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을 평범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일본 영화는 참 오묘하다. 어딘가 특이하고 엉뚱하지만 계속 보게 된다. 웅장한 스케일의 할리우드 영화와 달리 소박함이 묻어나지만, 일본 영화는 평범함을 특별하게 바꾸는 독보적인 색깔을 품고 있다. 비슷한 일상의 리듬을 다양하게 변주하고 그 속에 숨은 가치를 뽑아낸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더욱 값지게 만들어 준다.
이번에 소개할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는 평범함의 매력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가는 23살 주부 ‘스즈메’.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 밀린 집안일을 하고 거북이 밥을 챙기는 단순한 삶을 살아간다. 매일 걸려오는 남편의 전화는 오직 거북이의 밥 걱정뿐이다.
거북이보다 못한 그녀의 존재감은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만남을 약속한 친구는 2시간이나 늦게 도착하고, 공중 화장실에서 갑자기 나타난 아주머니는 그녀를 밀치고 손을 씻는다. 점차 희미해지는 자신의 존재감은 마음 한켠에 일탈의 싹을 틔우게 했다.
스즈메는 즉흥적으로 파마를 하며 작은 일탈을 시도하지만 여전히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다. 그 순간, 우연히 길가에서 발견한 스파이 모집 공고가 떠오른다. 스파이 지원자로 면접을 보게 된 그녀는 단번에 합격한다. 지극히 평범한 그녀의 모습이 합격 이유였다. 아무것도 아닌 평범함이 능력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는 지금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 이보다 더 어울리는 임무도 없다. 이제는 활동 자금 5천만 원까지 받았으니 정식 스파이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조용히 잠복에 임하면 된다.
그 후 스즈메는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낸다. 단 하나 달라진 건 활기를 되찾은 마음. 스파이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로 모든 행동이 두근거렸다. 똑같은 삶도 대하는 태도에 맞춰 바뀌어 갔다.
스즈메가 자신을 평범하다고 여기게 된 데는 친구 ‘쿠자쿠’의 영향이 있었다. 같은 날 같은 곳에서 태어난 스즈메와 쿠자쿠는 모든 게 정반대였다. 무엇 하나 잘 하는 게 없는 스즈메와 다르게 쿠자쿠는 무엇이든 척척해냈다. 마치 참새 사이에서 눈에 띄는 화려한 공작처럼 쿠자쿠는 센스 있고 화려한 사람이었다.
스즈메는 그런 쿠자쿠의 모습과 엉성하고 촌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비교했다. 하지만 정작 쿠자쿠는 스즈메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스즈메가 부러워. 스즈메에 비하면 내 인생은 시시한 것 같아."
"이것저것 많이 하게 되면 살아가는 의미를 알 수 없게 돼버려."
결국 평범함은 상대적이다. 자신이 가진 것은 익숙한 나머지 평범하게 느껴지지만 가지지 못한 것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나와 다른 모습에 이끌리고 동경하게 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최근에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나에겐 익숙하다 못해 지루한 환경이 그 친구에겐 새롭고 호기심 가득한 곳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일상이 당연한 게 아님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이처럼 평범함의 기준은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고,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지금 내 삶이 나에게는 보잘것없게 느껴질지라도 누군가에겐 그 삶이 원하는 것일 수 있다.
이 영화는 평범함을 평범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너무 평범해서 반대로 비범한 거 아냐?", 스즈메를 합격시킨 스파이 동료의 말처럼 평범함을 남다른 존재로 바라본다.
스즈메와 함께 하는 스파이 동료들은 모두 여느 사람들과 같이 평범하게 살아간다. 스즈메가 가장 좋아하는 라멘 가게 주인도 알고 보니 스파이였을 정도로 말이다. 그는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은 라멘 맛 덕분에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사실 아주 맛있는 라멘을 만들 수 있는 능력자였지만 이를 숨기고 어중간한 라멘을 만들어 왔다.
이를 두고 한 스파이 동료는 이렇게 말했다. "맛있게 하는 건 어쩌면 간단한 거야."
그렇다. 그들은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눈에 띄지 않는 어중간한 맛을 유지하는 것이 어렵듯 굴곡 없이 평범한 삶을 지키는 일도 쉽지 않다. 어쩌면 삶이 무료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건 큰 풍파 없이 잔잔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그런 평범한 삶은 결코 부족하거나 바뀌어야 할 삶이 아니다. 영화는 육지에서 느린 거북이도 바다에서는 빠르게 유영하듯 평범함 속에도 뜻밖의 비범함이 숨어 있음을 보여준다.
※ 본 글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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