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저항하는 패기보다 받아들이는 체념에 가깝습니다

행복은 바꿀수 없는 이상을 꿈꾸는 것보다 바꿀 수 있는 마음에 결정됩니다

by 은명기

제가 요즘 최근에 글제목을 반전적으로 써서 이게 무슨 말이지 하며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을 써왔는데 이건 따로 설명 안 해도 무슨 얘기할지 예상이 가실 것입니다. 저도 나이를 좀 먹어서 그런가 가장 젊은 20대 때와 방황 많이 하던 30대의 그런 제 스스로 생각해도 정말 패기 있게 현실을 좀 많이 바꿔보려는 그런 현실에 저항하는 패기보다는 현실에 순응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체념이란 감정이 더 많이 생겼습니다. 20대 30대 때에는 나름 저만의 큰 꿈이 있었고 욕심도 있었고 마냥 현실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보다 저만의 의지라든가 뭐든 도전을 생각해보고 하는 그런 마음이 더 컸는데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그 반대의 마음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항상 자기 전에 먹는 약을 오랫동안 먹어서 그런지 몰라도 기분이 붕떠서 뭔가 해보려는 도전의 의지보다 지금은 마음이 더 차분해져서 그런 느낌도 없잖아 있는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행복이란 계속 도전해서 실패도 해보고 또 도전하고 또 실패하는 과정 속에 결국 목표를 달성해서 성과를 얻고 그러한 과정에서 행복감을 얻고 또 그런 결과물을 가지고 만족해하는 일련의 과정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저도 그러한 것을 행복의 미덕이라 생각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그런 경험이 업잖아 더러 있었고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보다 그냥 이것 그대로 삶이다란 약간의 저항의식보다 체념의식을 가지고 사는 게 사실입니다. 철학도 어쩌면 현실을 바꿔서 어떻게 개척해서 개선하려는 의식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세계, 세상을 인식해서 해석하는 학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목표를 세우고 패기롭게 노력을 한다는 것 그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것이 일을 함으로써 성공을 가지고 올지 몰라도 행복감을 느끼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행복을 느끼려면 하나의 조건이 성공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 행복을 느끼는 조건을 달성하는 과정에 있어서 행복이 아닌 고통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과 성공의 관계는 좀 아이러니하지 않는가란 관계도 있고 성공을 했다고 해서 행복이 지속이 될 거란 보장도 없습니다. 단지 성공을 하고 나서 일시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들뿐 그 감정이 얼마동안 가냐 좀 더 오랫동안 가냐 잠시잠깐뿐이냐란 시간의 문제일 뿐 그렇게 좀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성공은 단지 행복감이란 감정을 느껴줄 뿐 진정한 행복의 가치를 주는 게 아니다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회사를 이직하고 싶다, 좀 더 나은 직장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이 더 크고 한데 현실적으로는 지금 당장 그런 처지가 되지 않고 그럴 이직할 여건이 안되고 조건이 안된다 싶을 때 마음이 굴뚝같이 옮기고 싶은 현실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런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생길 때 제가 가지는 불편한 마음은 어떻게 스스로 제어를 할 것이냐라는 문제가 생깁니다. 현실이 받쳐주지도 않는다면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런 불편한 마음을 다시 스스로 재조정해서 제가 이직했을 때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해서 이직할 마음이 안 들도록 저 스스로 통제하는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현실을 바꾸려 해서 바꾸면 좋지만 그러한 상황이 못돼서 마음이 괴로울 수가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현실대신에 고통스러운 마음을 현실에 맞춰주는 상황에 맞게 마음을 바꾸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세상이 정의롭지 못하면 고통이 있겠지만 누군가의 희생으로 세상을 바꾸려 해야 하는 예외가 있지만 다수의 많은 상황과 현실의 기준은 절대적인 게 없다고 생각하기에 인식을 바꾸고 생각을 얼마만큼 바꿈에 따라서 현실에 만족하면서 행복을 느낄지 아니면 비현실적인 것만을 꿈꾸면서 불행을 느낄지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저도 예전에 꿈만 꾸고 정작 현실을 바꾸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많이 있지만 지금은 왠지 저도 현실에 조금씩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삶을 사니까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세상에 대한 인식을 무조건 체념하는 쪽으로 가지고 가야 하고 현실에 저항하는 그런 패기를 저버려야 한다는 그런 인식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현실을 바꾸면 성과가 생기고 현실을 바꿈에 따라 개선시기고 앞으로 더 나아가 단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게 생기기 때문에 그런 적극적, 진취적 사고방식은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그런 현실을 바꿀 수 없을 때 생기는 마음의 불편함은 적어도 자신 스스로 책임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상과 현실사이의 생기는 괴리감은 계속된 저항의 식이 아니라 현실을 인정하는 체념의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철학 아이디어라고 하긴 뭐해도 저의 제가 느낀 나름의 생각도 마음이 차부하고 안정된 상태에서 좋은 생각이 나오지 마음이 불편한 상황에서 좋은 말이나 생각이 나올 리가 없습니다. 좀 웃기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저도 살아보니까 마음이 편해야 모든 일이 잘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이 저기 가있고 현실이 여기 있으면 현실에 집중도 잘 안되고 되려 일을 더 망처 버리는 꼴과 같습니다. 행복이란 이상과 현실이 다른 게 아니라 이상과 현실이 일치할수록 행복감을 더 느끼는 것 같습니다. 거기서도 물론 예외는 있는데 현실이 너무 암울하거나 절망적일 때 이상만큼은 현실을 벗어나 희망을 말해주고 항상 그것을 잊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더 욕심을 부려 쓸데없는 허황된 이상을 꿈꾸거나 욕망을 가질수록 지금의 있는 현실은 괴로워질 수 있습니다. 희망을 가진다는 것과 욕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누는 기준도 마찬가지 마음에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이 괴로우면 욕심이고 괴롭지 않으면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저도 그 말을 제 마음의 멘토 법륜스님한테 들었습니다. 현실을 받아일 줄 알면 마음이 편한다는 그런 개념도 다 불교에서 나온 것이고 다른 철학자들도 그렇게 예시를 들었습니다. 단지 제가 글에서 말씀드린 건 저도 그런 마음이 들었고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다른 분들도 이런 마음과 생각이 든 분이 많이 계실 것이고 어떻게 보면 글제목을 그럴듯하게 지었고 내용은 상투적이지만 이 글을 읽고 제가 무슨 얘기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셨을 가라 생각합니다. 다시금 행복이란 반드시 성공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며 현실적 조건보다 자기가 어떤 마음을 갖고 사냐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행복의 개념은 현실을 바꾸고 저항하려는 패기보다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체념에 가깝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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