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한 사랑(1)

<두 번째 이야기>

by 김빗


우리 동아리에는 모두가 극혐하는 남자 선배가 있다. 후배들은 그 선배를 두려워했다. 동기들은 그 선배를 기피했다. 더 윗기수 선배들은 그를 무시했다.


그 선배는 나와 한 학년 차이이자, 한 기수 차이였다. 하지만 나는 그 선배의 실물을 얼마 전에 처음 보았다. 내가 신입생으로 입학했을 때 그는 휴학했고, 입대하기 전까지 한 번도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휴가를 나와도 동아리 사람들과는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거기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고 들었다.


선배는 작년에 군 제대 후, 2학년으로 복학했다. 그리고 다시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자기에게 아픔을 주었던 두 사람이 동아리를 탈퇴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3학년이었는데, 다른 학교 교환학생으로 가 있어서 그를 만날 수 없었다. 올해 본교로 복귀한 나는 동아리 활동에 전념할 수 없는 학년이 되었다. 간간이 후배들 얼굴 보러 들르는 정도가 다였다.



그 독특한 선배는 이름도 특이했다.


고구려.


선배의 할아버지가 고구려에 대한 애정이 유별나서 손자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성을 붙여 부르면 특별한 이름이지만, 떼는 순간 매우 이상해진다.


"구려."


그렇다. 이름이 무려 구려다.


후배들은 그들끼리 있으면 구려 선배를 '솔까말'이라고 불렀다.


"오늘 술자리에 솔까말 온대!"

"으... 구려! 그럼 난 빠질래."


이런 식으로 말이다.


구려 선배는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의 준말인 '솔까말'을 습관적으로, 그리고 수시로 사용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한 후배가 술에 취해 눈물을 흘렸다. 바람기 많은 남자 친구 때문에 힘들다는 것이었다. 너도나도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구려 선배는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다가 유령처럼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후배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와의 첫 술자리였기에 분위기 파악이 안 돼 이유를 물어보았다.


"왜들 그래?"

"솔까말, 검색하러 갔어요."

"검색? 무슨 말이야?"

"들어오면 알 거예요."


잠시 후, 구려 선배가 돌아왔다. 그는 자리에 앉더니 우는 후배를 향해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알코올이 전전두엽의 기능을 저하시켰군. 솔까말, 지금 넌 호르몬의 노예가 된 거야.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감정에 취해버렸어. 감정에 젖으면 진리를 호도하게 되지. 솔까말, 남자 친구가 바람핀다는 네 주장은 보편성을 잃었어. 신경전달물질의 과잉 분비가 진리를 왜곡하는 거지. 만약 남자 친구가 바람핀 게 맞다고 쳐도, 그건 외부에 고정되어 있던 너라는 구조가 붕괴했기 때문이야. 솔까말."


이 냉철한 말에 떠들썩하던 술자리가 급속 냉각되었다. 후배들이 그를 극혐하는 이유를 절절히 체감할 수 있었다. 나는 그를 가게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오늘은 내가 이 자리를 정리할 테니 먼저 귀가하라고 권했다.


나는 선배가 솔까말을 붙여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내 권유에 순순히 응했다. 나는 그를 보내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가 집에 갔다고 하자, 남자 친구가 바람핀다던 후배는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참았던 울분이 터진 것 같았다.


소란이 다소 가라앉자, 나는 후배들에게 구려 선배에 관해 물어보았다. 후배들은 맺힌 게 많은 듯 번갈아 가며 그의 과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다들 술기운이 올라와 있어 정돈된 말은 아니었지만, 종합해 보니 대략적인 정보는 알 수 있었다.



원래 구려 선배는 이 정도로 이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별 특색 없는, 말 그대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동아리 동기였던 한 여자를 오랫동안 짝사랑했다.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누가 봐도 지극한 순애보였다. 그런데 그녀는 선배에게 마음도 없으면서 주는 건 다 받아먹고, 필요할 때마다 마음껏 이용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다른 동기 남자와 사귀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구려 선배는 크게 충격받아 폐인처럼 방황하다가 입대했다. 그는 군대에 다녀온 후, 지금과 같이 변했다. 그 모습이 마치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아 간 남자와 비슷하다고 한다.


추측하기로는 그녀가 이지적인 사람을 좋아해서 그 남자를 선택했고, 구려 선배는 그 남자를 벤치마킹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나는 후배들의 말을 듣자, 마음이 짠해졌다. 너무 큰 상처가 사람을 변모시킨 것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를 바꾸고 싶었다. 부정적으로 변했으니, 긍정적으로도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지금 그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타인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 말들의 배출이었다. 나는 그가 관계 맺는 방식을 양방향 소통으로 바꾸고 싶었다.


왜냐고? 나도 그럴 때가 있었고, 전 남친들도 그럴 때가 있었으니까. 지금 나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했고, 전 남친들도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기회가 된다면 그와 진지한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다.



그날의 술자리 후,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다. 구려 선배였다. 후배에게 내 번호를 물어서 연락했다고 한다.


선배는 할 말이 있다며 시간 괜찮으면 만나자고 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고, 내가 무슨 말을 할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토요일 오후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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