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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림 Sep 17. 2022

마음의 온기를 데워야지


"산이나 가야겠다."

"난 힘들어 안 갈래."

"괜찮아. 혼자 오는 남자들 많아."

"...... 라가야겠네."


뾰로통한 내가 툭 던졌다. 혼자 가도 괜찮은데 어떻게 하나 싶어서 건넨 한마디였다. 결국엔 오후에 비가 내려 나가지 못했지만. 사실 같이 가달라고 한 적 없고 바란 것도 아니었는데 이런 반응이니 내심 섭섭했다. 반응을 살핀 건데 의외의 효과가 있었다고 나 할까. 역시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다. 한마디 건넨 말에 춤추는 남자라니. 남자는 여자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게 아니란다.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작은 일이라도 칭찬을 해주고 "잘한다, 잘한다." 해주고 자기의 영역을 인정해 주는 거였다. 물론 아들을 키워 본 내가 덕을 본 방법이기도 하나 아들이나 어른이나 다른 것은 없다. 나이 든 남자라도 역시 먹히는 방법이다.


여자는 인정의 욕구보단 사랑이 필요하다. 따뜻한 말 한마디, 부드러운 손길,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이해해 주는 그런 온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여자는 욕구에 대한 불만이 많다. 딸은 항상 자기의 마음 상태를 알아주기를 바랐다. 자기가 힘들 때 그냥 얘기 들어주기를 원했다. 뭔가 조언이나 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 들어주고 "그랬구나. 많이 힘들었겠네." 하는 말이 듣고 싶었다고. 그래서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화가 나고 말하고 싶지 않아 했다. 


남자와 여자의 특성을 이해하고 지나온 삶을 안다면 무엇에 대한 결핍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부모로부터 듬뿍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한 사람은 보통 연애를 일찍 시작하고 파트너를 바꿔가면서 연애에 빠진다. 돈에 대한 결핍이 클수록 부에 대한 욕구가 크다. 부모로부터 인정받길 갈구하는 사람이라면 노력을 다하기도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기도 한다. 우리가 어디에 기준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 선택하는 것은 결국 마음의 부족, 결핍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내가 글쓰기를 배웠던 한 선생님은 뾰족하기가 송곳과 같았다. 말끝에 덧붙이는 크기가 얼마나 큰지 따끔하고 아프기 일쑤였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아픔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를 더 이상 아프게 하지 말라'라는 신호라는 걸 아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상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니 다른 면이 보였다. 사람은 자기의 방어막을 치고 사는 게 맞다. 나 아프니 더 이상 상처 주지 말라는 신호를 온몸을 다해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든 세상과 사람들 속에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살면서 자잘한 아픔과 실패를 맛본다. 그때마다 베인 상처가 뚝뚝 피를 떨구더라도 반창고 하나 붙이고 지내다 보면 피가 멎기도, 상처가 아물기도 한다.


마음이란 요물과도 같다. 말 한마디에 무너지기도 하고 높은 성벽을 쌓기도 하며 풀어지고 맺히는 것도 마음이라는 그릇이다. 내가 어떤 색깔의 물건을 담는지에 따라 생각이 바뀌고 미래를 다르게 그릴 수도 있다. 그걸 허무는 것도 건네는 말 한마디에서 시작한다. 자신의 마음 상태에 따라 어떤 말을 건네는지 바뀌기도 한다. 우리는 늘 따뜻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서 때로 서늘하고 뾰족한 날 선 언어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내 상태가 같을 순 없기에 상처를 남기기도 하고 고름이 잡혀서 염증을 일으키기도 하는 거겠지. 모든 상황을 이해하며 상대를 받아들일 수 없다. 때론 그런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에 무디게 반응하고 방어막을 치고 싶어 진다.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어울려 사는 삶은 어렵다. 내 마음만으로는 해결이 안 되기 때문이다. 내가 온전히 마음의 빗장을 풀어버린다고 해서 모든 이가 다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때론 빗장을 다시 채우기도 하니 어디 쉬울까. 모두 자기의 마음 상태와 그릇의 차이가 있기에 강요하거나 바랄 수 없는 것이다. 때론 시간이 나를 키워주기도 하고 환경과 상황이 바뀌기도 한다. 그렇게 모두 살아가나 보다. 직장에서 집에서, 친구나 지인을 통해서 우리가 깨지기도, 허물어지기도 하면서 말이다. 자기의 마음 상태를 점검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비가 내린다. 집 밖으로 나서지 못한 일상이 다가온다. 작은 울림이 있던 사건은 아니었지만 말 한마디에 건네는 온기가 요즘 따라 서늘하다. 내 마음의 온도가 낮아졌을까? 깊어가는 가을 한걸음 더 살피고 들여다봐야겠다. 따끈하게 데울 수 있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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