 본 적 없어서 인지 날씨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가을이 왔다'바람이 귓가를 스쳐갔. 햇살의 뜨거움도 지나고 따스함과 기분 좋은 살랑임밀려오는 하얀 파고와 함께 나를 향해 손짓했다. 눈이 부시게 파랗고 맑은 하늘, 스미는 짠  내음과 철썩이파도 소리가 나를 어루만져 주고 '그동안 힘들었지?' 하고 속삭였다.


행으로 만나는 전복물회에 멍게비빔밥이 최고의 음식이었다. 초당 순두부, 황태 해장국, 황태구이, 막국수 그 어느 것도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다만 집을 떠나서 먹는 음식이라 느끼는 색다른 맛 정도였다. 원래 물에 빠진 회는 선호하지 않지만 내가 먹은 시린 물회는 시원함과 신선함, 딱 맞는 간이 내주는 맛있는 음식이었다. 모든 음식과 나누는 대화에 같이해서 더 좋기도 했다. 이십여 년 가까이 음식과 베이킹으로 끊임없이 정진하고 있어서 그 누구도 같은 공유를 진 못했으리라. 서로 다른 성향과 스킬을 갖고 있지만 그녀와 나의 결 자체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서로 알아가는 시간과 내게 보내는 공감 만으로도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언젠가 교회 동생과 여행 갔던 기억이 스쳤다. 모든 계획과 실천을 내가 주도하고 동행하는 여행이었지만 당연한 듯 투정과 불평하는 말투에 상처받아 다시 갈 생각조차 하지 않게 했다. 같이 지내보니 나와는 성향 자체가 달랐고 다 맞춰주기엔 너무나 피곤했다. 고마움도 모르는 그녀가 섭섭하기도 했다. 외려 그녀와의 관계가 더 서먹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니까.


함께 떠나봐야지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있다 한다. 이번 여행이야말로 그녀의 진면목을 알 수 있고 오롯이 느낀 시간이었다. 정말 괜찮은 그녀를 발견하기도 했으니까. 지나치게 깍듯한 그녀, 둘 다 장녀라 남에게 신세 지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했다. 그래서였는지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으리라. 강의 경력이 훨씬 더 긴 그녀를 보면서 배울 것도 많고 이미 기능장을 딴 그녀가 부럽기도 했다.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시간은 끝날 줄 모르는 이야기로 빠져드는 시간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 운전을 했건만 피곤함을 느끼기엔 활동량이 많지도 않아서 잠이 안 오기도 했고 잠자리가 바뀌어서 인지 깊은 잠에 들지 못하기도 했다. 그녀는 오래도록 같이 다녀도 괜찮을 만큼 나와의 합이 좋았다. 물론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유명 베이커리를 가려다 중간에 정차한 하조대 근처 동화 해변은 바닷물 색과 고운 모래,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가 완벽한 조용한 해변이었다. 그곳에 멈춰 서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치유받은 느낌이었. 오래도록 사진을 찍고 바닷바람에 서늘함을 느껴도 추운 줄 몰랐다. 밀려오는 파도에 눈에 담아 오고 싶은 풍경, 맑고 푸른 하늘이 더없이 소중했다. 파도 소리만으로도 이미 힐링받은 느낌이라 먹지 못한 빵과 커피도 아무 상관없었고 아쉬울 것 하나 없는 풍광이었다. 동영상으로 여러 각도에서 촬영을 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보고 싶을 때마다 이 순간을 들춰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길에 홍천 휴게소에 들러 마시는 달달한 캐러멜 마키아또 한 잔과 호두과자도 적당한 달기와 따뜻함으로 다가왔다.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한적한 휴게소에서 느끼는 여유로움과 숲에서 불어오는 풀냄새였다. 숲 내를 맡는 순간 바다 내음보다 더 깊은 감동이 밀려왔다. 짠 내보다 비릿한, 약간의 풀 내와 습기 먹은 듯한 내음이 더 익숙했다. 황쌤도 나도 그런 풀 내를 더 선호한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 동질화시키기도 하며 나누는 것에 비슷한 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더 많이 알아가고 지나온 시간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집 근처에 내려주고 돌아오는 시간에 저녁이라 막히지도 않았다. 조용히 밤이 내려앉은 서울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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