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이라는 오명

지워진 유럽의 심장

by 스카웃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유럽을 이야기할 때 너무도 자연스럽게 '서구'와 '동유럽'이라는 이분법을 꺼내 든다. 하지만 이 견고해 보이는 구분은 의외로 역사가 짧고, 꽤나 인위적이다.


우리가 동경하는 '유럽'의 이미지에는 늘 익숙한 것들이 따라붙는다. 클래식 음악의 선율, 중세의 유산이 새겨진 도시들, 문학과 철학의 오랜 전통.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 찬란한 문화가 태동한 공간 중 상당수가 오늘날 '동유럽'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이름 위에는 종종 '가난과 우울', 혹은 '실패한 변방'이라는 차가운 낙인이 새겨져 있다. 이쯤 되면 이는 단순한 지리 구분이 아니다.


프레데리크 쇼팽이라는 이름을 떠올려보자. 우리는 파리의 화려한 살롱에서 연주하는 그를 상상하지만, 그의 악보 행간에는 폴란드 평원의 바람 소리와 조국을 잃은 망명객의 고독이 흐르고 있다. 프란츠 카프카 역시 그렇다. 체코 프라하의 좁은 골목에서 탄생한 그의 사유는 유럽 지성사의 절정이었지만, 우리는 으레 그를 '동구의 기묘한 작가'쯤으로 치부하곤 한다.


사실 '동유럽'이라는 말은 그 정체부터가 굉장히 모호하다. 폴란드와 헝가리를 말하다가도 어느새 발칸반도와 옛 소련 지역까지 한데 뒤섞인다. 발칸반도 하나만 해도 어느 나라까지를 그 안에 포함시킬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동유럽이 어디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 힘든 이유는 간단하다. 이 단어가 애초에 지리적 개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앞서 나간 국가들이 자신을 유럽의 '중심'으로 선언하면서, 철의 장막(Iron Curtain) 너머에 남겨진 이들을 편의적으로 묶어 부른 이름에 가깝다. 그 저편의 사람들은 어느 날 아침 눈을 떴더니, 자신들이 갑자기 '동유럽'에 속하게 되어버렸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파고든 사람이 있다. 체코 출신의 작가 밀란 쿤데라는 1984년 에세이 *중부유럽의 비극(The Tragedy of Central Europe)*에서, 폴란드·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가 소련의 힘에 의해 억지로 '동쪽'으로 끌려갔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이 나라들은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서유럽과 한 뿌리를 가진 중부유럽이었고, '동유럽'이라는 이름은 지리가 아닌 정치가 만들어낸 허구였다. 쿤데라는 서방을 향해 묻는다. 당신들이 그토록 아끼는 유럽 문화의 많은 유산들이 사실은 지금 당신들이 외면하고 있는 바로 그 땅에서 자라났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이러한 '이름 붙이기'는 독일의 '미텔오이로파(Mitteleuropa, 중부유럽)'라는 단어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스스로를 유럽의 중심에 세우려는 자의식의 표현이다. 하지만 그 바로 옆 나라들부터가 여전히 '동구'라는 모호한 범주에 머물러 있다. 이는 단순한 명칭 문제가 아니라, 누가 중심이고 누가 주변인가를 가르는 보이지 않는 서열이다. 물론 '중부유럽'이라는 대안도 완전히 중립적이지는 않다. 미텔오이로파 개념 자체가 역사적으로 독일·오스트리아 중심의 문화 패권 담론과 연결된 적이 있고, 발칸의 여러 나라들은 이 범주에도 여전히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냉전의 정치가 덧씌운 낙인을 걷어내고, 이 땅의 역사적 무게를 되돌려 준다는 점에서 '중부유럽'이라는 이름은 유효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다만 이 '중부'라는 자각이 발칸반도나 더 동쪽의 나라들을 또 다른 변방으로 밀어내는 새로운 배제의 언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한국에서 이 왜곡은 유독 강하게 작동한다. 분단 이후 대륙과 단절된 채 사실상 '섬'처럼 살아온 우리에게, 유럽의 중부를 입체적으로 상상할 여유는 없었다. 교과서는 유럽사를 서유럽 중심으로 서술해 왔고, 여행사에서도 '동유럽 패키지'는 늘 서유럽의 부록처럼 취급되어 왔다. 우리는 프라하의 낭만적인 야경과 부다페스트의 고풍스러운 거리에 열광하지만, 그 이면에는 '서유럽보다 저렴한 물가'를 매력으로 소비하거나 그들이 겪은 역사의 상흔을 값싼 낭만으로 치환해버리는 무의식이 깔려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동유럽'이라는 이름은 어느새 '공산권'과 '냉전'이라는 필터로 굳어버렸다. 유럽의 허리이자 수많은 사상의 교차로였던 역사의 땅은 그 뒤로 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제는 그들을 제 이름으로 불러주어야 한다. '동유럽'이 아니라 '중부유럽(Central Europe)'으로. 이는 냉전의 장막이 드리워지기 전, 빈과 바르샤바와 부다페스트가 하나의 문화적 맥으로 박동하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이다. 쿤데라의 질문은 지금 한국의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닿는다. 이름을 바로 부르는 순간, 비로소 그들이 동쪽의 변방이 아니라 유럽의 심장 중 하나였음을 볼 수 있게 된다.


타자를 제대로 바라보는 일은 결국 우리 자신의 세계관을 넓히는 일이다. 단절됐던 우리의 시선이 비로소 장벽을 넘어 세계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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