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는데에서 시작됩니다.

이상을 무조건 추구한다고 좋은것은 아닙니다.

by 은명기

“이상을 추구한다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는 데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을 철학적으로 풀어내면 몇 가지 근거가 나옵니다:

1. 결핍(부족함)에서 비롯된 이상

플라톤은 인간이 이상(이데아)을 추구하는 이유를 현실의 불완전성에서 찾았습니다. 현실은 불완전하고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결핍을 의식하는 순간 이미 ‘더 나은 상태’를 그립니다. 다시 말해, 현실의 한계를 부정하는 데서 이상은 탄생합니다.

2. 변화를 향한 부정 정신

헤겔 철학에서 역사는 부정(否定)의 운동으로 나아갑니다. 기존 현실을 긍정만 한다면 변화는 멈추지만, 부정의식이 들어서야 ‘이상’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이상을 추구한다는 것은 현실을 넘어서려는 변증법적 운동이자, 지금의 상태에 대한 거부입니다.

3. 실존적 불안과 초월

사르트르 같은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이 항상 **자신이 있는 곳을 넘어서는 존재(초월적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현재에 안주하지 못하고, "이게 다가 아니다"라고 느낄 때 비로소 이상을 향합니다. 즉, 현실을 부정하는 불안이나 공허가 이상을 낳는 원동력이 됩니다.

4. 행복의 추구와 현실의 모순

아리스토텔레스적 의미에서 인간은 행복(eudaimonia)을 향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늘 불행과 모순을 안고 있지요. 이 모순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부정의 자각에서 이상적 삶을 그리게 됩니다.

� 정리하면,
이상을 추구한다는 것은 곧 현실의 결핍·불완전성·모순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은 현실의 그림자에서 태어나고, 현실에 대한 부정 없이는 이상도 성립하지 않지요.


이 앞전에 글에서 서류전형 합격하고 나머지 면접결과를 공개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쉽게도 1차 면접에서 탈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탈락 후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려고 시작하던 와중에 이전에 다니던 회사 사장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전에 제가 회사 그만뒀다고 그 회사 다니는 직원 중에 한 명한테 얘기를 했는데 그 얘기가 퍼져 사장님한테도 그 얘기가 퍼져 다시 여기 와서 일해 볼 생각 없냐고 연락이 와서 하루만 생각하고 다시 다니겠다고 오늘 사장님과 점심식사를 같이하고 면담을 하고 나왔습니다. 저는 다시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시간을 번 셈이 되겠죠. 어떻게 돼서 추석 끝나고 다시 그 현장으로 일을 나가게 됐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이것을 벗어나야만 행복해질 수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물류현장직은 너무 열악하고 힘들었는 데다가 대부분의 물류현장의 급여는 노동강도에 비해 급여가 많지 않았기에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 나름대로 배움을 통해 이곳보다 벗어나려고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현실을 부정하고 저만의 이상을 추구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다시 간다는 제 마음은 긍정적인 마음 반, 부정적인 마음 반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다른 곳보다 마음만은 편한 곳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하류인생도 인생이기에 거기도 거기 나름의 행복이 공존한다는 생각한다는 마음에 그걸로 위안을 삼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그때 당시 저 나름대로만의 생각을 다시 떠올린다면 그 이상을 추구한다는 것은 명예욕이라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현실을 나쁘게 안 좋게 부정한다는 의미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이상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 있어서 동시에 현실을 부정하는 그러하는 사례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제가 말한 대로 지금 여기 있는 회사는 너무 힘들기 때문에 좀 더 근무조건이 좋은 쪽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일명 파랑새 증훈 군이 대표적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더 나은 환경에서 일을 하고자 하는 건 좋지만 여기서도 충분히 좋은 조건이고 만족할 수 있는 조건인데 지금의 현실을 거부하고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보겠다고 하는 것이 계속되면 제 스스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이건 병이라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그렇지만 않은 것이 현실을 부저하고 이상을 좇는다라는 사실은 반드시 부정적이다라는 의미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진정 현실이 잘못되고 바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면 당연히 현실을 부정해야 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이상을 추구한다는 건 어쩌면 더 나은 삶을 위해 개선하는 노력의 일한으로써 비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과 이상추구사이에서 사람들은 저처럼 갈등하고 고민하는 삶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 부정하면서도 이상을 계속 좇아야 하나, 아니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에 만족하면서 이상추구하는 것을 접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저 개인적으로는 요즘 아니 앞으로도 고민하고 계속 생각하는 삶이 이어질 것 같기도 합니다. 한편 따로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없고 현실 속에 갇혀서 무기력하게 삶을 개선하려는 노력 없이 현실을 맹목적으로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은 그 또한 바른 방향이 아닐 것입니다. 삶에 대한 개선이 없어지는 것과 동시에 발전하는 삶이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미래의 이상을 전혀 추구하지 않고 현실속세서만 사는 삶은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유지하면서 계속 더 나은 삶을 위해 한번에 바꾸고 욕심을 내는 것보다 조금씩 조금씩 개선하면서 이상을 위해 점진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어쨌든 이 회사는 다니기로 했으니 제가 처한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글을 써보면서 저의 정체성을 키워나고자 합니다. 그 이전의 회사생활 속에서 저 나름대로의 명확한 목표가 없고 퇴근 후 의지할 데가 없어서 그랬다고는 하지만 저는 지금 글쓰기란 것에 의지를 하면서 소소한 취미가 생겼기 때문에 더 이상 나의 길을 헤매는 그런 정신적 방황은 없다 생각합니다. 과거를 생각하면 너무 비현실적인 저만의 망상에 빠져있지 않았나 생각 듭니다. 이제는 좀 더 제가 사는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저만의 철학을 이 글쓰기에 몰입하고 싶습니다. 현실을 부정적으로 보고 이상만을 쫓는다는 것은 마음이 굉장히 편치 않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다시 거듭말씀드리지만 말 그대로 현실을 부정한다는 것은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빨리 벗어나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으니까 답답하고 스트레스만 받기 쉽습니다. 현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면서 이상을 추구한다기보다는 이 상황 속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고 조금씩 개선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현실 속에 이상추구라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제가 그 회사를 가는 것도 부끄럽지만 재재입사입니다. 사장님도 흔쾌히 받아주는 것도 감사하지만 제가 다시 그렇게 가는 이유도 제가 입으로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일하면서 저 나름대로 보람도 있었고 뭔 가모르게 그 현장이 편했던 것 같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배부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생각하고 여러 회사를 가다 보면 궁합이 잘 맞는 회사가 있고 맞지 않는 회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충분히 할만한데 제가 저 스스로 현실을 부정하고 옥죄면서 쓸데없는 이상추구를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또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철이 없어서 그런지 또 힘들면 힘들다고 하면서 다시 저 나름의 생각을 하면서 도망칠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때 당시와 지금의 사고방식은 전혀 다르다는 것 , 회사 돌아다니다 보니 인생 별것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리고 지금 소소한 취미로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것, 그것이 이제까지의 저 나름대로의 이상추구가 그렇게 쓸모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이제 한 곳에 정착하며 조금은 현실에 순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깨달았다는 것이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쓸데없는 욕심과 같은 이상추구하는 것을 막아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느낀 철학의 한 가지는 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현실을 부정하는데에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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