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의 중심에는 문학이 있었다 - 팬레터

문학으로 드러내는 내면과 의지

by 온정

한국 창작 뮤지컬의 명성을 보여준 작품 <팬레터>가 10주년을 맞이했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당대 문인들이 모여 결성한 ‘구인회’의 일화를 모티브로 한 팩션 뮤지컬이다. 우리의 이야기로 대만, 일본, 중국 등 세계로 뻗어 나가며 월드 클래스 뮤지컬로 자리매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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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이야기는 일제 통치 하에 있던 1930년대 경성에서 시작된다. 극에서도 구인화와 같이 문인들의 모임인 ‘칠인회’가 만들어진다. 그 주축에는 김해진, 이윤, 이태준, 김수남, 김환태가 있다. 그들을 모두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삼았다. 김해진은 소설가 ‘김유정’, 이윤은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상’, 이태준은 소설가 ‘이태준’, 김수남은 시인 ‘김기림’, 김환태는 평론가 ‘김환태’에 영감을 받은 인물이다. 그리고 김해진을 동경하는 작가 지망생이자 칠인회에서 급사로 일하는 ‘정세훈’이 가상의 인물로 등장한다.


극의 핵심적인 사건은 세훈이 ‘히카루’라는 필명으로 해진에게 팬레터를 보내며 펼쳐진다. 편지에 담긴 문학적 감수성에 반한 해진은 히카루를 운명의 상대로 여긴다. 이를 알게 된 세훈은 자신이 히카루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세훈의 옆을 맴돌며 지켜본다. 그러던 중 페결핵을 앓아온 해진의 병세가 더욱 악화되는데, 그 중심엔 ‘히카루’가 있다. 두 사람이 편지를 주고받을수록 히카루를 향한 해진의 마음은 더욱 깊어져 간다. 이를 막기 위해 세훈은 편지를 보내지 않고, 해진은 애달프게 오지 않는 편지를 기다린다. 커져가는 해진의 마음은 히카루에 대한 집착으로 변해간다.





욕망과 욕심, 거짓으로 흔들린 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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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정세훈과 히카루라는 두 개의 자아 사이에서 갈등과 타협이 오가는 과정을 그린다. 해진에게 보여준 히카루의 소설이 등단에 성공하며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이때부터 히카루의 자아는 본래 자아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한다. 히카루는 해진에게 공동 집필로 소설을 쓰자고 제안하고, 급격히 건강이 쇠약해진 해진이 펜을 놓지 못하도록 만든다. 결국 건강을 돌보지 못한 해진은 죽음에 이르고 만다.


해진과 세훈, 히카루의 이야기는 한 인간의 욕심이 어디까지 치닫는지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욕망이 이기적인 욕심으로 변질되고, 작은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아 걷잡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리고 갈피를 잡지 못한 혼란스러운 감정은 정세훈이라는 자아를 흔들었다. 중심이 되어야 하는 본래의 자아가 분열하고 폭주하면서 자신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해치게 되었다.


이후 세훈은 이윤을 통해 해진의 편지를 읽고 그의 진심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해진을 위한 행동이라 생각했던 모든 것이 결국은 자신을 위한 행동이었음을 깨닫는다.





고유한 정체성을 지키는 문학적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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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루를 향한 해진의 마음과 해진을 향한 세훈의 마음 모두 ‘문학’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배경인 칠인회와 팬레터도 문학이 있었기에 존재했다. 뮤지컬 <팬레터>는 문학을 중심으로 내면의 변화를 풀어내 문학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주었다.


작품 속 문학은 일제로부터 우리의 것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의지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빼앗기며 한글을 사용하는 것조차 금지되었던 그 시절에 글을 쓰고 널리 알리는 일은 목숨을 건 행위나 다름없었다. 누군가는 그것이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되겠냐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이는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문학적 저항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자유를 잃지 않기 위해서, 고유한 우리말을 잊지 않기 위해서 문학으로 이 마음을 담아냈다.


이처럼 뮤지컬 <팬레터>는 서정적인 감성과 강인함이 존재하는 작품이다. 나긋하게 읊조리는 글이 문학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굳건히 한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숭고한 정신에 감탄했다. 이는 문학을 사랑하는 문인들이 우리말의 가치를 빛나게 하며 예술의 진가를 발휘했기에 가능했다.


굴곡 있는 역사 속에서 끝까지 우리말을 지켜왔기에 지금까지 문학이 존재하고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그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 뮤지컬 <팬레터>에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 본 글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원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9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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