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주말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금요일 오후 반차를 냈다. 아니, 그보다는 서 간호사가 주말에 근무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만날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려면 어쩔 수 없었다.
한창 바쁜 시기라 어설픈 사유로는 눈총 받을 게 뻔했다. 그래서 난 허리에 파스를 잔뜩 붙이고, 환자 냄새를 풍기며 출근했다. 간간이 앓는 소리를 내어 사람들의 동정을 샀다. 혼신의 연기 끝에, 나는 무리 없이 반차를 낼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아파야만 하는 허리를 부여잡고 절뚝이며 회사를 나섰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입구에 도착했을 때, 슬며시 뒤를 돌아봤다.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나는 정상적인 걸음걸이로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서 간호사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맘이 한껏 들떴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 의외로 서 간호사보다는 꿈에 나온 아저씨 생각이 많이 났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꼭 만나고 싶었다. 아저씨의 부모님도 뵙고, 인사드리고 싶었다.
병원 앞에 도착한 나는 가까운 편의점에서 과일음료를 샀다. 아저씨 가족이 있으면 건네고, 없으면 안면 있는 의료인에게 주기로 했다.
병원 입구로 들어서자, 심장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가빠졌다. 내가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작년 추석 전에 퇴원했으니까 꽤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몇 달 만에 마주한 병원은 예전 그대로였다. 바쁘게 움직이는 직원들.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는 긴장된 얼굴들.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듯한 분위기.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다가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계단으로 갔다. 병원 엘리베이터는 늘 사람으로 북적여서 계단을 오르는 게 더 빠를 때도 많았다.
내가 입실했던 병실은 5층이었다. 나는 5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왼쪽으로 가면 간호사 대기실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가면 내가 있던 병실이 나온다. 나는 우선 병실로 향했다. 짧은 거리를 걷는 동안 안정됐던 심장이 다시 두근거리며 몸에 열이 올랐다. 왜 이렇게 긴장되는지 모르겠다.
"후..."
병실 앞에서 가쁜 숨을 골라냈다. 부착된 환자 이름표에는 내가 아는 이름이 없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세 개의 침대에 처음 보는 환자들이 누워있었다. 보호자들도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의료인은 없었다. 나는 아저씨가 누워있던 침대로 갔다.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하자 할머니 환자와 보호자로 보이는 중년 여성이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다름이 아니라 입원하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그건 왜요?"
보호자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나는 '아차'하는 마음에 간략하게 사정을 설명했다. 몇 달 전에 여기 입원했었는데, 이 침대에 있던 환자분과 보호자들을 찾고 있다고.
내 말을 들은 보호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걸 저희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분이 퇴원했으니까, 우리가 들어왔겠죠."
"아! 그렇네요. 죄송합니다."
"다른 분들께 물어보세요. 같이 계셨을 수도 있으니."
나는 어수룩한 내 모습을 자각하며 다른 환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분들께 내가 찾는 아저씨와 보호자의 특징을 설명했지만 다들 모른다고만 했다. 나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 병실에서 나왔다. 그제야 서 간호사 생각이 났다. 나는 걸어왔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픈된 간호사 대기 공간에 몇 명의 간호사가 앉아 있었다. 아쉽게도 서 간호사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익숙한 얼굴의 간호사를 발견하고 다가가 인사했다. 그 간호사는 나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응대했다. 내가 조금 더 말하자 그녀가 나를 알아본 것 같았다.
"어? 전에 입원했던 분 아니세요?"
"맞아요."
"와, 오랜만이에요. 어쩐 일로 오셨어요?"
나는 민망한 마음에 들고 있던 음료부터 건넸다.
"이거 나눠 드세요."
"어머! 저희가 받아도 되는 거예요?
"네. 드리려고 사 왔어요."
내 말에 다른 간호사들도 잘 마시겠다고 했다. 나는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분을 보러 왔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그분이 언제 퇴원했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간호사는 환자의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서 간호사에 관해 묻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차마 물을 수는 없었다. 속이 빤히 보이지 않는가. 속은 타들어 갔지만, 별수 없다는 생각에 돌아섰다.
나는 털레털레 걸어서 계단으로 향했다. 4층을 지나 3층으로 갈 때 아래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층계참을 돌아 아래를 보자 누군가 올라오고 있었다. 서 간호사였다. 나는 그대로 멈추어 서서 그녀를 봤다. 그녀도 나를 올려다봤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내 눈을 보며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못 알아보는 게 확실했다. 지금 당장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나는 그녀가 옆을 지나쳐 갈 때쯤 용기 내어 말을 걸었다.
"서 간호사님."
그녀는 고개를 갸우뚱 기울여 나를 봤다.
"아! 503호실에 계시던 선생님 아니세요?"
"맞습니다!"
나는 너무 기뻐 환호에 찬 대답을 날렸다. 그녀는 반가워하며 내 안부를 물었다. 나는 그녀가 바쁠 거라는 생각이 들어, 병원에 온 이유를 빠르게 설명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환자의 개인정보는 알 수 없고, 알려줄 수도 없다고 했다. 내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자, 그녀가 말했다.
"저 선생님, 그 환자분 왜 찾으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냥 뵙고 싶어서요... 환자분도, 보호자분들도..."
그녀의 눈빛이 바뀌었다.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미안함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움 못 드려서 죄송해요. 저는 먼저 가볼게요."
그녀는 내게 인사하고 계단을 올라갔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눈을 질끈 감으며 외쳤다.
"간호사님!"
그녀가 뒤돌아봤다.
"괜찮으시면 오늘 퇴근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그녀는 망설이는 얼굴로 나를 보다가 계단을 내려왔다.
"병원 두 블록 뒤에 작은 북카페가 있어요. 오후 4시 퇴근이니까, 4시 20분까지 갈게요."
*
카페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초조함을 가라앉히기 위해 독서를 하기로 했다. 서가에 꽂힌 책 중,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 눈에 띄었다. 대학 시절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라 반갑게 뽑아 들었다.
이 책을 읽을 당시, 나는 주인공 뫼르소에게 강렬하게 공감했다. 뫼르소는 세상에서 소외된 이방인 같았고, 나는 가족에게서 소외된 이방인 같았기 때문이었다.
뫼르소가 독방에 갇혀 혼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타인과 능동적으로 관계 맺고, 자기 정신과도 관계를 맺는다. 그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게 된다.
당시 나는 뫼르소의 죽음을 동경했다. 그 같은 죽음을 맞길 바랐다. 비록 진짜 죽음은 아닐지라도,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의 상징적 죽음을 통해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지금 나는 그때와 같은 이방인일까? 큰 문제없이 국민의 의무는 다하고 있다. 뫼르소처럼 사회적 처형을 당한 일도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이방인이 아닌 걸까? 모르겠다.
이유야 어찌 됐든, 기억이 시작하는 곳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면, 나는 가족에게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모태 솔로다. 나는 가족 로맨스에서 배제되었다. 부모를 이상화한 적이 없기에, 그들을 향한 평가절하는 빛을 발하지 못한다. 시작부터 잘못 맺어진 관계인 것이다.
세상에 진정한 이방인이란 존재할까? 어쩌면 세상 모두가 이방인이 아닐까? 서로가 서로에게 이방인이니까 말이다. 내가 나에게 이방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뫼르소는 무엇에 대한 이방인인가?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볼 때 뫼르소는 다른 곳을 본다. 뫼르소의 태양은 다른 사람의 태양과는 다르다.
태양은 하루의 절반을 하늘에 떠 있다. 비가 오거나 날씨가 흐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태양이 있다는 걸 안다. 이토록 당연한 태양의 존재를 뫼르소는 남들과 다르게 지각한다.
아이는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엄마의 존재를 상상할 수 있다. 우리도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태양의 실존을 상상할 수 있다. 거기에는 이유가 없다.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하지만 뫼르소는 다르다.
뫼르소는 타인이라는 대상은 무감각하게 지각하지만, 태양은 정반대로 지각한다. 그에게 내리쬐는 태양 빛은 외피를 투과해 세포 구석구석에까지 다다르는 극도로 감각적인 실존적 존재다.
어쩌면 카뮈는 태양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실은 당연한 게 아니라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었을까?
"부모의 사랑은 당연한 거야, 남녀 간의 사랑은 당연한 거야."
정말일까?
남들에겐 당연한 것이 나에게는 부재하기에 괴롭다고 착각하는 게 아닐까?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이 아픔도 사그라들 수 있는 걸까?
*
내가 몽상에 빠져있는 사이 서 간호사가 카페에 도착했다. 나와 그녀는 환자와 간호사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 보고 앉았다.
여자와 단둘이 마주하는 건 너무나 어색하다. 크나큰 무력감을 안기기도 한다.
나는 꿈속 아저씨의 말을 믿고 용기 내어 말을 걸었다. 그녀는 병원에서와 같았다. 밝고 긍정적이고 활기찼다. 내가 어떤 말을 해도 진지하게 경청해 주었다. 용기를 얻은 나는 그녀의 눈을 보며 말했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을까요?"
그녀는 처음으로 내 눈을 피했다.
"죄송해요. 만나는 분이 있어요."
"몰랐네요. 제가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저는 늘 선생님께 감사했어요. 절 보는 눈빛, 환자분의 부모님을 보는 눈빛이 따뜻했거든요."
"제가요?"
"네.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그래서 기억에 오래 남았어요."
"그렇군요..."
더 나눌 말이 없어진 우리는 카페에서 나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춥네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내 말에 그녀는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였다. 나도 같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나는 잠시 그녀를 보다가 먼저 몸을 돌렸다.
저벅. 저벅.
한숨이 나올 것 같지만, 그녀에게 들릴지도 모르니 조금만 참자.
그녀가 나를 불렀다. 다시 본 그녀의 눈은 무척 서글퍼 보였다.
"그 환자분. 선생님 퇴원하고 얼마 후에 돌아가셨어요."
"아......."
"환자분 부모님이 선생님 얘기도 했어요. 퇴실할 때 못 봐서 아쉽다고요. 아들 기저귀 가는 문제로 고생 많았다면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었대요."
"정말요...?"
"네. 정말요..."
"감사합니다. 말씀해 주셔서."
나는 얼른 몸을 돌렸다.
그녀 앞에서는 울고 싶지 않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