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현실 사이에서 피어난 이야기
비가 내린 2008년 어느 여름 날,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은호(구교환)와 정원(문가영)은 처음 만난다. 그리고 10년 뒤 태풍이 휘몰아친 호찌민에서 두 사람은 재회한다. 언제나 그들의 만남과 이별에는 비가 온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처럼 사랑이 찾아오고, 슬며시 옷깃을 적시듯 마음속에 사랑이 스며들며, 강렬한 사랑의 잔상을 남긴다.
영화 <만약에 우리>는 기억 저편에 남아있는 애틋하고 아련한 첫사랑을 꺼낸다. 마음 한편이 시큰해지는 그들의 서사는 관객들의 마음을 일렁이게 만들었다.
이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집’. 그들의 사랑은 서로의 집이 되어주는 것이었다. 특히 정원에게 집은 더욱 애착이 가는 존재였다. 첫 만남 때 두 사람이 함께 간 고향에서 그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은호와 달리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자란 정원에겐 가족이 있는 고향 집이 없었다. 보육원에 방문해 원장님을 찾지만 만나지 못한다. 원장님은 휴가차 ‘진짜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정원에게 보육원은 ‘진짜 집’이 될 수 없음을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원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나의 집을 원했다. 몸과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보금자리를 그렸다.
하지만 정작 서울에서 정원이 사는 곳은 햇살이 손바닥만큼 들어오는 고시원이었다. 반면 은호의 자취방은 큰 창 넘어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곳이었다. 햇살은 ‘사랑이자 희망’, 햇살이 넘치는 집은 ‘따뜻한 사랑과 희망이 있는 곳’을 의미한다. 작은 빛을 보며 외롭게 살아온 정원에게 은호는 커다란 햇살을 안겨주었다. 비로소 정처 없이 떠돌던 정원에게 정착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생긴다. 은호가 있고, 은호와 함께 할 수 있는 곳. 기꺼이 은호는 정원의 집이 되어주었다.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함께 살게 된 두 사람. 그곳은 행복에 비례해 화사한 빛깔로 메워진다. 작고 낡은 빨간색 1인용 소파처럼 가장 가진 것 없는 초라한 시절에 만났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진심 어린 사랑을 꽃피운다. 은호는 정원의 외로움과 상처를 보듬어주고, 그런 그를 정원은 아낌없이 사랑한다.
하지만 조금씩 사랑의 빛깔을 잃어갈 때쯤, 이사 간 집도 색채가 사라져 간다. 사랑의 증표였던 소파는 집 문턱을 넘지 못해 버려진다. 정원에게 햇살을 선물하던 은호는 커튼을 닫아버리고, 정원을 향하던 선풍기는 등을 돌린다. 그렇게 어두컴컴해진 집은 더 이상 사랑과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사랑이 빛을 잃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냉혹한 현실의 벽이었다. 은호와 정원은 각자의 꿈이 있다. 은호는 게임 개발로 큰돈을 버는 것, 정원은 자신의 집을 짓는 건축가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각박한 사회에서 꿈을 이루기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이 영화는 청춘의 사랑과 함께 청년의 고충을 함께 이야기한다. 꿈과 현실의 간극은 지금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실제 청년 실업률은 계속해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얼어붙은 채용 시장은 그동안 쌓아온 스펙을 무력하게 만든다.
청년들의 구직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자립을 하는데도 어려움이 함께 뒤따랐다. 특히 은호와 정원처럼 서울로 상경한 청년들은 이를 더욱 체감할 것이다. 지방에 사는 취준생들은 일자리가 몰린 서울로 올라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울에서 태어난 게 스펙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울살이는 만만치 않다. 서울에서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자취방을 구하는 건 하늘에 별 따기이다. 아직 경제적 기반이 잡히지 않은 청년들의 입장에서 서울 집값은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이 영화는 서울살이의 어려움뿐만 아니라 직장 내 문제도 함께 시사한다. 극중 은호는 현실과 타협하여 돈을 벌기 위해 작은 회사에 입사한다. 회사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또다시 넘어야 할 산이 나타난다. 직장 내 괴롭힘은 은호를 점차 말라 가게 만들었다. 도를 넘는 직장 상사의 괴롭힘은 폭력으로 이어지면서 은호는 퇴사를 결심한다.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해도 직장에서 살아남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갔던 순수한 마음이 조금씩 퇴색된 현실을 마주했을 때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열심히 불태웠던 열정은 사그라들어 없어지고 만다. 이전과 달라진 현실에 은호는 감정이 메마르고 정원과의 관계를 해친다. 너보다 나를 생각할 때 끝나는 게 사랑이다. 그렇게 은호는 정원을 놓친다.
각자의 길을 걷게 된 두 사람. 은호와 정원은 잠시 접어둔 꿈을 다시 펼친다. 그리고 끝내 이룬다. 이별 앞에서 좌절하기보단 다시 일어서는 용기를 택한 두 사람의 모습이 사랑의 끝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별이 나의 못난 부분을 반성하게 만들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해준다. 지나간 사랑은 추억으로 남기고 아픈 이별은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아 더 나은 내가 되기를 이 영화는 말한다.
• 본 글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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