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외인들에 대한 말말말 (1)

왜 페디는 더 위력적으로 기억될까

by 스카웃

2025년 시즌이 막을 내리고 각종 시상식을 휩쓴 선수는 단연 코디 폰세였다. 하지만 야구팬들의 대화 속에서는 끊임없이 한 가지 질문이 맴돌았다. "폰세가 2023년 페디를 넘었나?"

기록표는 폰세의 압도적인 우위를 가리키지만, 체감상으로는 여전히 페디를 '역대급 에이스'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2025년 코디 폰세는 말 그대로 환상적인 시즌을 보냈다. 자신의 우상인 류현진과 같은 팀에서 뛰며 그가 보유했던 정규이닝 최다 탈삼진(17개) 기록을 경신했고, 선동열의 역대 한 경기 최다 18 탈삼진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리그 역대 최다 탈삼진을 비롯해 평균자책점·다승 부문 1위와 MVP까지 석권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놓친 것을 제외하면 더 바랄 것이 없는 완벽한 시즌이었다.


그럼에도 왜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페디를 기억하는 걸까?

실제 스탯을 비교해 보면 페디가 앞서는 부문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지표에서 폰세가 근소하게, 혹은 꽤 큰 차이로 앞서며, 탈삼진 부문에서는 폰세가 압도적이다. WAR을 비롯한 세부 지표 역시 폰세의 손을 들어준다. 이 역설적인 체감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마운드에 섰던 '환경'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스위퍼, KBO 마운드의 생태계를 흔들다

페디는 KBO 입성 전 오프시즌 동안 미국의 아카데미에서 스위퍼를 연마했다. 공의 궤적과 무브먼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KBO 공인구는 그에게 안성맞춤이었고, 처음 접하는 낯선 변화구에 리그의 교타자들마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MLB에서는 숙련도가 낮아 거의 던지지 않던 체인지업도 한국 무대에서 요긴하게 섞어 쓰며, 주 무기인 투심패스트볼의 상대적 구종 가치를 한층 끌어올렸다.


ABS라는 변수: 로봇 심판이 없던 시절의 지배자

페디의 주 구종인 투심패스트볼과 결정구 스위퍼는 공통적으로 궤적의 변화가 크다는 특징이 있다. 요즘처럼 스트라이크 존 경계를 걸쳐 나가는 공에 자동으로 스트라이크 판정이 내려지는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 환경이었다면 페디의 구종 가치는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반면 ABS가 도입되지 않았던 당시, 수준 높은 포수 프레이밍 없이는 코너 판정을 받기 쉽지 않았음에도 압도적인 성적을 냈다는 점이 페디의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기복이 만들어낸 역설: 아웃라이어가 남긴 선명한 인상

시즌 내내 안정적이었던 폰세와 달리, 페디는 한국의 혹서기에 적응하지 못하며 기복을 보였다. 1점대 평균자책점을 유지하다가 한여름 두세 경기에서 집중 난타를 당해 조기 강판되었고, 초가을부터 폼을 회복하며 다시 잇달아 호투를 펼쳤다. 시즌 마지막 KIA전에서는 1점대 평균자책점까지 아웃카운트 하나만을 남겨두고 강습 타구에 전완부를 맞고 강판되어, 1.99에서 반올림된 최종 2.00의 평균자책점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역설적으로 극단적으로 부진했던 여름 몇 경기(아웃라이어)를 걷어내면, 오히려 대부분의 등판에서 페디가 남긴 압도적인 구위가 뇌리에 훨씬 더 선명하게 각인되었다는 뜻이다.


폰세의 로테이션과 페디의 정면 돌파

폰세는 여러 사정으로 인해 로테이션을 이탈하며 소위 '표적등판' 논란에 휩싸였다. 2025 시즌 팀 OPS가 높았던 KIA·NC·삼성·LG를 상대로 등판 횟수가 유의미하게 적었던 것. 반면 키움·KT처럼 팀 OPS가 낮은 팀을 상대로 가장 많이 나와 이닝을 소화했다. 반면 페디는 그해 우승팀 LG를 비롯한 강타선들을 상대로도 꾸준한 면모를 보였고, 대량 실점하며 강판된 경기는 오히려 타선이 약했던 롯데전 정도에 불과했다. 강팀을 상대로 물러서지 않았던 페디의 등판 일지가 팬들에게 더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을 가능성이 크다.


수비 실책의 이면: 기록되지 않은 헌신들

2023 시즌 NC는 팀 최다 실책 2위를 기록한 반면, 2025 시즌 한화는 팀 실책이 리그 최저였다. 이는 페디가 폰세에 비해 이닝 중 더 많은 위기 상황을 자력으로 돌파해야 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단순 비교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NC의 유격수 김주원은 최다 실책 유격수였지만 동시에 리그 최상급의 수비 범위를 자랑했고, DER(인플레이 타구 처리율)도 유격수 1위, 전체 야수 중 2위에 오를 만큼 뛰어났다. 넓은 수비 범위 덕분에 건져낸 타구가 많은 만큼, 실책으로 기록된 타구도 비례해서 많았다는 역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상이 팬들이 폰세의 기록 앞에서도 여전히 페디를 소환하는 이유일 것이다. 물론 두 선수가 자국 리그에서 어떤 기량을 보여줄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폰세는 페디보다 어린 데다 한국 입성 전 구속 향상까지 이뤄냈으니, MLB에서 더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는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반면 움직임이 큰 구종을 주력으로 삼았던 페디는, 상대적으로 회전수가 낮은 MLB 공인구와는 궁합이 맞지 않을 수 있다. 그가 한국에 와서 비로소 스위퍼와 체인지업을 완성형에 가깝게 구사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KBO 공인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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