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인이 흔드는 토종 에이스의 자리
폰세와 페디의 눈부신 활약은 자연스럽게 KBO 리그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화두로 이어진다. 바로 리그를 호령하는 외국인 에이스들의 존재감이다. KBO에서 외국인 선수가 '생태계 교란종'이라는 말을 듣기 시작한 것은, 타자로는 에릭 테임즈, 투수로는 에릭 페디 이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각 구단의 스카우팅 역량 강화와 함께 KBO 리그 자체의 브랜드 가치 상승이 크게 작용했다.
메릴 켈리, 에릭 테임즈 등 역수출 신화부터 NC 다이노스가 드류 루친스키, 에릭 페디, 카일 하트를 3년 연속 MLB로 금의환향시킨 사례까지, KBO가 미국 야구계에 하나의 훌륭한 검증 무대로 자리 잡으면서 미국 유망주들이 굳이 고된 마이너리그 생활을 감내하면서까지 MLB 입성만을 고집할 이유가 줄어들었다. 마이너리그 대비 경기 수준은 다소 낮을지언정, 그에 걸맞은 대우와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무대다. 한국에서 MVP를 수상하고 이후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다 다시 돌아온 사례들을 보더라도, 미국 선수들에게 KBO는 충분히 솔깃한 선택지다.
외국인 선수들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리그 전반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크게 기여하지만, 이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끊이지 않는다. 국내 선발 투수들이 성장할 자리를 빼앗는다는 우려와, 오히려 외국인 선수를 더 적극적으로 영입해 내부 경쟁을 심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선다.
물론 이들 때문에 선발 기회를 얻지 못하는 국내 투수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기회를 받더라도 1군 선발로서 규정 이닝을 채우지 못하는 선수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많은 팀들이 4·5 선발 자리 안정화에 여전히 애를 먹고 있고, '선발 왕국'이라 불릴 만한 팀은 리그 전체를 통틀어도 손에 꼽는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불펜이나 롱릴리프 등 마운드 어딘가에는 실력 있는 토종 투수의 자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팀을 대표하는 토종 선발 투수나 타자들이 연봉에서는 외국인 선수를 앞서면서도 정작 선발 순서나 타순에서 밀리는 현실은 다소 씁쓸하다. 그러나 이들이 가성비 높게 리그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2026 시즌을 앞두고 대만·일본·호주 리그 출신 선수들을 흡수하는 아시아 쿼터제 도입도 이 같은 맥락이다. 마이너리그 출신 1·2 선발, 아시아 타국 리그 출신 3 선발, 그리고 국내 토종 투수들이 4·5 선발을 나누는 구도가 머지않아 대부분 팀의 큰 그림이 될 것이다.
'토종 에이스'라는 칭호를 가진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이 현실에 쉽게 수긍하지는 않겠지만, 선발이 조기 강판되며 경기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장면은 줄어들 것이다. 평균적인 경기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점에서 팬들에게는 분명 반길 만한 변화다. 당장 국내 선발 투수들이 설 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역으로 보면 애초에 그 자리를 온전히 감당할 선수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뼈아픈 진단이기도 하다. 이는 또한 외국인 선수들의 유입으로 국내 선수가 성장할 기회를 뺏겨 결국 한국 야구의 수준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반가운 소식은 10개 구단 체제 도입, 외국인 선수들의 수준 상승 등이 있고 나서 역대급 흥행 가도를 달리는 KBO 리그의 인구 대비 관중 동원력이 2025년을 기점으로 일본 NPB를 처음으로 앞질렀다는 것이다. 2025년 KBO 리그는 약 5,170만 명의 인구 중 12,312,519명의 관중을 동원하며 23.8%의 인구 대비 관중 비율을 기록했다. 약 1억 2,340만 명의 인구 중 27,040,286명(21.9%)을 동원한 야구 강국 일본을 넘어선 쾌거다. 지난 WBC 우승으로 야구 열기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일본 분위기를 고려할 때 이는 놀라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수치로 증명된 이 뜨거운 흥행 열기를 바탕으로 더 많은 어린이들이 야구 선수를 꿈꾸고, 이에 발맞춰 야구부를 운영하는 학교가 다시 늘어난다면 어떨까. 지금 외국인 에이스들이 밟고 있는 이 그라운드는 훗날 또 다른 '한국 야구 황금세대'를 맞이하기 위한 기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