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스마트폰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 관심사, 열등감, 부러움, 질투, 좌절, 분노, 금지된 열망, 처연한 수치심 등. 내 안의 욕망과 감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내가 무엇을 검색했는지.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어떤 영상을 시청했는지.
인공지능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무엇에 '좋아요'와 '싫어요'를 눌렀는지.
어떤 내용을 정리해서 자료화했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글을 남겼는지...
나는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화면에 온정신을 구겨 넣고 오래도록 머문다. 그곳에 삶의 흔적을 남기려 한다.
가장 소중한 건 내가 남긴 글에 대한 반응이다.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양방향 소통이 잠시나마 외로움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외롭지 않으려면 글을 써서 전시해야 한다.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상관없다.
고백하건대, 나는 관종이 맞다. 절절히 애정을 갈구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조금 다른 행태를 취한다. 내 안의 유약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다. 나는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들에게 즐겁고, 유쾌하고, 다정하고, 굳건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남겨지고 싶다.
이렇듯 나는 내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기에 외로울 수밖에 없다. 마음 깊은 곳에는 아이처럼 안겨 귀여움 받고 싶은 갈망이 있음을 안다. 하지만 갈망은 갈망일 뿐, 현실은 냉혹하다.
나는 재미있어야 하고, 따뜻해야 하고, 지적으로 보이고 싶다. 내가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은 수치고, 타인이 나에게 의존하는 것은 기쁨이다. 매우 매우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안다.
현재로서는 이것이 약한 나를 숨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 아직 다른 방법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Freud' 선생의 유명한 말처럼, 억압은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온라인에서의 나는 유약하고 여성스러운 에겐남의 모습을 쉽사리 드러낸다. 어쩌면 이 모습이 진짜 나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비록 내가 부정하고픈 '나'지만 말이다.
정말로 들키고 싶지 않은 과거는 정신이 온전한 이상 쓰지 않을 것이다. 내 방어 공장은 꿈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으니까. 세상에 드러내도 안전하다고 판단한 내용이 내가 쓸 수 있는 글의 전부일 것이다.
내 남은 삶을 올바른 정신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든 외로움을 지연시켜야 한다.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가 생명을 연장해 주었으니, 현대 의학이 선사한 이 빛나는 보상을 허무하게 날리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써야만 한다.
공모전 당선, 책 출간, 작가로서 인정받기. 이런 것들은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다. 살기 위해 쓰고, 나약함을 드러내고, 사람들과 글로 대화 나누는 것이 지금 나에겐 가장 중요한 가치다.
세상이 규정하는 청춘의 시간은 어느덧 지나가 버렸지만, 지금도 내 마음은 미숙했던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미숙함은 나와 타인에게 상처를 남긴다. 그 시간을 통과하면 조금 성숙해지고, 상처도 덜 남긴다. 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아프고, 유치하고, 바보 같던 그때 그곳에 머물러있다.
나는 세상이 정한 평균적 시각으로 보면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이다. <평균은 허구>라는 말로 합리화하거나 위로받고 싶지 않다. 사실은 사실이니까.
욕심은 부담을 키우고, 부담은 글을 못 쓰게 한다. 야구 선수들이 압박감과 스트레스로 공을 던지지 못하는 입스(yips) 상태에 놓인 것과 같다.
브런치 북 제목처럼, 나는 짧디 짧은 청춘 이야기를 써보려 한다. 힘을 빼고, 분량에 구애받지 않고, 완성도에 목매지 않고, 문장에 휘둘리지 않고, 메시지에 집착하지 않고, 그저 써지는 대로 연재하려 한다.
앞으로 연재할 이야기들은 팩트도 아니고 팩션도 아니다. 단편으로 마무리되는 짧은 픽션이 될 것이다. 내가 경험한 젊은 날의 순수하고 미숙한 감정들을 서사 속에 은폐하여 드러내고 싶다.
내용은 허구일지라도 감정은 진실인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외롭지 않기 위해,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