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배운 것이 오늘 나를 살렸다.

by Jenny Oh

새벽 6시면 남편 도시락을 싼다.

미국은 아직도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남편의 도시락은 상당히 심플하다.

그렇게 먹어주는 남편에게 감사한다.

파프리카, 적양파, 방울토마토, 아보카도는 먹기 좋게 작게 썰고 키노아(Quinoa)를 넣고 한 볼에 담는다.

그 위에 계란 세 개를 노른자를 터트렸을 때

노른자가 흐르게 프라이해서 올려주면 끝이다.

미리 두세 개를 만들어 두고,

매일 아침엔 계란만 프라이해 넣어주면 된다.


오늘 아침도 여느 때처럼 계란 세 개를 프라이해

도시락 가방에 넣다가 일이 벌어졌다.

락이 없는 도시락 통이었는데,

뚜껑이 열리며 내용물들이

도시락 가방 안으로 전부 쏟아져 버린 것이다.

아—!

순간 막막했지만,

바로 도시락 통으로 채를 치듯 담아내 정리를 했다.


그 방법. 채에 치듯 탁 쳐서 담는 방법.

이건 내가 어렸을 적,

엄마와 할머니가 덕석 위에서

콩이나 깨를 끝까지 담아낼 때 쓰던 방식이었다.

시골 일을 도와드리면서

나도 자연스레 배웠던 것.


불혹을 막 넘긴 요즘,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내가 하는 행동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난 40년 동안 내가 배웠던 것들이

어떻게 내 몸에 남았는지,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체화되었는지를

떠올리게 된다.


“The first forty years of life supply the text,

while the next thirty furnish the commentary.”

— Arthur Schopenhauer


쇼펜 하우어의 젊을 때는 삶의 ‘본문’을 직접 살아내고, 나이가 들면서 그 본문을 해석하고 되새기며 살아간다는 말. 이 문장이 떠올랐다.


40년 동안 내가 배우고 누적해 온 경험들을

하나씩 되짚어 보며, 어떻게 배웠는지,

그로 인해 내 인생이 조금씩 더 나아졌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요즘은 자주 감사하게 된다.


앞으로 배울 것은 여전히 많겠지만,

문득문득 이미 배웠던 것들에 대해

감사하며 살아가고 싶다.

우리가 배우는 모든 것이 결코 허투루 배우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뭐든 배워 놓으면, 언젠간 써먹는다.”

어렸을 적 나의 철학이자 가치관이었다.


이 작은 사건 하나가 나를 과거의 시선으로 데려가고, 현재에 머물게 하고, 다시 미래로 이끌어 주는 게

참 신기하다.


#배움 #경험 ##도시락 #체화되는 경험

작가의 이전글아침은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