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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w김정숙 May 31. 2024

아들과 인생 동반 아홉 번째 이야기

음악을 사랑한 아들

주변의 사람들은 말한다. 예체능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들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애들이 누구를 닮았나요? 엄마 쪽? 아님, 아빠 쪽?”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누구도 닮지 않은 것 같은데요, 다만 아이들이 하고자 하는 것을 지원했을 뿐입니다.”     

아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하교 후 여가 활동으로 피아노를 2년 정도 배웠고, 3학년 때  방과 후 프로그램으로 플롯을 1년 정도 배웠다. 

재능이 우수한 편은 아니었지만 성실함과 열성이 앞선 자리에 있게 하였다. 

5학년 때는 학교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할 때 함께 했다. 아들과 멋진 슈트가 어울렸다. 

6학년이 되었을 때 감성적이 되기도 했고, 정서적인 활동이 필요하기도 했을 때,

학교에서 친구가 기타 학원에 다닌다고 말하며 관심을 보이길래 다녀보라고 했다.

방학 때 시간이 날 때만 배웠고 세 번의 방학을 이용했다. 중학생이 되니 시간을 내는 것이 힘들다는 핑계로 학원을 그만두었던 것 같다. 배운 것 모두 헛것이 아니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들이 변성기가 되기 전 성대결절이 심했다.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얼마나 답답했을지 모른다.

말하는 것이 힘들었고 듣는 사람도 답답했고 힘들 정도가 되었다. 

점점 말 없는 아이가 되었을 때 자신만의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랩음악을 감상하며 심취되어 마음대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곤 했다.

기타 연주를 제법 하면서 코드를 응용하여 곡을 쓰기도 했다.

첫 번째 곡은 나와 대화를 하던 중 아들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가 크다는 것을 말하며 격려를 한 후였다. 자기 방에 들어가 기타를 들고 나와 연주하며 즉흥적으로 노래로 만들어 불러주었다, 

“나 기대할래. 나 기대할래. 주님의 사랑 ~~~”  처음으로 나온 곡이었고, 너무 쉽고 가독성이 있어서 나중에 교회 행사 중 누나와 함께 합창을 하기도 했다. 

    

아들은 겉으로는 조용했지만 음악을 너무 좋아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일이다.

학교 축제가 있다고 했고, 자신도 한 번은 적극적 참여를 해서 중학교 추억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참가 종목이 노래를 부르겠다고 하여 속으로는 웃음이 나왔다. 

성대결절로 노래를 하는 것은 축제에 대한 민폐라고 생각을 했고 만류도 했지만,

아들은 이미 준비가 된 듯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은 한껏 신나는 목소리로 엄마를 찾았다. 

그리고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끼가 많은 아이 를 닮은 단풍나무 꽃


“엄마~, 제가 오늘 학교에서 음악실 옆을 지나고 있었어요. 그쪽에서 밴드부들이 연습을 하는 소리를 들었어요. 조용히 엿들어보니 내가 축제 때 부르고 싶어서 준비하고 있는 노래를 부르고 있더라고요. 저는 망설여졌지만 음악실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지도하시는 음악선생님께 말씀드렸죠. 밴드부들이 하는 곡 중에 제가 준비한 곡과 겹치는 곡이 있다고 그 곡을 빼고 다른 곡을 해달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시더니 그 노래를 지금 불러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불렀지요. 선생님은 다 들은 후 저에게 오히려 학교 밴드부에 들어와서 그 곡을 불러주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밴드부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었어요.”      


난 사실 멘붕이 왔다. 갑작스럽게 아들의 진로가 생긴 것도, 아들의 목상태를 아는 바라 앞으로 험난한 길이 될 거라는 것도, 엄마는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고 어지러운 상황이라는 것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아들은 이미 신난 송아지가 되어 있었으니까.     

아들의 음악 활동은 열정적이었고 희망을 주기도 했고 활기찬 학창 시절의 표본이 되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우리 지역의 청소년 문화축제의 장에서는 항상 볼 수 있었고, 전국 락밴드대회까지 참가하여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들은 집에서는 자신의 방에서 창작의 시간이 길어졌다.   

그리고 방 밖에 나올 때 “엄마~~”라고 부르면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아들 앞으로 달려가 앉았다.

그러면 아들은 기타를 들고 노래를 들려주었다.

네겐 인기가수들을 알게 되었고 나도 같이 음악에 조예가 깊어지는 듯했다.

그리고 곡을 만들어 먼저 불러주면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여 박수가 절로 나왔다.

토요일에 한가한 시간이면 나를 위한 공연을 해주곤 했다. 한 시간 정도를 꼼짝없이 관객으로 잡혀 있었다. 경쟁이 없는 세계라면 너무 행복한 시간들이겠다고 생각하며 그 행복감을 만끽하곤 했다.     


대학 진학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음악학원에서 개인 레슨을 받도록 연결해 주면 몇 개월 못 가서 자신이 혼자 하고 싶다고 했다. 음악을 모르는 나는 답답하고 속상했다. 대학진학과 진로, 직업에 대해 염려가 되곤 했다.

대중적인 인기를 끌어야 직업적인 만족까지 가져올 수 있다는 현실을 그때 아들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까마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고 그로써 만족하고 있는 아들에게 시간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순수하게 격려하며 응원하는 쪽을 선택했다. 

결국 아들은 대학에는 가지 않았다.     


아들은 비틀즈를 좋아했고 오아시스를 좋아했고 윤도현을 좋아했다. 

친구들이 좋아하는 대중가요보다 고전 록음악에 심취되어 있었다.

아들은 진심으로 사랑하는 음악을 좋아했다. 

기타와 피아노를 연습하며 스스로 터득해 가는 모습도 정말 음악을 사랑한다고 느꼈고 앞으로 무엇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닌 지금 순간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에 나도 같이 행복했고 자랑스러웠고 기뻤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청소년문화센터 동아리 발표회가 있었다.

아들이 와달라고 초대장을 내밀었다. 만사를 제치고 갔다.

아들이 안내한 자리에 가서 앉아서 관람하고 있었다. 

아들은 많은 역할을 하고 있었고 절반 이상의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었다. 공연이 무르익어갈 때쯤이다. 방청객을 추첨하여 무대로 초대하는 순서가 있었다.

내 번호가 뽑혔다. 로또 당첨자처럼 뛰어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스크린에서 “엄마~ 엄마~”라고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았다. 

아들이 준비한 엄마를 위한 특별한 이벤트 영상이었다. 

지금껏 지원해 준 엄마에 대한 고마움을 담아 앞으로의 자신의 모습까지 지켜봐 주고,

 지원해 주라고 하며 믿음을 잃지 않는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다. 등등의 각오가 담긴 영상이었다.

 그곳에 참석했던 엄마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모든 힘든 일들이 봄눈 녹듯이 사라지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많이 노력하고 있고 부모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감사가 넘치는 시간으로 기억된다.   

   

우리 가족에게는 예술적인 유전자가 상위는 아닌 보통보다 윗 구간에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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