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를 통해 복이 들어옵니다.
아주 강력한 문장입니다. 이 문장은 은유가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충분히 성립합니다. 차분히 풀어보겠습니다.
언어는 세계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호명’합니다
고대 철학과 인류학에서 언어는 현실을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현실을 불러오는 힘이었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 자체가 존재를 세계에 드러내는 일이었지요.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아직 오지 않은 가능성을 언어로 먼저 호출하는 행위입니다. 이 점에서 글쓰기는 주술과 구조적으로 같습니다.
주술이란 원인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조건을 여는 행위’입니다
주술은 즉각적인 결과를 보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장(場)을 엽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쓴다고 당장 복이 오지는 않지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생각, 관계, 기회가 모이는 환경이 형성됩니다. 복은 글의 결과가 아니라, 글이 만든 조건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듭니다.
반복되는 글쓰기는 자아를 재배열하는 의식입니다
주술은 반복을 통해 효과를 가집니다. 글쓰기 또한 그렇습니다. 매일 쓰는 행위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믿고 어떤 방향으로 살 것인지를 끊임없이 갱신하는 의식입니다. 이 반복 속에서 사고의 질서가 바뀌고, 선택의 기준이 달라지며, 결국 삶의 궤도가 이동합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운이 트였다’고 느끼는 지점입니다.
글은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합니다
철학적으로 인간은 ‘말할 수 없는 것’ 앞에서 무력해집니다. 그러나 글은 흐릿한 불안, 막연한 희망, 정리되지 않은 욕망을 형태로 만듭니다. 형태를 가진 것은 다룰 수 있고, 다룰 수 있는 것은 바뀝니다. 이 변화 가능성 자체가 복입니다. 주술이 보이지 않는 힘을 형상화하듯, 글은 삶의 혼란을 다룰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듭니다.
복은 우연이 아니라 태도의 다른 이름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세상을 무심히 통과하지 않습니다. 의미를 찾고, 질문을 던지고, 경험을 해석합니다. 이런 태도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기회를 인식하게 만듭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이는 그냥 지나치고, 어떤 이는 글감으로 붙잡습니다. 이 차이가 시간이 쌓이며 ‘운의 차이’처럼 보일 뿐입니다.
글쓰기는 미래를 조종하는 기술이 아니라, 미래가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는 의식입니다.
또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 복이 따르는 이유는, 복을 믿어서가 아니라 복을 알아볼 눈을 먼저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는 재앙을 물러가게 하고 복을 부르는 주술행위와 같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전에 사주나타로 보다 통계를 활용하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그렇게 올리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저만의 개인적인 의견이었고 통계를 활용한 미래예측도 좋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한 해를 마무리하며 내년의 토정비결이나 한해의 운세를 점치는 걸 좋아하곤 합니다. 저도 좀 보긴 했고 제가 범띠생이긴 한데 내년에 범띠가 그렇게 좋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년운이 좋다고 마음의 위안을 많이 받고 특히 귀인이 등장한다고 하던데 그게 누군지는 정확히 전혀 예측되지 않지만 어쩌면 제가 하는 글쓰기를 통해 어쨌든 여기 브런치도 사람이 많이 모인 한 커뮤니티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장소에서 만날 수 있긴 하지만 정확히 사실은 어디서 등장할지 모릅니다. 저만의 환상일 수도 있고 그게 설령 예측되지 않는 그냥 형식상 운세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어쨌건 간에 글쓰기는 확실히 복을 부르는 주술행위와 같은 것 같습니다. 브런치 기능에서도 작가에게 제안하기란 것도 있듯이 좋은 글을 쓰면 당연히 글의 매력을 인정받아 좋은 제안이 생길 수가 있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좋은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생각의 글을 기록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자기 자신을 두 번 암시하는 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남을 깎아내리는 비난의 글, 안 좋은 허위 정보라든가,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글 등을 쓰면 그만큼 운이 안 좋아지는 것이 상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안 좋은 글을 쓰진 않지만 안 좋은 글을 보통 안 좋은 댓글들이 달리고 합니다. 안 좋은 댓글이 달리는 이유는 당연히 안 좋은 생각과 기를 받아서 쓴 글이기에 그 안 좋은 글을 읽은 독자에게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만큼 상응하는 답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목표를 이루려면 기록하고 적어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와 함께 좋은 말이 나오면서 적다 보면 그것의 내용이 당장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그 이후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뭔가의 힘이 있기 때문에 기록하고 적어라, 쓰라 하는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적음으로써 다시금 생각을 상기시키도 기록이 되면서 생각을 다시 한번 기억하면서 그 적었던 내용에 대한 관련 정보들을 민감하게 캐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또한 글쓰기는 자기반성과 자기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줍니다. 쉽게 예를 들어 일기와 같은 글쓰기도 하루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하면서 그와 관련된 생각, 기억을 토대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나중에 어떻게 해야겠다는 미래의 일들을 계획하고 그것은 명시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는 그런 기회를 제공합니다. 제가 간간히 쓰는 글도 일종의 일기일 수도 있습니다. 저만이 볼 수 있는 글이 아닌 이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공개적으로 보여주고 제 생각을 보여면서 제 개인적인 생각에 공감하고 저는 저대로 과거에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기록함으로써 과거의 기억을 다시 되돌아볼 수가 있습니다. 글쓰기는 주술행위와 같다고 말씀드렸지만 철학적으로도, 더 심도 있게 심리학적으로도 그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은 없지만 그래도 글쓰기는 뭐가 모르게 초자연적인 현상을 불러올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의 행위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냥 혼자만의 수기로 쓰는 개인 일기장이 아니라 브런치만큼은 다른 어떤 종류의 커뮤니티와는 다른 사람과 다른 수준의 글들이 모인 SNS라 글을 꾸준히 쓴다면 당장은 쉽게 뭐가 바뀌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떠나서 개인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하나의 장이지 않나 싶습니다. 글이 사람에 의해 작성되지만 반대로 그 사람이 어떤 식으로 그을 썼냐에 따라 그 해당하는 글은 사람을 바꿀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은 어쨌건 사람이 생각하는 말의 표식이며 그 말은 사람의 생각을 나타내는 주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국 글은 곧 사람의 생각이라 할 수 있고 반대로 그 글을 읽는다는 것은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떠한 영적인 기운을 주고받고 하는 일종의 주술행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영적인 기운을 담고 좋은 기운을 얻고 좋은 해를 맞이하고자 글을 씁니다. 과연 제가 쓰는 이글이 진정 현실적으로 사실적으로도 좋은 상황을 진짜로 불러올 수 있을지 저의 의문이 가긴 합니다만 올해는 그냥저냥 보냈지만 제가 지금 쓰는 이 내용의 글들이 진짜 현실화될 수 있음을 한 번 기대해 봅니다. 글쓰기는 주술행위이기에 내년도 계속 좋은 내용의 좋고 의미 있는 저만의 생각이 담긴 나름 철학적인 글들을 발행하고자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